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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9.30 14:33:24
  • 최종수정2026.09.30 14:33:24

이은일

음성수필문학회 사무국장

오늘 손녀가 집으로 왔다. 원래대로라면 산후조리원에서 더 있어야 했는데, 갑자기 체중이 줄어 대학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다행히 문제가 없다는 결과를 듣고 퇴원하면서 계획보다 일찍 집으로 오게 된 것이다. 당장 산후 도우미를 구할 수가 없어 주말까지는 근처에 사는 내가 가서 도와주기로 했다.

 인형 같은 아기를 품에 안아본다. 손자하고는 분위기가 또 다르다. 가만히 보고 있으니, 아기도 나를 보려는 듯 큰 눈을 깜박거린다. 눈매는 며느리를 닮았고, 입매는 아들을 닮았다. 손으로 빚은 것도 아닌데, 부모를 닮는 게 참 신기하다. 아들이 아빠가 되다니, 그 아들을 안았던 품에 아들의 아이가 안겨 있다. '인생 잠깐이다'라던 어른들의 말씀이 실감이 난다.

 나는 중학교에서 '기술·가정' 과목을 가르친다. 요즘 다루는 단원이 '생애 설계와 진로 탐색'이다. 사람의 생애주기는 영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 성년기, 중년기, 노년기의 6단계로 나뉘는데, 각 단계에서 수행해야 할 역할과 행동을 발달과업이라고 한다. 청소년기의 발달과업 중 하나가 바로 '생애 설계와 진로 탐색'이다. 이렇게 청소년기에 생애를 체계적으로 계획하고 준비한다면, 이후 삶의 단계마다 찾아오는 변화에 현명하게 대처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는 여학생은 가정, 남학생은 기술을 배웠다.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부터 성 역할 고정관념이 심했을 시기였다. 지금은 학교에서 양성평등을 가르치고, 자신의 생애 설계와 진로를 탐색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있으니 바람직한 변화이다. 우리 학교 본관 뒤쪽 건물에 '무한상상실'이라는 특별교실이 있다. 나는 이 교실이 좋다. 이름만으로도 학생들의 꿈과 희망이 무한대로 자랄 듯한 느낌이 들어서 그런 것 같다. 수업 시간에 귀를 세우며 눈을 반짝이는 학생들을 보면 더 나은 미래가 그려지곤 하는 것이다.

 지도서에, 단원을 시작하는 동기유발 자료로 우화 하나가 소개되어 있다. 내용인즉, 처음 조물주가 이 세상에 당나귀와 개, 원숭이, 사람을 만들고 똑같이 30년의 수명을 주었다. 당나귀는 무거운 짐을 지고 일만 하며 30년을 살기 싫다며 수명을 줄여달라고 했다. 개도 누군가를 지키며 살기에는 30년이 길다고 했다. 원숭이는 하고 싶은 대로 재주를 부리며 사는 것은 즐겁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삶은 의미가 없다고 수명을 줄여달라 했다. 반면 사람은 주어진 30년이 너무 짧다며 수명을 더 달라고 부탁했다. 결국 조물주는 당나귀에게서 18년, 개에게서 12년, 원숭이에게서 10년을 거둬 사람에게 주었다. 그래서 사람은 30살까지는 자신의 인생을 살다가, 48세까지는 당나귀처럼 일만 하고, 60살까지는 집과 가족들을 지키며 살고, 이후 70까지는 자유분방하되 관심을 갈구하는 삶을 산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들려주면서, 나는 나대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 많다. 노년기의 발달과업은 신체적 노화 수용과 건강 유지, 은퇴 후 생활 적응, 여가 생활 즐기기, 배우자와 자기의 죽음에 대한 대비라고 한다. 다시 꼼꼼히 점검해 보는 게 필요할 것 같다.

 올해로 나는 원숭이에게서 얻은 시간을 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우화 속 원숭이처럼 단순히 재주를 부리며 관심받기를 바라는 삶은 원하지 않는다. 평균 수명이 길어진 지금은 노년의 삶에서도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겐, 손주들을 지켜보는 기쁨도 학생들과 함께하며 느끼는 보람도 그 의미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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