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을 게 없다

2024.03.24 14:38:01

정민주

교통대 항공서비스학과 교수 언젠가 지인들과 함께 음식점에 갔을 때 일이다. 직원에게 앞치마를 달라고 하니 하얀색 일회용 앞치마를 가져다 주는데 앞치마 앞쪽에 "나는 착한 고객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식당 안에 있는 대부분의 손님들이 '착한 고객' 앞치마를 입고 식사하고 있는 모습 그리고 함께 간 지인이 전혀 착해 보이지 않는 외모에 '착한 고객' 앞치마를 입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고 심지어 다같이 유니폼을 입은 듯한 일종의 동질감까지 느껴

어느덧 마지막 꽃샘추위도 살살 고개를 숙이고 따뜻한 봄냄새가 바람에 실려온다. 봄날의 공기를 맘껏 들이마시면서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 대한 새로운 기대와 기분좋은 설레임을 느끼는 시간이다. 늘상 돌아오는 계절의 변화지만 봄은 우리에게 새로움과 시작, 희망과 기대를 가져다주는 고마운 계절인듯하다. 걸어서 동네 마트를 다녀오는 길이 참 신선하고 활기찬 여유로움과 이유없는 기대감을 준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늘 하게 되는 고민이 있다. '작년 이맘때에 뭘 입고 다녔었지? 날씨도 따뜻해졌는데 뭘 입어야할까? 마땅히 입을만한 게 없네….'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이런 고민이 자주 들리는 것으로 보아 입을게 없다는 고민은 나만 하는 게 아닌가보다.

옷장을 열어보니… 입을게 없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옷장에 옷은 많다. 그런데 입을 만한 옷이 없다. 작년에 뭘 입고 다녔는지 새삼 궁금해지는 시간이다. 옷장 안에 옷이 한가득인데 입을 게 없다는 아이러니한 사실 앞에서 봄 옷을 좀 사야할지 고민해본다.

옷장을 열면 옷은 많은데 입을만한 게 없고 신발장을 열면 신발은 많은데 신을만한 게 없다는 것은 마치 '시지프 신화' 속의 형벌처럼 바뀌지 않고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일인가보다.

우리는 여러 벌의 옷들이 있음에도 새로운 옷에 대한 필요를 느끼고 새로 유행하는 패션에 관심을 기울인다. 현대소비사회에서 우리는 입을게 없어서 옷을 사고, 배가 고파서 밥을 먹기 보다는 소비를 통해서 다른 효용을 추구하고 그 이상의 욕구와 가치를 충족시키고 싶어한다. 사람들은 옷을 사고 싶은 욕구가 스스로 자생적으로 생겨났다고 생각하지만 스스로 우리의 내면에서부터 생성되기보다는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그리고 기업의 의도에 따라 우리의 필요와 욕구가 부추겨지고 조작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기업의 마케팅 활동과 심리적 전술로 인해 우리의 욕구가 결핍된 것으로 인지되기도 하고 생각하지 못했던 욕구가 생기기도 한다.

기업이 엄청난 양의 상품들을 생산해내고 이렇게 생산된 많은 양의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다양한 이미지가 소비자들에게 강요되고 이러한 이미지들은 소비자에게 충족되지 않은 측면을 보여주면서 쇼핑의 세계로 우리를 끌고 가는 것일 것이다. 우리는 소비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좀 더 세련되고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사회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고 기업은 우리의 이런 욕구를 다양한 마케팅 활동과 심리적 전략으로 우리의 마음을 홀리고 소비를 부추기고 있다. 그렇다면 봄 옷을 새로 사고 싶은 내 마음은 기업의 다양한 마케팅 활동의 결과이자 자본주의의 산물인 것인가….

한 신문기사에서 아프리카 가나의 바닷가가 버려진 옷들로 가득 차 있고 바다 속에도 버려진 옷이 가득하다는 내용을 보았다. 해안가는 염료와 미세 플라스틱으로 녹아 물들었고 바다 거북과 산호도 사라졌고 더 이상 물고기도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아프리카의 거대한 옷더미 산에서 태우고 태워도 쌓이고 버려지는 옷들이 많아서 결국은 이렇게 바다에 버려지는 것이다. 교복이나 작업복에 한국어가 써 있거나 한국 상표가 붙은 옷들도 여기저기 보인다고 한다. 전 세계 폐수의 20%, 온실가스의 10%가 옷을 만들고 버리는 과정에서 생긴다는 내용을 보면서 예전에 한 쇼핑몰 할인 행사에 갔을 때 이렇게 많은 옷을 누가 다 사가는지, 못 팔고 남은 옷은 어떻게 되는지 잠깐 궁금해했던 기억이 난다.

어차피 새로 사는 옷도 지금 가지고 있는 옷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새로 옷을 장만하기 보다는 작년에 입던 옷들을 잘 조합해서 입어보는 것도 괜찮은 결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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