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 흥덕구 가경동에 위치한소품편집샵이자 그림작업실 '모스그린'을 운영중인 김초희 대표가 자신의 가게 입구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김지훈기자
“대학 졸업반 시절. 맘의 갈피를 못 잡았어요. 그림도 하고 싶고, 영화미술도 하고 싶고, 사원증을 목에 걸고 출퇴근하는 그럴싸한 회사원도 되고 싶었으니까요. 조바심이 난 거죠. 내 인생이 어디로 가야 하나 싶은 마음에요. 질풍노도 같기도 한 그 시절, 인생 작품이라 할 만한 흡족한 작품이 그때 나왔어요. 잠깐 쳐다볼 때와 계속 들여다볼 때 느낌이 전혀 다른 작품인데 아직 미완성인 채로 방구석에 남겨놨어요. 맘만 먹으면 금세 완성할 수 있지만 왠지 완성시키고 싶지가 않았어요. 언젠가 제 맘이 단단해져 방황하지 않을 때쯤이면 그 작품을 완성해낼 수 있지 않을까요?”
“막연히 서울이란 도시를 동경한 적이 있어요. 문화생활을 즐길 기회도 많고, 골목마다 소소한 소품들이 가득한 거리도 많잖아요. 친구가 서울에서 취업이 됐다길래 독립도 해 볼 겸 잠깐 그쪽에 자리를 잡았었죠. 처음 며칠은 문화가 가득한 서울 생활이 신이 났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가족 생각이 나더라고요. ‘여긴 내 집이 아닌데’에서 시작해 ‘여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닌데’로 생각이 이어간 거죠. 1년도 못 버티고 녹초가 돼 청주로 돌아왔어요. 온종일 가족과 함께 있는 건 아니지만, 이 도시 어딘가에 내 가족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힘이 되더라고요.”
“아이들을 가르칠 땐 아이들이 그린 예쁜 그림 자체를 보는 것만으로 즐거웠어요. 반면 어른들의 경우는 그림 그리는 과정이 즐겁다고 할 수 있죠. 그림의 구상에 대해 대화를 시작하다가 자신의 처지까지 번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에게 치유가 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자신의 첫 작품을 완성한 후 매우 기뻐하며 자랑하는 모습은 아이보다 더 아이 같아 자꾸만 미소를 머금게 돼요.”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에 위치한 소품편집샵이자 그림작업실 '모스그린'을 운영중인 김초희 대표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지훈기자
“아빠가 무뚝뚝한 편이에요. 하지만 ‘딸 바보’라는 걸 알고 있어요. 어릴 적 제가 그린 그림을 보여주면 안보는척 하면서도 항상 애지중지 보관해 주셨거든요. 공방을 시작하면서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아빠의 염려 때문에 티를 안내고 항상 밝게 웃기만 했죠. 사실 조바심과 불안함 때문에 버거운 측면이 없지는 않았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왔는데 아빠가 다가와 아무런 말없이 등을 두드려 주시더라고요. ‘아빠, 왜? 나 괜찮아’하고 씩씩하게 대답을 했어요. 그리곤 제방으로 들어갔죠. 문을 닫는 순간 눈물이 주르륵 흘렀어요. 그날 밤새도록 펑펑 울었죠.”
“제일 좋아하는 소품은 엽서에요. 예전부터 어딜 가건 엽서 한 장씩은 꼭 챙겨왔어요. 정성을 담아 한 글자씩 꾹꾹 눌러쓰는 손편지를 좋아했거든요. 쓰는 것도 받는 것도 항상 기분 좋게 만드니까요. 같은 그림의 엽서라도 글쓴이가 담은 내용에 따라 전혀 다른 가치로 변하잖아요. 남자한테 고백을 받을 때도 손편지라면 마음의 무게가 다르게 느껴질 것 같아요.”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에 위치한 소품편집샵이자 그림작업실 '모스그린'을 운영중인 김초희 대표가 인터뷰를 마치고 자신의 가게 정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지훈기자
“명언을 좋아해서 좋은 글귀가 있으면 항상 적어두는 편인데 그때뿐이에요. 감동이 깊었어도 수첩을 덮으면 금방 잊어버리게 돼요.(웃음) 지금은 ‘추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는 말이 좋아요. 당연한 이치지만 참 따뜻한 얘기잖아요. 지금 제가 느끼는 계절은 초가을이예요. 마음이 가을을 타는 게 아니고 진짜 날씨가 서늘해졌잖아요?”
/김지훈·김희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