그 산에 가고 싶다 - 조계산

굽이굽이 고갯길 걸어 송광사서 삶의 화두 정리

2016.11.24 20:05:26

산행코스

송광사 매표소-송광사-토다리-연산봉사거리-장박골 정상-장군봉-작은굴목재-보리밥집-대피소-송광사-송광사 매표소(도상거리 13.21km)

장군봉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시원하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걸친다. 좌우 능선이 일망무애로 끝이 없다. 바람이 나무에 부딪혀 거친 소리를 낸다. 털고 일어나기 어려워 다리쉼을 계속한다. 자연에 경의를 표하고 경건하게 송광사로 든다.

[충북일보] 전남 순천의 조계산(해발 884m)은 넉넉하다. 우선 산세가 부드럽다. 만만할 정도로 허술해 보인다. 대부분 능선을 따라 길이 나 있다. 그렇다고 너무 만만하게 볼 산은 아니다.

등산로 대부분은 울창한 수목으로 터널을 이룬다. 여름철에는 시원한 그늘이 돼 준다. 가을엔 단풍이 곱게 물들어 아름답다. 겨울철엔 이따금씩 눈이 내려 설경을 선물하기도 한다. 봄에 피는 철쭉은 장관이다.

일요일 아침 일찍 눈을 뜨니 새벽 5시다. 배낭을 챙겨 집을 나선다. 미리 도착한 일행의 차에 오른다. 얼마 가지 않아 접촉사고가 난다. '액땜'으로 여기고 길을 달린다.

남청주IC를 나와 경부와 호남고속도로를 번갈아 달린다. 휴게소에 들러 생리적인 문제를 해결한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밖을 본다. 지역에 따라 안개가 교차한다. 주암호 영향인지 순천의 아침도 자욱하다.

구불구불 주암호를 끼고 달린다. 굽이굽이 고갯길을 이어 송광사(松廣寺)에 다다른다. 청주를 출발한지 4시간만이다. 일주문 신축공사가 한창이다. 훨씬 커진 규모가 위압감을 준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편백나무 숲을 지나간다.

쌀쌀한 공기가 피부에 와 닿는다. 아직 남은 단풍잎 몇 개가 반긴다. 계곡주변에 단풍은 거의 지고 없다. 간혹 보이는 놈들도 금방 떨어질 것 같다. 주차장에서 송광사까지는 1.4km다. 갈색의 가을 낙엽으로 묻히고 있다.

피톤치드 가득한 숲을 지난다. 걷기 좋은 아침이다. 햇살이 그대로 피부에 와 닿는다. 느낌이 좋다. 계곡물에 비친 나무의 모습에서 나를 본다. 송광사 입구에서 오늘의 안전산행을 기도한다. 본격적인 산행 길에 오른다.

송광사 대나무숲길

상큼한 공기와 함께 한다. 아직 남은 은행나무 단풍이 노랗게 예쁘다. 막바지 단풍을 즐기는 행운을 얻는다. 운치 있는 대나무 숲을 지난다. 하마비를 통과하며 웃는다. 사진도 한 장 찍는다. 분위기가 최고다.

왼쪽 계곡으로 방향을 잡는다. 낙엽 가득한 길을 한참동안 따라간다. 삼거리 갈림길이 나온다. 장군봉으로 갈 것인지, 선암사 쪽으로 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장군봉 쪽으로 길을 잡는다. 산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코스다.

조릿대 길을 길게 지나간다. 촘촘한 조릿대가 만추 분위기를 더한다. 된 비알이 이어진다. 연산사거리에 도착한다. 잠시 다리쉼을 하고 길을 이어간다. 걷기 편한 길이 계속된다. '남도삼백리(오치오재길) 장박골 정상'이란 글씨가 쓰인 표지목이 눈에 띈다.

오른쪽으로 장군봉이 가까워진다. 산길을 따라 대마로 만든 것 같은 양탄자가 깔린다. 바람이 살살 분다. 가을산행의 스산함이 느껴진다. 갑자기 시야가 툭 터진다. 장박골의 조망을 즐긴다. 연산봉과 천자봉이 한 눈에 들어온다. 모후산도 보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군봉에 도착한다. 송광사를 출발한지 2시간 40분 만이다. 연산사거리에서 장군봉까지는 3km나 된다. 그래도 편안한 능선길이라 1시간이면 된다. 장군봉에서 지나온 능선을 일망무애로 조망한다. 좌우로 부드러운 능선이 펼쳐진다.

작은굴목이재 보리밥

하산을 시작한다. 보리밥집에 들러 보리밥과 막걸리도 한 잔 한다. 이내 발걸음을 재촉한다. 바쁜 마음으로 굴목이재를 지나쳐 송광사에 들른다. 대웅보전 앞에 서 기도한다. 삶의 길을 묻는다.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한다.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생각한다. 송광사엘 잘 다녀왔다.
■ 취재후기 - 송광사 단상

법정 스님처럼 낙엽 산책로 걸으며 갖는 '숙성의 시간'

송광사는 초입부터 선암사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찻집을 지나니 석탑 하나가 반긴다. 오솔길과 갈라지는 오른쪽 계곡 다리에 청량각이 우뚝하다. 왼쪽으론 아늑한 낙엽 산책로가 있다. 법정 스님이 열반 전 사색하며 걷던 길이다.

무소유길을 버리고 절집 안으로 천천히 들어간다. 연꽃도 배롱나무 꽃도 다 지고 없다. 단풍마저 지고 없어 좀 황량하다. 징검다리를 총총걸음으로 건넌다. 약사전이 여덟팔자 모양을 한다. 팔자 지붕 아래 작은 법당이 보인다. 약사여래가 중생들의 질병을 돌보고 있다.

영산전 여덟 탱화가 화려하게 빛난다. 승보전 댓돌에서 대웅전을 본다. 절집 뒤편 선방 너머로 대나무가 곧게 뻗는다. 해우소 앞 연못이 특이하다. 군데군데 파란 연못이 예쁘다. 물의 흐름을 거의 느낄 수 없다.

연못에 비친 하늘이 잔잔하다. 거울처럼 주변을 모두 반영하고 있다. 흐르는 물의 정화를 생각한다. 비로소 새로운 답을 찾는다. 흐름의 이치가 고요보다 깊다. 풍경 하나가 주변을 동화시킨 셈이다.

송광사 경내를 살짝 엿본다. 곳곳에 1천년 역사의 문화재 수천점이 숨 쉬고 있다. 역사·교육·문화의 도량이다. 걷다 보면 저절로 순천(順天)하는 명상도량이다. 그러나 단순한 사찰이 아니다. 명성황후의 원혼이 울고 있다.

송광사 전경

송광사는 우리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의 하나다. 보조국사를 비롯해 16국사를 배출했다. 승보사찰(僧寶寺刹)이란 이름이 붙은 까닭도 여기 있다. 신라 말 혜린 선사가 길상사(吉祥寺)를 창건한 게 기원이다.

하지만 세상에 널리 알려진 건 고려 무신집권기 때다.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 知訥; 1158~1210)이 교선일치(敎禪一致)와 돈오점수(頓悟漸修)를 주장한 이후부터다. 통도사와 해인사와 더불어 승(僧), 불(佛), 법(法) 삼보사찰로 불린다.

국보 제42호 목조삼존불감, 국보 제43호 고려고종제서, 국보 제56호 국사전, 보물 제90호 대반열반경소, 보물 제572호 수선사형지기, 보물 제1366호 화엄탱화, 김정희의 서첩, 영조의 어필, 흥선대원군의 족자 등 많은 문화재도 보유하고 있다.

산책길을 따라 등산로 쪽으로 이어간다. 대웅전 뒤로 조계산이 우뚝하다. 맑은 기운 가득 받아들여 걷는다. 맑고 푸른 물이 자꾸 아래로 간다. 상선약수의 도리를 알려주는 듯하다. 흐르는 물소리만으로 충분하다.

송광사 김장용 배추밭

자연경관으로 마음을 닦아낸다. 잠시 눈도 마음도 함께 쉬어간다. 누군가 생각나는 숙성의 시간이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떠올린다. 움츠러들었던 마음이 확 풀린다. 시원한 계곡 물소리가 들린다. 깨끗한 바람이 얼굴에 닿는다.

삶의 목표가 명료해진다. 떨어진 나뭇잎 위에 편지를 쓴다. 오늘도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한다. 절집 마당에 서서 삶의 화두를 생각한다.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은 다 다르다. 하지만 진리 자체는 변치 않는다.

지눌 스님의 돈오점수(頓悟漸修)와 성철 스님의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생각한다. 그 차이는 뭘까. 돈오(頓悟)와 점수(漸修)의 차이는 또 뭘까. 다른 건 없다. 둘도 아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다.

글·사진=함우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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