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지 않아도 배움이 일어나는 교육

2024.05.06 14:24:13

임영택

송면초등학교 교장·동요작곡가

'학교에서 가르침을 뺀다면?' 엉뚱한 상상을 해 본다. 흔히 학교는 가르침과 배움이 동시에 일어나야 하는 곳이며, 잘 가르치고 잘 배워야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곳으로 이해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학교란 잘 가르치는 활동을 통해 인격적으로나 지식적으로 훌륭한 인간을 길러내는 곳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과연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인격적으로나 지식적으로 훌륭한 사람을 기를 수 있는 것인지 막연할 때가 있다.

날마다 조금 일찍 출근하여 '아침맞이'를 한다. 아이들의 표정을 살피고, 옷 색깔과 매무새도 유심히 챙겨본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공수를 하고 아이보다 먼저 인사를 한다. 그리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오늘은 또 어떤 즐거운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파이팅!' 과 같은 덕담을 하며 손뼉맞장구를 한다. 날마다 자람터 앞 서쪽 출입구에서 벌어지는 풍경이다. 아이들은 물론 우리 학교 모든 교직원과도 덕담과 손뼉맞장구를 나눈다.

처음엔 쑥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작은 실행이 하루를 활기차게 시작하게 한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실천하고 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시간이 지날수록 말로만 인사하던 아이들이 공수 인사를 하기 시작한다. 손뼉맞장구를 피하던 아이들도 서서히 한 손, 두 손으로 이어가며 손뼉맞장구를 하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두 달여가 지난 지금은 품속으로 쏘옥 들어오며 '교장 선생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라며 말을 건넨다. 순간 아이의 눈동자 속에 담긴 행복한 기운을 얻는다.

교사가 꼭 무엇을 가르쳐야만 배움이 일어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배움이란 의도하거나 의도하지 않거나 일어나고 채워진다. 그런데 억지로 무엇을 가르치려고 마음먹는 순간 배움은 저만치 뒤로 물러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교사로 살아오면서 스스로 만족할 만큼 수업 준비를 충실히 했다고 판단되는 날 오히려 수업을 망쳐 본 경험이 있다. 반대로 수업 준비를 소홀히 했을 때 오히려 수업다운 수업이 이루어졌던 경험도 있다. 그리하여 가르침보다는 배움에 더 초점을 둘 필요가 있음을 깨닫는다. 내가 무엇을 가르치는가보다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는가에 교육의 방점이 찍혀야 한다. 아울러 어떻게 배우는가에 대한 성찰은 다른 어떤 배움의 과정보다도 중요한 덕목이다.

평소 '교사가 곧 교육과정이다.'라는 철학으로 교단에 선다. 말과 도구로 가르치는 것만이 가르침이 아니라 아이들에겐 주변의 현상들이 다 배움의 요소라는 의미다. 교사로서, 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삶 자체가 교육과정이며, 아이들은 스스로 배움을 통해 삶을 가꿔간다. 억지로 가르치려 하면 배움은 점점 멀어지고, 아이 스스로 배움이 필요하다고 여길 때 비로소 배움이 일어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교사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잘 잡아내어 지지하고 안내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오늘도 변함없이 '아침맞이'를 하면서 가르치지 않아도 배움이 일어나는 교육을 꿈꾼다. 그런 학교를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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