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형 부분이 '쇠벼라'의 출발 지점인 충주 '쇠꼬지'이다. 전통시대 이곳에서는 한양으로 연결된 땅길과 물길이 이웃하게 만났다.
ⓒ네이버지도 참조
지명 변경을 둘러싼 갈등이 도내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대략 지명 변경을 추진하는 쪽은 "지역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반대하는 진영은 "역사성"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도내 지명갈등의 현상황과 그에 따른 득실 등을 사례별로 살펴본다. 글 싣는 순서는 ①가금면 대 중앙탑면, ②강내면 대 미호면, ③충주지역의 이상한 면이름들, ④다른 지역 사례와 득실 등이다.
충주시 가금면 명칭변경추진위원회는 면이름을 '중앙탑면'으로 바꾸기로 하고, 그에 따른 찬반의견 조사를 지난 13일까지 실시했다.
회수된 설문지는 오는 30일 가금면 복지회관에서 개봉돼, 설문 참여자의 2/3가 개명에 찬성을 하면 면이름이 1백년만에 '중앙탑면'으로 변경된다.
가금면사무소 한 공무원은 "충주시 조례는 '주민 50% 이상이 여론조사에 참여하고 그중 2/3가 찬성해야 면이름을 변경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설문지를 회수한 결과 68.5%의 비교적 높은 참여율을 나타냈다"고 밝혔다.
이처럼 가금면 주민들이 수년 전부터 면이름의 변경을 추진하고 나선 것은 △이웃 '금가면'과 너무 혼동되고 △농작물 브랜드에 '중앙탑' 명칭이 많이 사용된 점 등이 크게 작용했다.
도민들 사이에서도 △가금면과 금가면의 위치를 구분하지 못한다 △중앙탑(국보 제 6호·탑평리칠층석탑)은 알겠는데 가금면은 잘 모른다는 반응이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
뿐만 아니라 가금면이 중앙탑면으로 변경되면 그동안 국내 지자체 사이에 존재해왔던, 이른바 '한반도 정중앙' 논쟁이 상당부분 해소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가금, 금가면의 지명의 뿌리가 된 지명 '쇠벼라'는 세종대왕의 용비어천가에도 등장한다. 한자로는 '淵遷'으로 적었으나, 백성들은 '쇠벼라'로 불렀다.
강원도 양구군은 "한반도의 정중앙이 자신의 지자체"라며 기념 조형물을 세우고 '정중앙 배꼽축제'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괴산군은 "남한의 정중앙이 청천면"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지역 국문학자와 사학자들은 "가금면 주민들의 의사결정은 존중하지만, 가금면 이름의 뿌리가 된 용비어천가 지명 '쇠벼라'를 기억에서 지우면 안 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후 정인지 등에 명령해 처음 지은 문장인 용비어천가(1445년)에는 한강수계 충주지명의 하나로 '쇠벼라'가 기록돼 있다. 용비어천가는 한자 '淵遷'(연천)을 쓰고 그 밑에 순한글 지명 '쇠벼라'를 적었다.(사진 참조)
이는 당시 백성들이 문자로는 한자 '淵遷'으로 적었지만, 부르기는 '쇠벼라'라고 부른 것을 의미하고 있다. 이때의 'ㅂ'은 '순경음ㅂ'(약한 ㅂ발음)이고 '라'는 '아래아'(·)의 '라'이며(사진 참조), '淵'은 '沼'와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서원대 박병철 교수와 충북대 조항범 교수에 따르면 △'소'는 물이 잠시 머물다가 휘돌아 나가는 모습인 '沼'(소)를 의미하고 △'ㅣ'모음은 속격조사(관형격조사) △'벼라'는 벼랑으로 난 길을 의미하고 있다.
이를 종합하면 쇠벼라는 '沼를 따라서 난 벼랑길' 정도의 뜻이 되고 있다. 전통시대의 충주 쇠벼라는 한양을 오가던 '땅길'과 남한강의 '물길'이 이웃하게 만나는 지점으로 지금의 탄금대 서쪽 건너편~가흥까지의 구간이 되고 있다.(사진 참조)
나아가 두 교수는 "쇠벼라의 '쇠'를 沼가 아닌 '金'으로 오인하다보니 '금천'이라는 지명이 탄생했고, 여기서 '금' 자가 공통적으로 들어간 면이름인 지금의 '가금면'과 '금가면'이 나왔다"고 밝혔다.
이들은 "현재도 남한강과 달천이 합류하는 지점을 沼의 툭 튀어나온 곳이라고 해서 '쇠꼬지'(쇠곶이 변한 말·쇠벼라 출발지점)라고 부르고 있다"며 "가금면 면이름은 변경돼도, 용비어천가 지명 쇠벼라의 역사적인 내용은 표지석을 세워 후세에 전할 필요가 있고 그것이 지역의 자산"이라고 말했다.
/ 조혁연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