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절정은 사람 얼굴에 핀 웃음꽃

4월 청주 무심천 벚꽃 만발

2015.04.05 18:58:45

비가 내린 5일 청주 무심천변의 만개한 벚꽃을 구경나온 시민들이 봄의 정취에 흠뻑 빠져들고 있다.

ⓒ김태훈기자
봄꽃은 피는 것이 아니다. 그냥 터져 나온다. 적어도 벚꽃은 그렇다. 4월 첫날부터 무심천 벚꽃이 조금씩 환한 얼굴을 내밀더니, 주말 절정을 이뤘다. 무심천 일대는 청주의 대표적 벚꽃 군락지다. 시민들은 비가 내린 날도 아랑곳하지 않고 몰려나왔다. 벚꽃은 봄날의 환영처럼 잠깐 부풀었다가 곧 스러진다. 사람과 사람의 경계에는 찰나를 같이 소유하는 애틋함과 화기(和氣)가 흐른다.

'너와 나의 생애 사이엔, 벚꽃의 생애가 있다'

일본 시인 바쇼의 하이쿠처럼 꽃가지 사이사이 모두 꽃잎의 미소로 번진 얼굴이다. 꽃그늘 아래 생판 남인 사람 하나도 없다.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벚꽃이 만개한 무심천 도로변은 그대로 꽃의 터널이다. 걷고 있으니 흩날리는 꽃잎이 얼굴에 닿아 초겨울 첫눈을 맞은 것처럼 새치름하게 신선하다. 눈(雪)은 무향이지만, 꽃잎에는 향내가 난다. 나풀나풀 머리로 가슴으로 떨어져 내려 그대로 마음의 융단이 된다. 사푼사푼 걸을 때, 폴폴 피어오르는 꽃잎의 향연을 보라. 꽃구경 나온 유치원 아이들은 둥그렇게 모여 앉아 꽃잎을 모으며 간식을 먹는다. 눈이 동그란 여자아이 하나가 김밥에 내려앉는 꽃잎을 걷어내며 눈부시게 웃는다. 사람이 꽃이 되는 풍경이다. 무심천가의 나무벤치에 앉은 노신사가 마치 한순간 깨달음을 얻은 선승처럼 분분히 날리는 꽃잎을 무심하게 올려다본다.

현재의 청주 무심천 벚꽃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원래 무심천 일대의 벚꽃은 일제치하시절, '벚꽃 동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청주시민들이 사랑하던 곳이었다. 그런데 당시의 벚꽃나무가 병충해에 시달리다 고사되면서 흉물로 변해갔다. 그러자 1970년 초반, 벚꽃나무를 베어버리고 버드나무를 심었다. 하지만 버드나무에서 발생하는 꽃가루가 봄철이면 사방에 날리자, 알레르기를 유발한다는 민원이 잦았다. 이때 15대 청주 시장이었던 지헌정씨가 1984년 11월 버드나무를 베어버리고 다시 전국에서 벚꽃나무를 구해 심었다.

"꽃가루로 인해 시민들의 민원이 심했던 버드나무를 베어버리고 전국에서 벚꽃나무 대목(大木)을 구해 심었어요. 85년 4월 무심천 벚꽃이 일제히 개화하자 시민들이 몰려나와 벚꽃을 만끽했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풍경이 눈에 선합니다. 지금 벚꽃이 한창이지요?"

멀리 안산에서 옛 소식을 전해준 지헌정(84) 전(前)시장의 마음에도 벚꽃이 피었으리라. 투박한 나뭇가지를 뚫고 어떻게 혼신의 개화를 이루어냈는지, 천상의 맑은 구름이 내려와 꽃잎 모양으로 현신한 듯 아름다웠다. 그 꽃그늘 아래로 다정한 친구와 연인들, 가족들의 모습은 또 다른 꽃이었다. 주름진 어머니의 얼굴 옆에 작은 꽃송이 꽂아주고 어깨를 감싸 안으며 걸어가는 청년, 벚꽃나무 아래 쪼그리고 앉아 꽃잎을 모으는 아이들, 할머니의 등에 업혀 벚꽃송이로 이마를 간질이며 까르륵거리는 아기…….

어쩌면 꽃의 절정은 사람 얼굴에 피어나는 웃음꽃이 아닐까.

/ 윤기윤기자 jawoon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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