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장 보존, 정치권이 나서라

2014.11.24 19:35:11

메밀꽃 하얗게 핀 밤이면 허생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때로는 그 목소리가 사랑의 밀어로도 들리고, 또 어떤 때는 인생 여정의 회한어린 정담으로도 느껴진다.

기자는 지난해 봄부터 가을까지 도내 12개 장(場)을 쏘아 다녔다. 30년 전 충북지역의 5일장 40여곳을 르포로 기록해놓은 본보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어제와 오늘의 장날 모습을 원고지에 담고자했다.

그 작업이 잘 됐는지, 현장 캐리캐처나 장꾼들의 민중 생활사는 잘 담았는지는 끝맺음의 장에서 걱정이 아니 될 수 없다. 관계 문헌의 부족, 현지답사의 미비 등으로 주마간산(走馬看山)의 우(遇)를 범한 것 같아 후회가 막급하다.

하지만 처녀가 아이를 낳아도 할 말은 있다고 기자도 나름대로의 핑계를 대보고자 한다.

일단 사료(史料)가 전무했다. 각 시·군 지자체는 5일장이 열리는 날짜를 빼놓곤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장날이 언제 생겼는지, 상인수는 몇 명인지, 유통구조는 어떤지 등등 장날에 대한 기본정보를 얻을 곳이 없었다. 5일장은 대부분 외지 상인들로 이뤄진 까닭에 토착 상인들의 설명도 듣기 어려웠다.

5일장 노점이 군청 앞 4차선 도로를 무단 점유하고, 상설시장 점포 상인들과 5일장 장꾼(일명 장돌뱅이)들 간의 이권다툼 등 각종 불법행위가 발생해도 행정당국은 모르쇠 일관이었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기자는 무작정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5일장의 병폐와 개선책을 거시적으로나마 독자들에게 전달했다. 이대로 가단 5일장의 어제와 오늘은 있어도, 미래는 없다고 거듭 호소했다.

기자의 역할을 여기까지다. 이제는 행정당국과 정치권이 나서야 한다. 사실상 5일장을 전통시장으로 인정하지 않는 엉터리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5일장을 면피적으로나마 관할하는 지자체와 지방의회, 중소기업청은 더 이상 법 제정 권한을 운운하지 말고, 현실을 반영한 법이 개정되도록 지역 국회의원들을 설득해야 한다.

금방 눈에 나타나고 거창한 것만이 역사적 의미를 지니는 건 아니다. 장터 모퉁이에 널린 선조의 숨결과 파편을 아무 값어치 없다고 단정 지어선 안 된다. 큰 것도 중요하지만, 작은 것도 쉽게 내팽개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전통문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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