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론성지 단풍은 왜 핏빛으로 물들까

2016.09.20 14:05:11

조혁연

충북대 사학과 초빙교수

테레사 수녀가 가톨릭 성인(聖人, sanctus)의 반열에 오른 것을 계기로 한국 가톨릭 성인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한국 가톨릭에는 103위가 성인의 반열에 올라있다. 가톨릭 교회법상 성인의 반열에 오르려면 물리적, 윤리적 기적(奇蹟, miraculum)을 행하였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성인의 반열에 오른 103위는 기적 확인 과정을 생략하고 지난 1984년 복자에서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로마 교황청은 목숨과 맞바꾼 신앙심 자체를 기적으로 판단하였다. 한국 가톨릭 103위 가운데 충북과 연고가 있는 인물의 한 분으로 장주기(張周基, 1803∼1866) 요셉이 있다.

장주기 요셉 조각상.

수원이 고향인 장주기는 1820년대 제천시 봉양읍 구학리의 배론으로 이주하였다. 1855년 그의 돈독한 신앙심은 자신의 집이 신학교로 사용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교인 배론신학교는 이 같은 배경 아래 탄생하였다.

배론신학교의 초대 교장은 프랑스 파리 외방교회 소속의 푸르티에(Pourthie, 한국명 신요안, 1830-1866)로, 1855년 6월 중국 상해를 거쳐 바닷길로 조선에 입국하였다. 배론신학교의 교수직은 프랑스 출신의 또 다른 신부인 프티니콜라(Petinicolas, 한국명 박덕로, 1828-1866)가 맡았다. 그는 제천 산골의 아동들을 대상으로 신학 외에 라틴어, 동식물학, 지리학, 과학 등 서양학문도 가르쳤다. 그 결과 1866년 총 8명의 신학생을 배출할 수 있었다.

흥선대원군은 집권 초기에는 천주교를 박해하지 않았다. 천주교 신자 가운데 남인이 많았고, 흥선대원군은 노론의 반대세력인 남인을 우호 세력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은 러시아가 한반도 방향으로 남진하자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발칸반도를 통해 대양으로 진출하려 했으나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의 반발로 실패를 했고, 그러자 한반도에서 부동항(不凍港)을 찾으려 했다. 흥선대원군은 주변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자 가톨릭 신자들이 서양인과 내통하고 있다고 여기고 대대적인 박해에 나섰다. 1866년에 발생한 병인박해이다.

배론신학교가 위치하고 있던 제천 봉양읍 구학리에도 피비린내가 몰려왔다. 장주기는 1866년 3월 배론 신학교의 프르티에와 프티니콜라 신부가 체포되자 제천 부근의 노럴골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다른 교우들이 피해를 입을 것을 염려, 자수를 했고 곧바로 서울로 압송되었다. 신학생들은 모두 흩어졌고 배론신학교는 설립 11년만에 폐쇄되었다.

그는 서울의 포청에서 고문을 버티다가 그달 30일 연풍 황석두 등과 함께 충남 보령군 갈매못(일명 고마수영)에서 군문효수형을 받고 64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천주교 청주교구 장봉훈 교구장[주교]은 순혈신앙 가문으로 유명하다. 장교구장은 장주기 성인과 가까운 친척이 되고 또 청주 병영에서 고문 끝에 순교, 복자 반열에 오른 장 토마스(1815~1866)의 5세손이다. 장주기 성인과 장 토마스는 6촌간이다.

배론성지 가을

배론성지는 가을이면 단풍이 십자가상을 배경으로 무척 아름답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그 빛깔은 순교가 애달퍼서 일까 매년 핏빛으로 물든다. 올해도 그러할 것이다. 배론성지는 천주교 원주교구청 소속이나 충청북도기념물 제 118호로 지정돼 있다.

/ 충북대 사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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