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국 꽃을 보면서

2022.05.16 15:50:47

심재숙

시인·한국어 강사

목수국 꽃이 탐스럽게 피었다. 꽃송이가 소담스럽게 피어 꽃가지가 땅을 향해 휘어져 닿는다. 봉오리 벙글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수국을 남다르게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다. 해마다 겨울이면 허전하리만큼 헐렁한 빈 가지로 침묵하던 목수국이 봄기운이 돌면 잎눈을 내밀기 시작한다. 유난히도 조용히 말을 걸어오는 목수국 앞에 서면 오히려 나는 수다스러워진다.

대학원 시절, 함께 공부를 한 중국에서 온 유학생 중 목수국 꽃을 무척 좋아하는 학생이 있었다. 그는 지금은 중국 귀주성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우리가 공부하던 학교 정원에 목수국이 있었는데, 우리는 꽃이 필 때면 목수국 앞에서 자주 꽃을 보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셀 수 없이 많은 꽃잎을 가진 수국만큼이나 오랜 시간 함께하며 추억을 만들었다. 10여 년을 한국에서 산 그는 한국어와 다양한 문화에도 익숙하여 후배들은 물론 이웃들도 살뜰히 챙기며 정을 나누었다.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수국 꽃만 보면 떠오르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수국이 필 때면 잊지 않고 사진을 찍어 보내며 안부를 전한다. 얼마 전에도 통화를 했다. 그는 아름답고 소중한 전통문화가 살아있는 곳, 중국 귀주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국에서 공부를 하며 십년을 넘게 살다가 귀주에 갔을 때, 앞이 캄캄했다는 이야기를 통화 할 때마다 한다. 특히 과일 가게에 과일을 사러 갔다가 충격 아닌 충격을 받았던 일도 말끝에 덧붙였다. 그 당시에 영상 통화를 하곤 했는데, 그때도 이야기했었다. 중국 고향에서도 아주 먼 곳이라 부모님은 커녕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이어서 자주 연락을 하며 지냈다. 어느 날 과일이 먹고 싶어서 과일 가게에 갔단다. 그런데 가게 주인할머니가 과일을 추천하며 이야기를 하는데,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없어서 매우 당황을 했다는 것이다. 순간 충격을 받으며 자신이 돌아간 곳이 중국이 아닌 또 다른 외국인 것 같은 매우 낯설고 묘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그가 중국으로 돌아간 지도 벌써 몇 년이 흘렀다. 하지만 해마다 목수국이 벙글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를 떠올리고 꽃잎이 흐드러지게 피면서 서로 안부를 확인한다. 올해는 한국문화수업에 대한 제안을 받기도 했다. 코로나19 상황이 좀 잦아들고 나아지면 중국 귀주성으로 한국문화 특강을 올 수 있느냐는 제안이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좋다는 대답을 했다. 코로나19 상황이 종식된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날아갈 것처럼 후련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수국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또 한사람이 있다. 지난해 중국에서 한국에 계신 부모님 곁으로 오게 된 중도입국학생이다. 그는 지금 중학생이다. 한국어를 배우며 학교 교과수업을 듣고 있다. 한국어가 서툴고 거기다가 낯선 문화를 접하면서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러다보니 수업 중 집중시간도 매우 짧은 편이다.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가 흥미를 보이는 것을 찾으려 애썼다. 몸을 움직여 활동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림 그리는 것에 관심이 많아 문화수업을 할 때는 직접 찾게 하고 중국문화와 한국문화를 비교하면서 함께 알고 이해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면 그의 표정은 밝아진다. 얼마 전에는 오월 가정의 달에 대한 문화를 배우며 기념일의 의미와 카네이션에 대한 수업을 했다.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에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카네이션을 준비하고 감사편지 쓰기도 했다. 카네이션도 안개꽃과 리본을 준비해서 예쁘게 만들고 편지도 직접 썼다. 그가 갑자기 카네이션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꽃이 있다고 하면서 컴퓨터에서 목수국 꽃을 찾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말 예쁘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의 표정이 목수국 꽃처럼 환하게 빛났다. 우리는 목수국 꽃을 보면서 이야기의 끈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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