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로 살아갑니다. 그 불완전함은 누군가에겐 장애로, 누군가에겐 마음의 상처로, 또 누군가에겐 삶의 곡절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치유를 향한 여정이며, 인문학은 그 길 위에서 우리를 비추는 등불이 됩니다. '장애와 치유인문학'은 바로 그 등불 아래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인간다움을 회복해 가는 따뜻한 시도입니다.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과거에는 동정의 대상이었고, 한때는 의료적 접근으로 "고쳐야 할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지향해야 할 관점은 '차이의 인정'과 '공존의 실천'입니다. 치유인문학은 이러한 관점을 통해 장애를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보지 않고,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새롭게 성찰하게 합니다.
인문학은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장애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려 하는가?", "진짜 아픈 것은 누구인가?" 치유인문학은 이러한 질문을 통해 우리 사회가 만든 보이지 않는 장벽을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그리고 질문에 대한 답은 '이해'와 '공감'에서 비롯됩니다. 바로 그것이 치유의 첫걸음입니다.
장애인의 삶에는 불편함뿐 아니라, 깊은 지혜와 성찰이 담겨 있습니다. 한 팔을 잃었지만, 그 누구보다 강인한 의지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극복담을 넘어 우리 삶에 중요한 가치를 일깨워 줍니다. 바로 '존엄', '희망', 그리고 '관계'입니다. 치유인문학은 이 삶의 내면에 주목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장애가 아닌, 그 사람의 고유한 목소리와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또한 치유인문학은 말합니다. 장애는 '치유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이유'라고. 우리 사회가 진정한 의미의 회복을 이루기 위해서는, 제도의 보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을 바라보는 태도'입니다. 내가 누군가의 아픔에 응답하고자 할 때, 우리는 이미 서로를 치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장애를 가진 이들과 함께 인문학을 나눌 때, 우리는 놀라운 생의 힘을 발견합니다. 글쓰기, 미술, 연극, 낭독… 이 모든 활동 속에서 사람들은 상처를 표현하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눈빛 하나로도 깊은 연결을 만들어 냅니다. 그것은 배움이자, 회복이며, 무엇보다 '살아 있음'의 증거입니다.
우리는 종종 '정상'이라는 틀 안에서 세상을 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틀에서 벗어난 존재는 '장애'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누군가의 연민의 대상이 되거나 때로는 눈길을 피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문학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정상은 누구의 기준인가?" 그리고 "우리는 과연 진정한 '이해'를 하고 있는가?"
치유인문학은 단순히 아픈 마음을 위로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삶의 본질을 성찰하며, 상처를 말하고, 나와 타인을 새롭게 이해하는 지적 여정입니다. 특히 장애라는 주제를 다룰 때, 인문학은 '불쌍함'이라는 단어를 넘어 **'존엄'과 '존재'**의 이야기입니다.
치유인문학은 우리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다름은 정말로 틀린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방식의 아름다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