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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10.01 15:50:58
  • 최종수정2026.10.01 15:5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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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지는 봉선화 열매.

ⓒ 우래제
시골 흙담집 밑에 흩어져 핀 봉선화. 누가 일부러 심지 않아도 잘 자랐던 봉선화. 빨간색, 분홍색, 흰색 다양한 색으로 피면 여인네들은 손톱에 물들이기를 한다. 첫눈이 내릴 때까지 그 고운 색이 남아 있어 첫사랑이 이루어지길 고대하면서.....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봉선화에는 애잔한 전설이 전해진다. 백제(혹은 고려) 때 한 여자가 선녀로부터 봉황 한 마리를 받는 꿈을 꾸고 딸을 낳아 봉선이라 이름 지었다. 봉선이는 곱게 자라 천부적인 거문고 연주 솜씨로 그 명성이 널리 알려져, 결국에는 임금님 앞에 나아가 연주하는 영광까지 얻게 됐다. 그러나 궁궐로부터 집으로 돌아온 봉선이는 갑자기 병석에 눕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임금님의 행차가 집 앞을 지나간다는 말을 들은 봉선이는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나 있는 힘을 다해 거문고를 연주했다. 이 소리를 알아보고 찾아간 임금님은 봉선이의 손으로부터 붉은 피가 맺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매우 애처롭게 여겨 무명천에 백반을 싸서 동여매 주고 길을 떠났다. 그 뒤 봉선이는 결국 죽고 말았는데, 그 무덤에서 빨간 꽃이 피어났다. 사람들은 그 빨간 꽃으로 손톱을 물들이고, 봉선이의 넋이 화한 꽃이라고 봉선화라 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고려 충선왕이 원나라에 머물 때, 꿈에 가야금을 타던 소녀와 얽힌 내용도 비슷하다. 이러한 설화로 보면 봉선화는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여인네들의 네일아트 재료였던 것이다.

지금이야 메뉴큐어로 쓱쓱 바르면 잠깐 사이에 끝날 일이지만 옛 여인들은 좀 복잡한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우선 봉선화 꽃잎과 잎을 따서 괭이밥을 섞어 돌이나 절구로 찧는다. 그리고 깨끗한 소금이나 백반을 섞은 다음, 손톱에 얹어 놓고 피마자(아주까리) 잎으로 감싼다. 비닐이나 천으로 감쌀 수 있으면 좀 더 나은 상황이다. 그런 다음 빠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자고 일어나면 고운 색으로 물들게 된다. 참으로 소박한 놀이 문화다. 괭이밥을 섞는 이유는 괭이밥에 포함된 수산이 손톱의 형질(단백질)을 연하게 하고 소금이 매염제가 돼 봉선화의 물이 잘 스며들게 하는 것이다. 봉선화에는 붉은색을 띠는 안토시아닌 계열의 색소 외에 케라틴(손톱이나 머리카락의 단단한 단백질)에 잘 달라붙는 로손 등 나프토퀴논계 색소가 들어있다. 그래서 봉선화는 손톱 물들이기에 아주 좋은 재료였던 것이고, 이러한 성질까지 잘 이용한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한여름의 놀이 문화였던 것이다.

봉선화는 봉선화과 식물로 우리와 친숙해 우리나라 식물인 것으로 오해할 수 있으나 원산지가 인도·말레이시아·중국인 아열대 식물이다. 신라나 고려 시기에 전래 돼 울타리·밭 주변에 심어 악귀·역귀를 막는 벽사용으로 활용됐다. 붉은색이 사귀나 악귀를 물리친다는 민간신앙 때문이다. 봉선화로 손톱에 붉게 물들이는 것도 악령을 쫓는 풍습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봉선화(鳳仙花)는 꽃잎이 봉황의 날개를 펴서 펄럭이는 모습과 닮아 신선을 보는 것 같아서 붙은 이름이다. 순우리말로 봉숭아 또는 봉숭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봉선화는 5개의 수술이 꽃의 중앙에 모여 피는데, 꽃이 성숙하면 수술이 떨어져 나가고 암술이 나타나는 수꽃선숙(웅예선숙)의 특성을 보인다. 이는 양성화들이 자가수분을 피해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다.

봉선화에 대한 홍난파 작곡/ 김형준 작가 가곡도 있다. 

울 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중략) 

가곡 '봉선화'는 우리들에게 깊은 여운을 주는 노래다. 원래 이 곡은 홍난파가 '애수(哀愁)'라는 제목의 바이올린 독주곡으로 먼저 지었다. 이후 이웃에 살던 김형준이 자기 집 뜰에 피어 있던 봉선화를 보며 노랫말을 붙여, 지금 우리가 아는 가곡 '봉선화'로 완성됐다. 피아노 반주가 붙은 최초의 한국 가곡이자, 한국 창작 예술, 가곡의 효시로 꼽히는 곡이다. 그리고 광복 전에 소프라노 김천애가 흰 치마저고리를 입고 이 노래를 도쿄 음악회에서 불러 조선인들을 목놓아 울게 만들었다. 그 후 일제에 의해 금지곡이 됐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노래를 들으며 봉선화를 보면 정말 당시 우리 민족이 느꼈을 깊은 좌절감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씨방이 익었을 때 살짝 건드리면 씨방이 톡 틀어져 터져 속에 들었던 씨가 멀리 퍼진다. 이는 씨가 여물면 열매껍질에 쌓였던 탄성이 한순간에 풀리며 씨를 튕겨내는 산포 방식이다. 씨가 가까이 떨어져 형제들끼리 서로 빛과 영양을 가지고 경쟁하지 않기 위한 전략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영어 이름도 Touch-me-not이며 꽃말은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다. 속명도 '임페이션스(Impatience, 참지 못하다)'라고 한다. 이를 소재로 만든 노래가 봉선화 연정이다. 시대에 따라 같은 꽃을 보고 느끼는 감정도 다르니, 지금 사랑을 노래할 수 있음을 행복해해야 할 것이다. 늦더위가 예년의 한여름보다 더 덥다. 덕분에 울 밑에 봉숭아도 늦게까지 한창이다. 손녀 하나 있다면 손톱에 이쁜 봉숭아 물들여주고 싶다. 기다리면 그런 날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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