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23일 보물 제1880호로 지정된 청주 명암동 출토 '단산오옥'명 고려 먹의 앞(왼쪽) 뒷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고려시대 먹이다.
ⓒ사진제공=국립청주박물관
'단산오옥'이라고 명칭된 고려 먹은 국립청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고려시대 목관묘에서 출토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고려 먹으로 지난 1998년 청주시 상당구 1순환로 인근에 위치한 명암타워 뒤쪽에서 발견됐다.
1998년 도로공사 당시 삼국시대 토기편이 출토된 후 국립청주박물관은 청주시에 조사를 의뢰했고, 그 후 조사과정에서 먹이 발견된 것이다.
삼국시대 토기편과 함께 구릉 정상부에서는 목관묘 10기가 확인됐다. 목관묘는 도로공사를 위한 분묘 이장 과정에서 많이 훼손된 상태였다.
여러 목관묘 가운데 1호 묘에서는 가로 4.0㎝ 세로 11.2㎝ 두께 0.9㎝의 먹과 함께 중국 송나라 화폐인 원평통보(元豊通寶, 1078~1085) 등 동전 4점, 철제가위, 청동젓가락이 출토됐다.
출토된 먹은 크게 두 토막이 난 채 글씨가 쓰여진 면이 위로하고 무덤 주인 머리 부근 철제가위 위에 놓여 있었다.
먹이 두 조각 난 이유에 대해서는 목관묘가 무너지면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성 학예사는 "먹의 상태가 매우 약화돼 있었기 때문에 노출, 발굴하는 작업에 어려움이 많았다"며 "발굴 과정에서 먹 하단부에 작은 상처가 생겨 아쉽다. 그래도 그 상처가 또 하나의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고 당시 현장의 상황을 설명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 부분은 복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먹은 요즘 우리가 사용하는 먹과 비슷한 크기이며 모양도 같았다.
먹 앞면에는 가장자리를 약간 돌출시켜 윤곽을 돌려 그 안에 돋을 무늬를 넣었고 가운데 부분에는 위아래가 뾰족한 장방형의 테두리가 있다.
그 장방형 테두리 안에는 '丹山烏'라는 글씨가 있고 烏자 밑에는 '玉'자로 추정된 먹을 사용하면서 닳아 없어진 '一'자 획이 남아 있다.
'一'자를 '玉'자로 추정한 것은 '세종실록 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내용과 관련이 있다.
세종실록 지리지 충주목 단양군 조는 단양의 토산을 설명하면서 '墨 最良 號爲丹山烏玉(묵 최량 호위단산오옥)'이라고 기술했다. 의역하면 '단양의 먹, 최고 품질로 단산오옥으로 불려진다'가 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토산조도 세종실록 지리지와 똑같은 문장으로 기술돼 있다.
'단산오(옥)'의 단산(丹山)은 단양의 옛 이름으로 1018년(고려 현종 9)부터 단양군(丹陽郡)으로 승격된 1318년(고려 충숙왕 5)까지 사용됐다.
오옥(烏玉)은 먹의 별칭인 '오옥결(烏玉□)'의 약칭으로 단산오옥(丹山烏玉)은 '단양 먹(丹陽 墨)'을 뜻한다.
뒷면에는 긴 꼬리를 휘감으며 나는 용(龍)이 양각돼 있으나, 함께 부장된 철제가위의 녹이 심하게 붙어 문양이 뚜렷하지는 않다.
이 먹은 먹집게로 집어 쓴 흔적이 있고, 아랫면은 사용으로 인해 약간 비스듬히 닳아 있어 무덤의 주인공이 생전에 사용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성재현 국립청주박물관 학예연구사가 박물관 내에 소장된 단산오옥명 고려 먹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단산오옥명 고려 먹을 처음 발견한 성재현 학예사는 "단산오옥명 고려 먹은 현존하는 고려시대의 먹 가운데 제작 장소와 출토지가 유일하게 명확하다"며 "먹이 발견된 것은 행운"이라고 말했다.
무덤 주인의 유해는 흔적만 남은 상태에서 썩을 가능성이 컸던 먹이 양호한 상태로 발견됐기 때문이다.
성 학예사는 "청주는 지역 곳곳에서 경주 못지 않은 문화유물들이 발굴된 전통적인 문화도시"라며 "청주에서 발굴된 단산오옥명 고려 먹은 고려시대 먹 기술과 발전의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전했다.
단산오옥명 고려 먹의 정식 명칭은 '청주 명암동 출토 단산오옥명 고려 먹(淸州 明岩洞 出土 丹山烏玉銘 高麗 墨)'으로 국립청주박물관 본관 전시실 고려문화실에 전시 돼 있다.<끝>
/ 손근방·성홍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