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에서 만화까페 '안녕, 만화'를 운영 중인 황충빈 대표가 가게 내부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김지훈기자
“막상 이일을 해보니 만화책의 또 다른 매력에 푹 빠지게 됐어요. 책을 들여와 포장된 비닐을 뜯을 때 뿜어져 나오는 잉크냄새는 정말 황홀하거든요. 냄새를 맡으러 쫓아다녔던 소독차만큼 치명적이죠. 구매한 중고책이 새 책 같은 상태면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아이가 된 기분이 들고요. 온라인으로 구하기 힘든 절판본 판매 글을 발견하고 첫 번째 구매 댓글을 달았을 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에요. 만화를 좋아하긴 했지만 만화를 통해 이렇게까지 행복해 질 수 있을진 몰랐어요.”
“제가 이일을 맘 편히 할 수 있는 이유는 와이프가 수도권에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참 고마워요. 그녀도 만화를 좋아하지만 직장일을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와 만화방 한다는 남편을 무작정 응원해주기란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졸지에 주말부부가 되는 거고요. 그런 우리에겐 14개월 된 아이가 있어요. 와이프가 주말마다 데려오는데 그날이 너무 기다려져요. 아이가 이곳에선 책을 있는 대로 다 꺼내고 만지면서 이 공간 자체를 신나게 즐기거든요. 뭘 알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만 친근하게 책에 접근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정말 뿌듯해요. 모든 부모가 그 마음을 공감할 거예요. 그 땐 마치 이 가게가 전원주택 뒷마당이 된듯한 느낌이에요. 왜 흔히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 있잖아요. 마당에서 가족들이 모여서 바비큐도 구워먹고 잔디에 뒹구는 그런 기분. 안 보이는 곳에선 누군가가 비누방울을 불어 화목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그런.”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에서 만화까페 '안녕, 만화'를 운영 중인 황충빈 대표가 자신의 가게 내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김지훈기자
“성인만화는 소수의 만화가들이 독점하고 있다시피 해요. 그 장르에 진입장벽이 높은 건지 이상하게 신예작가가 출현하지 않더라고요. 그렇다보니 성인만화가들의 작품은 자가복제식이 많아요. 이야기의 서사나 플랫이 다 거기서 거기거든요. 그래도 중년층 남성들에겐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어요. 아무래도 폭력적면서 야한 원초적 자극이 그들의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닐까요? 대체 집안에서 무슨 일들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게 오픈 무렵 오셨던 50대 남자분이 인상에 남아요. 아침 일찍 들어와서는 계산대 옆에 자리를 잡고 누우시더라고요. 자꾸 불러 커피 심부름도 시키고. 만화도 보고 음식도 먹으며 제 옆에서 하루를 함께 보냈죠. 밤 11시가 마감이라 가게를 정리하고 있는데 그 분은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제게 와 돈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당당한 그 모습에 당황했어요. 일단 핸드폰 번호를 물어 전화를 해보니 노래방 주인이 전화를 받더라고요. 전날 놀던 노래방에 돈이 없어 저당을 잡힌 거죠. 삶 자체를 그렇게 사시는 분이구나 하고 체념한 채 그냥 돌려보낼 수 밖에 없었죠. 공교롭게도 그분이 머문 자리에 수북이 쌓여있는 책 제목이 ‘타짜’였고요. 따로 그런 기술 공부를 하시는 건지, 정말 얄밉더라구요.”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에서 만화까페 '안녕, 만화'를 운영 중인 황충빈 대표가 자신의 가게 내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김지훈기자
“경기도에 있는 게임회사에서 15년 정도 일했어요. 그러다 게임기반이 PC에서 모바일쪽으로 급격하게 이동하게 되었죠. 회사 내부에서도 조정이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저 같은 40대 초반의 중간 관리자의 입지가 애매해지더라고요. 게다가 이런 저런 일까지 겹쳐 회사를 그만두고 고향인 청주로 내려오게 되었죠. 만화방을 오픈하기까지 그렇게 고심하지는 않았어요. 어릴 때부터 큰 만화방을 갖고 싶었거든요.”
/김지훈·김희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