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화와 자화상

2024.03.28 15:45:04

김현정

문학평론가·세명대 교수

초상화(肖像畵)는 특정한 사람의 모습을 그리는 그림을 뜻한다. 닮을 초(肖), 형상 상(像)이라는 한자의 뜻이 말해주듯, 초상화는 형상을 닮게 그린 그림임을 알 수 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초상화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가 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그림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가치가 높은 미술품으로 평가받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리고 눈을 돌려 보면 우리나라에도 다수의 초상화가 존재하는데, 조선시대의 초상화인 <조선태조어진(朝鮮太祖御眞)>, <신숙주 초상>, <오명항 초상>, <신임 초상> 등과 역대 대통령들의 초상화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는 하나같이 다른 화가에 의해 그려진 그림들이다. 즉, 초상화는 그림에 재주가 있는, 뛰어난 화가들에 의해 그려진 작품인 것이다. 이 그림들을 통해 우리는 당시 그림의 양상과 특징들을 엿볼 수 있다.

초상화와 유사한 '자화상(自畵像)'이 있다. 자화상은 화가가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는 점에서 초상화와 차이가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자화상으로는 반 고흐의 작품들이다. <한 켤레의 구두>, <별이 빛나는 밤> 등으로 유명한 그는 <회색 펠트 모자를 쓴 자화상>, <화가로서의 자화상>,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 등 40여 편의 자화상을 그린다. 다양한 자화상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을 알아갔던 것이다. 또한 입체파 화가인 피카소의 <나는 피카소>, <죽음에 맞선 자화상>도 유명한데, 이 그림들을 통해 거장의 심오한 내면세계를 엿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작품인 윤두서의 <자화상>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고산 윤선도의 증손이자 다산 정약용의 외증조인 윤두서의 이 자화상은 어떠한 꾸밈도 없고 치장도 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강한 자의식을 담아내며 시대를 앞서간 강세황의 <자화상>에서도 그의 깊은 예술혼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화가들은 화폭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다양한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또한 화폭 대신 원고지에 '자화상'을 노래한 시인들도 많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윤동주의 자화상을 비롯하여 서정주의 자화상, 윤곤강의 자화상, 김현승의 자화상, 한하운의 자화상, 조병화의 저녁 - 나의 자화상, 박용래의 자화상 1, 유안진의 자화상, 김초혜의 자화상, 정의홍의 자화상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자아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가 주를 이룬다.

윤동주의 자화상에서 시인은 세 번에 걸쳐 우물을 찾아가 자신의 모습을 비춘다. 미움과 가엾음, 그리움 등의 감정 변화를 통해 자아분열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평소 한 점 부끄럼이 없이 살기를 희망했던, 시인의 일제 말기의 비극적 현실을 극복하려는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서정주의 자화상에서는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라고 노래한 것처럼 자신이 살아온 삶이 바람과 같은 떠돌이 삶이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한하운의 자화상에서는 천형(天刑)의 병고(나병, 한센병)를 슬프게 읊어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시인은 "한번도 웃어본 일이 없다/ 한번도 울어본 일이 없다.// 웃음도 울음도 아닌 슬픔/ 그러한 슬픔에 굳어버린 나의 얼굴.", "지나는 거리마다 쇼윈도 유리창마다/ 얼른 얼른 내가 나를 알아볼 수 없는 나의 얼굴."이라고 표현하여 나병환자로 살아가야만 하는, 천형을 간직한 채 평생을 살아가는 이의 고통을 표출하고 있다.

그리고 유안진은 자화상을 통해 자신의 인생이 떠도는 구름과 바람과 같은 삶이었음을 성찰하고 있다. "한 오십년 살고 보니/ 나는 나는 구름의 딸이요 바람의 연인이라/ 비와 이슬이 눈과 서리가/ 강물과 바닷물이 뉘기 아닌 바로 나였음을 알아라"라고 노래하고 있다.

김초혜의 자화상에서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오늘은 오늘에 빠져버렸고

내일은 내일에 허덕일 것이다

결박을 풀고

집을 떠나려 하나

벗을 것을 벗지 못하는

거렁뱅이라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는 일상적이고 반복되는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촘촘한 보이지 않는 인간관계 속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삶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표출하고 있다.

이렇듯 시인들은 끊임없이 자아 반성과 성찰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이는 '무감어수 감어인(無鑑於水 鑑於人)'이라는 말처럼, 자신을 물(거울)에 비추지 말고 사람들에게 비추어 볼 때 가능할 것이다. 자신을 거울에 비추는 것에서 넘어서서 다른 사람들 속에서 자신을 성찰할 때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가끔은 바쁜 일상에서 잠시 탈피하여 자신의 모습을 진솔하게 성찰해보고 그려보는, 여유 있는 삶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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