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흐르는 수필 - 생의 찬미

이일래: 동요, 산토끼

2023.02.06 17:12:15

김숙영

수필가

'산토끼 변주곡'이 경쾌하게 들린다. 학원에 들어가 보니, 초등 2학년 남학생이 재미있게 피아노를 치고 있다. 에너지 넘치는 토끼가 동심의 마당에서 군무를 펼치고 있는 듯 그려진다.

계묘년 토끼해라 분위기가 특별하다. 작은 남학생이 피아노 교재를 보며, 작은 손으로 연습한다. 쉬운 곡이지만, 오른손으로 주제 가락을, 왼손으로 화음을 맞춘다. 이어 주제 가락이 왼손에, 화음을 오른손으로 쿵작쿵작 연주한다. 다시 가락의 변주로 토끼가 뛰는 모습을 표현하며 곡을 끝낸다. 하얀 무채색의 꼬마 피아니스트가 선율로 삶의 꿈을 배달하고 있다.

남학생이 연주하는 하이든 실 옆 모차르트 실에는 토끼 머리띠를 한 일 학년 여학생이 피아노를 치고 있다. 마치 동화의 나라에 온 것 같은 기분이다. 오래 들어도 물리지 않는 '산토끼'동요가 연습실에서 사랑스럽게 들린다.

이 노래는 1928년 이일래 초등학교 선생님이 작곡한 동요라고 알려진다. 이 곡은 '조선 동요 작곡집'을 통해 발표돼 오늘날까지 애창되고 있다. 이일래 교사가 근무하던 창녕 이방초등학교에는 산토끼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최근에는 인근 우포늪으로 체험하러 오는 이들이 산토끼 노래비를 찾아 그 의미를 새긴다.

어릴 적 할아버지와 산에 오르면서 있었던 일들을 곱씹어 본다. 작은 토끼는 마치 큰 쥐처럼 생겼는데 꼬리가 아주 짧고, 회색에 흰색, 갈색이 섞인 털을 지니고 있던 기억이 떠오른다. 다만 귀와 다리로 자기 몸을 지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린 나는 토끼가 나타나면 잡으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할아버지가 '토끼는 뒷다리가 길어 껑충껑충 뛰어다니므로 잡기가 어렵지!' 하며 웃으셨다.
'토끼 두 마리를 쫓다가는 한 마리도 못 잡는다.'는 옛말이 있다. 욕심이 너무 크면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뜻이리라. 긴 뒷다리로 힘차게 뛰는 토끼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선한 동물이다. '별주부전'에 용궁에서 살아나온 영리한 토끼가 그려지며 새롭게 다가온다. 그들은 위험하다 느끼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뛰어 높은 곳으로 오르다가 토끼 굴로 숨는다.

'토끼는 제 굴 세 개는 있다.'라는 속담이 생각난다. 하찮은 생명이 제 살 궁리를 하고 있다. 다산의 상징으로 많은 새끼를 낳는 토끼이기에 새끼의 보호로, 자기방어로 세 개의 굴이 필요한가 보다. 우리 인간은 어떤가. 부모가 준비해 주지 않으면 집 한 채 마련에 평생을 바치고 있지 않은가. 이처럼 삶이 힘들어 결혼 연령이 점점 올라가고, 결혼해도 자녀를 낳지 않는다. 낳고 싶어도 사회적 여건이 힘들게 돼 있어 낳지 못 하리라. 황혼기의 우리 세대 부모들이 보기에는 허허롭고 안타까울 뿐이다.

아이들이 점점 줄어가고 있다. 아이들 또한 자기중심적, 이기적인 행동을 한다. 남들보다 더 가져야 하고, 나눔과 베풂을 모르고 사는 젊은 세대를 보면 더더욱 답답하다. 옴니암니 셈하며, 부모의 자격을 재정적 입장에서 먼저 생각한다.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우리 사회의 가장 시급한 문제가 결혼과 출산이라는 상념에 젖는다.

인간의 성숙 과정을 살펴본다. 과일의 숙성 과정처럼, 단맛 쓴맛의 과정을 심드렁하게 거치며 살고 있다. 우리 인간이 짐승과 무엇이 다른가. 사람인(人)은 혼자 설 수 없다고 누군가와 기대고 살라고 만들어진 상형문자이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그들이 사랑하는 이와 성숙한 삶으로 영위하길 발원으로 담아본다.

초등학교 시절, 도시로 이사와 아버지가 근무하시는 학교 사택에 살았다. 넓은 밭이 집 안에 있어 할아버지가 한쪽으로 토끼장을 여러 개 만들어 놓으셨다. 어느 날 시장에 가신 할아버지가 작고 귀여운, 집토끼 암컷과 수컷 한 마리씩 두 마리를 사 오셨다. 그 토끼는 삼 개월 정도 지나 눈부시게 하얀 새끼 네 마리를 낳았다. 자세히 보니 암놈 어미는 털목도리를 한 것처럼 목 주위에 털이 많았다. 그 털을 스스로 뽑아 산실을 만들어 새끼를 낳았다. 토끼는 임신 후에 한 달 정도 지나면 여러 마리 새끼를 낳을 수 있다. 그래서 다산하면 토끼를 떠올리나 보다.

귀가 긴 토끼의 모습을 다시 떠올려본다. 긴 귀가 무슨 역할을 할까. 사방의 소리를 모두 민감하게 듣고, 자기방어를 하며 살아간다는 생각에 꽂힌다. 크고 긴 귀는 사람의 귀와 달리 청력이 매우 발달해, 어디서 소리가 나는지 음원을 쉽게 탐지한다고 느껴진다. 또한, 긴 귀가 체온을 조절하며 인간의 두뇌처럼 작용한다고 할 터이다. TV에서 사냥꾼이 산토끼 귀를 잡고 흐뭇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이 화면은 토끼의 청각과 지능적 움직임을 차단함이라는 생각에 안타깝다. 한 마리의 여린 짐승이 빈 가슴이 돼 소리 없이 울었으리라.

'우리의 귀는 생의 찬미를 듣는다. 그것은 웅대한 관현악이며 미묘한 교향악이다.'라는 민태원의 '청춘 예찬' 문장을 새겨 본다. 이처럼 인간은 토끼와 달리 귀로 들으며 통합예술을 한다.

학원 피아노 연습실에서 산토끼가 건반 위를 껑충껑충 뛰어 다닌다.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깡충깡충 뛰면서 어디를 가느냐?'산토끼 노래를 부르는 꼬마 피아니스트 손가락도 바쁘다. 귀염둥이들의 소리, 동작 모두가 꿈을 예술로 그리고 있지 않은가.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판단이다. 산토끼처럼 힘든 길을 무조건 뛰지 말자. 삶의 방향을 찾아, 조금은 서분서분하게 아다지오로 살아보자. 삶의 사건들이 계속 생겨나지 않는가. 올해 계묘년에는 치유의 방법으로 토끼의 지혜를 선지식으로 나누며, 생의 찬미를 들어보자. 넉넉한 마음에 소소한 행복이 찾아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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