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와 지방시대의 역설

2024.01.23 15:47:27

차영우

충북반도체산업육성협의회 부회장·청주대 교수

반도체는 '산업의 쌀'이라고 불린다. 우리 산업이 중공업 중심일 때 산업의 쌀은 '철강'이었다. '제철보국(製鐵報國·철을 만들어 나라에 보답한다)'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철은 우리 산업의 근간이었다. 이후 철강의 시대가 저물고 산업의 근간은 반도체로 옮겨 갔다. 반도체 산업 주도권에 따라 국가 헤게모니가 변화하는 등 반도체 산업의 파급력은 막강하다. 우리나라도 반도체를 국가첨단 기술로 규정하고 글로벌 패권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1월 15일 정부가 발표한 세계 최대·최고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 방안도 그 일환이라 할 수 있다.

경기 남부 일대에 2047년까지 총 622조를 투자해 2천102만㎡의 세계 최대 규모, 세계 최고의 반도체 생산기지로 육성하겠다는 것이 골자인데 반도체 '클러스터 국가대항전'에서 승리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그러나 발표 직후 지방소멸 가속화 등 부정적 기사들이 쏟아졌고 경기지사마저 국민을 호도한다며 깎아내렸다. 사실 이번 정책은 지방시대를 실현하겠다는 정책기조와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2023년 지방시대를 위한 정책을 추진하겠다며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를 설치했고 지방시대를 천명했다. 그러나 이번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는 수도권 '반도체 블랙홀' 가속화 및 수도권 쏠림 심화로 지역 소멸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

반도체가 주력 산업인 충북도 타격이 크다. SK하이닉스와 네패스, DB하이텍을 비롯해 200여 개가 넘는 반도체 기업이 집적한 충북은 반도체 수출 비중이 25.5%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반도체 산업 요충지이자 중부권 핵심 거점이다. 충북도는 반도체 육성 중장기 플랜을 위한 반도체 육성 전략을 발표하고 4대 핵심 선도 분야를 선정해 집중 추진하는 등 도정 역량을 집중하고 있으나 정부의 반도체 수도권 집중화 정책은 충북 반도체 산업 육성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지방 홀대론을 차치하더라도 이번 정책은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우선 반도체 팹 운영에 필수적인 전력과 용수의 문제다. 정부는 LNG 발전소를 건립하고, 호남 재생에너지와 동해 원전을 끌어 전력수요를 충당하겠다고 밝혔는데 지역의 용수·전력 인프라를 연계해 클러스터를 분산 조성하면 송전선 등 인프라 조성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빠른 클러스터 조성이 가능하다. 일본은 훗카이도, 구마모토 등에 클러스터를 조성할 계획이며 미국은 전 국토의 클러스터화를 추진하는 등 세계적으로도 반도체 클러스터는 분산 추세다.

클러스터를 분산하면 한 곳에 집중된 클러스터와 비교하여 재난에도 쉽게 대응할 수 있다. 대형사고 발생 시 한 곳에 집중된 반도체 팹들은 전력, 용수 공급에 차질이 있을 수 밖에 없고 그 결과는 명약관화하다.

정부는 이번 정책으로 300만 명 이상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밝혔다. 이는 지역 인재를 수도권으로 몰리게 하며 지역 기업들은 우수인력을 수도권에 빼앗긴다. 인구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자체들도 생존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고, 최근 지자체 중 출산률 1위를 기록한 충북도 역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도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정책이 수반돼야 지역 소멸을 막을 수 있다. 정부는 이제라도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해 주길 바라는 지역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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