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주사 석연지, 미륵대불을 영접하는 모습?

2016.09.06 15:56:00

조혁연

충북대학교 사학과 초빙교수

충북 불교의 '큰집'인 법주사가 요즈음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법주사는 충북도의 요청을 수용, 관광진흥 차원에서 문화재관람료를 폐지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적 해탈을 위해 수행하는 것은 불교에서는 소승'(小乘), 널리 중생 구제를 목표로 하는 것은 대승(大乘)이라고 부르고 있다.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지만 법주사의 이번 결정은 대승적인 것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속리산 법주사는 국보와 보물급 유물을 많은 간직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가운데 국보 제 64호 석연지(石蓮池)가 있다. 석연지의 겉면에는 활짝 핀 연꽃이 조각되어 있고, 그리고 물그릇 모양의 내부는 많은 양의 물을 담수할 수 있을 정도로 넓다. 그래서 석연지라는 이름을 얻었다. 대체로 통일신라 때인 8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보 제 64호인 법주사 석연지(石蓮池).

석연지 조각의 정수는 몸돌 겉면의 연꽃 문양이다. 겉면 하부에는 돌아가며 각 면마다 2장의 꽃잎이 아래로 향해 강한 질감으로 돋을새김 돼 있다. 그 위에는 연꽃 무늬 8개가 역시 돋을새김 되어있다. 그리고 맨 위에는 전통주택에서 볼 수 있는 난간 모습의 조형물이 올려져있다.

석연지의 용도와 관련하여 그 안에 물을 채우고 연꽃을 띄웠다는 설이 구전되고 있다. 그러나 이 구전은 잘 납득되지 않는 면이 있다. 석연지는 둘레 6.65m, 높이 1.95m로 크기도 하거니와 키가 꽤나 높은 편이다. 따라서 보통 사람은 석연지 안의 연꽃을 볼 수 없다. 또 사다리를 이용해야 석연지 안에 물을 부을 수 있고, 그나마 겨울철에는 연꽃을 기를 수 없다.

미술사학 전문가들은 석연지의 상징성을 다른 곳에서 찾고 있고, 그 힌트가 되는 불교 조형물은 통도사 봉발탑(보물 제471호)이다. 사발에 뚜껑이 덮인 모양을 하고 있는 이 조형물은 부처님의 제자인 가섭존자가 발우와 가사를 가지고 미래불인 미륵불을 기다린다는 교리에 따라 만든 상징물이다. 따라서 이 탑은 달리 의발탑(衣鉢塔)이라고도 부른다.

가섭존자는 석가의 십대 제자 중 한 사람으로, 석가가 열반하자 제일 먼저 달려가 발(足)에 입을 맞췄고 이후 제자들을 이끌었던 영도자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그를 '두타제일(頭陀第一)'이라는 존호로 숭상하고 있다.

일부 미술사학자들은 법주사 석연지의 상징성도 이 부근에서 찾고 있다. 즉 석연지는 연꽃을 키우려고 만든 것이 아닌, 미륵불의 하생(下生)을 영접하는 '가섭존자의 발우'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고 보니 법주사는 미륵불을 모시는 미륵도량으로 석연지 앞에는 지금도 금동미륵대불이 세워져 있다. 석연지를 절집 스님의 발우로 보기에는 너무 크다. 그러나 미륵대불을 영접하는 밥그릇으로 생각하면 그 크기가 적당히 알맞다. 법주사 미륵대불 옆에는 희견보살도 위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것 역시 미륵불의 하생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가섭존자가 가사(옷)를 준비하고 미륵불을 맞으려는 모습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석연지와 관련된 이같은 해석은 그 위에 난간 모양의 조형물이 왜 설치돼 있는지 잘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외형적으로 발우와 난간 조형물은 잘 맞지 않고 있다. 이 부분의 새로운 해석이 기대되고 있다.

/ 충북대학교 사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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