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산남동에 위치한 디자인 전문업체 '수다디자인'을 운영 중인 변영수 대표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갖고 있다.
[충북일보] “10년 전 벽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이런 걸 만들어도 돈이 되겠다 싶어 집에서 만들어 봤어요. 결과물이 흡족하게 나오더라고요. 디자인에 소질 있다는 생각이 난생처음 들었죠. 당시엔 대학 학비를 직접 마련해야 했어요. 디자인 일을 아르바이트라 생각하고 작은 월세 사무실을 얻어 무작정 영업을 시작했죠. 전략이란 없었어요. 그저 문이 붙어있는 영업장이라면 답도 없이 들어가 명함을 돌려댔으니까요. 문전박대를 당해도 부끄럽지가 않았어요. 누군가는 젊은이의 열정에 대한 연민에 응할 거란 기대감이 있었으니까요. 결국 통하더라고요. 안쓰럽다며 일을 주시는 고마운 분들의 연락이 하나 둘씩 이어졌으니까요. 남루한 외모 덕을 많이 본 거 같아요. 머리 깎는 돈도 아끼다 보니 시너지도 생긴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면도는 돈이 안 들어서 항상 깔끔하게 하고 다녔습니다. (웃음)”
“종이 인쇄 역할이 줄어든 걸 부인할 순 없어요. 대전보다 성업하던 수동 인쇄 골목에 가게 60여 곳이 문을 닫고 지금은 열 곳도 채 남지 않았으니까요. 그래도 디지털이 모든 인쇄물을 대체할 순 없다고 봐요. 화면으로 대체 불가능한 종이가 꼭 필요한 곳들이 있거든요. 가게 메뉴판, 기업 홍보 브로셔, 명함 같은 것들이 그렇죠. 대신 그런 것들의 가치가 변했다는 게 중요해요. 단순 정보전달만이 아닌 독자들의 심미적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하거든요. 인쇄산업 자체가 사양화되는 건 시대의 흐름인 거고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시대와 같이 변해야 해요.”
청주 산남동에 위치한 디자인 전문업체 '수다디자인'을 운영 중인 변영수 대표가 자신의 사무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지훈기자
“예전 사무실에서 도둑이 들었어요. 정말 기이했어요. 돈이 가득 찬 저금통은 그대로인 채 PC와 디자인 소스가 들어있는 외장 하드만 사라졌으니까요. 당장 내일 납품할 디자인 작업 파일이 몽땅 사라졌으니 정말 멘붕이었죠. 며칠 밤을 지새며 고민했어요. 그러다 길거리에 버려진 전단지에서 범인의 단서를 찾아냈어요. 내가 직접 그린 패턴을 그대로 쓴 전단지였거든요. 해당 가게에 바로 전화해 디자인 업체를 알아냈어요. 믿을 수 없었어요. 바로 옆에 있는 가게였으니까요. 항상 인사를 나무며 담배도 나눠 피우던 사장님이셨고요. 지금 가만히 떠올려보면 그 마음도 이해가 가요. 저희에게 고객을 많이 뺏기셨거든요. 이웃 가게의 문을 장도리로 뜯고 소스를 훔친다는 게 사실 절도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사연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각자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결론이 나더라고요. 살려니까 그랬던 거라고요. 용서는 해드렸지만 전 그곳을 떠났어요. 마음을 풀고 화해를 해도 가까이 있는 공간에서 일한다는 게 불편할 수밖에 없는 사이가 됐으니까요.”
청주 산남동에 위치한 디자인 전문업체 '수다디자인'을 운영 중인 변영수 대표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지훈기자
“사진을 좋아해요. 정확하게 보는 걸 좋아하죠. 사진 찍는 게 아니란 얘기고요. 카메라에 미친 적도 있었지만, 그쪽엔 소질이 없다는 걸 일찌감치 알아챘거든요. 신은 대신 제게 사진을 보는 기가 막힌 안목을 준 거 같아요. 그래서 디자인 감각도 사진을 보며 많이 돋아난 것 같고요.”
“아버지가 교직에 계셔서 그런지 좀 고지식하세요.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도 탐탁치않아하셨죠. 대부분 부모가 그렇듯 좀 더 안정적인 뭔가를 하길 원하셨어요. 1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정확히 아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세요. 친구들이 아들 뭐하냐고 물을 때마다 그냥 뭐해 ~ 라고 하시거든요. 그래도 서운하진 않아요. 이젠 적어도 제가 하는 일에 강요는 하지 않으시니까요.”
“변호사 명함을 주문한 분이 계셨어요. 몇 달쯤 지나더니 의사협회 사무장 명함을 가져가시더라고요. 고객의 프라이버시가 있으니까 캐묻진 않았지만 좀 의심이 들었죠. 주기적으로 이름도 바뀌고 직책도 바뀌셨으니까. 외모도 뭔가 태양이 뜨거운 남미 느낌이 무척 강했던 거로 기억하고 있어요. 요즘은 발길이 끊기셨는데 가끔은 명함도 인증제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싶을 때가 있어요. 예전부터 명함은 곧 자신의 얼굴이잖아요. 사람은 명함이 만든다는 말도 있고요.”
청주 산남동에 위치한 디자인 전문업체 '수다디자인'을 운영 중인 변영수 대표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지훈기자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나온 카르페 디엠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모든 중요한 폴더 이름도 카르페 디엠이에요. 지난번 컴퓨터를 도둑 맞았을 때도 제 폴더 이름을 찾아 증거가 됐죠. 직원들에게도 늘 말해요 현재를 즐기라고. 그러기 위해선 일부터 즐기라고. (웃음)”
/김지훈·김희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