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만으로 보자면 성공한 토론이다. 동시간대에 방송된 일일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도 토론 중계에 밀렸다.
그런데 따분함의 상징인 토론방송이 예능방송을 능가한 이유가 국민의 정치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을까. 그보다는 노는 꼴들이 하도 신기해서 채널을 고정했지 않았나 싶다. 작금의 토론행태를 두고 예능보다 재밌고 개그보다 웃긴다는 평을 한다. 이 말을 순화하지 않고 그대로 표현하면 '놀고 있네'가 되겠다.
노는 유형 몇 가지를 추려본다. 상대방에게 질문을 하고는 답변을 하는 중에 말을 끊고 빈정거리며 답변을 타박한다. 받은 질문에 대답이 막히면 역으로 질문을 하거나 동문서답을 한다.
잘못을 집어내면 천진한 얼굴로 내가 한 일이 아니라고 발뺌한다. 코너에 몰리면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인다. 말이 막히면 고개를 흔들고 한숨을 쉬며 동동거린다. 예능방송이라 해도 삼가야 할 비속어를 거침없이 날린다.
의도치 않게 큰 재미를 준 대선 후보들의 TV토론 장면이 화제가 되면서 이에 대한 패러디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직설적인 지적이나 욕보다 무서운 풍자 열풍이다.
4차 토론을 마친 다음 날, 유승민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응답 패러디가 카톡 메시지로 들어왔다. 공공 일자리 재원마련 계획을 두고 벌인 설전을 이토록 재미지게 패러디한 사람이 누구인가. 그의 재치가 놀랍다.
"유승민- 문 후보님. 다시 묻겠습니다. 내일 아침에 빵 드실 겁니까? 문재인- 빵은 밀가루로 만드는 것이죠. 현대인 대부분이 아침으로 먹는 음식이기도 하구요. 유승민-아니, 내일 아침에 빵 드시냐구요. 문재인-이미 답변 드렸습니다. 유승민- 허~ 그럼 내일 아침 살 빵 무슨 돈으로 사실 겁니까? 문재인-이미 여러 차례 답변 드리지 않았습니까, 차기 정부의 제빵합의기구에서 논의하자는 것이구요. 이 문제 더 토론하고 싶으시면 저희 제빵정책위원장이랑 토론하세요."
다른 후보와의 대화내용을 끼워 넣기도 했다. 유 후보에게 계속 공격을 당하자 문재인 후보가 참다못해 '이보세요! 그만 하시죠 "라고 항의한 내용은 유후보와 문후보가 아닌 홍준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다툼을 가져다 붙인 것일 게다.
홍준표 후보를 향해 스트롱이 아니라 나이롱, 고장난 세탁기라 비아냥거렸던 심상정 후보의 발언과 문재인 후보에게 "제가 갑철수입니까" "제가 MB 아바타입니까"라며 억울해한 안철수 후보의 모습도 패러디의 소재가 됐다.
토론의 결과를 두고 각 후보 진영은 상대 후보들을 겨냥해 입만 열면 거짓말과 막말로 국민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며 비난의 화살을 쏘고 있다. 적절한 지적이다. 다만 거짓말과 막말을 하는 주체가 상대를 비난하는 자신이 아닐까 반성하는 마음도 가져야 균형이 맞는다.
명재상으로 칭송받았던 선조 때의 정승 이준경이 서자출신인 이양원과 이수광 중 한사람을 판서(判書)로 발탁하려 했을 때의 일이다. 그는 자질을 보기위해 두 사람을 함께 기방에 데려갔다.
술이 거나해지자 이준경은 시중들던 기녀의 손을 잡고 "오늘 밤 나와 동침하지 않겠느냐" 물었다. 이에 기녀가 대답했다. "천첩이 대감을 잠자리에 모신다면 자식을 낳게 될 것인데, 앞에 계시는 두 분들과 같은 지체가 될 것이니 영광입니다"
두 사람의 기색을 살피고자 미리 입을 맞춘 수작이었다. 이준용은 기생의 당돌한 말에 안색이 변한 이수광 대신 태연히 자세를 지킨 이양원을 판서로 기용했다고 한다.
'틱 낫한' 스님은 화가 났을 때 남을 탓하거나 자책하기보다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라고 충고했다. 정작 정책은 실종된 채 감정대립과 말장난으로 난장판인 토론을 보며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지도자의 자질과 덕목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