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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9.29 14:39:11
  • 최종수정2026.09.29 14:39:11

이미순

청주시 청원구 민원지적과 주무관

어린 시절, 나의 고향 강원도 시골 마을은 벗어나고 싶은 굴레와도 같았다. 창문을 열면 끝없이 펼쳐진 논과 밭, 밤이 되면 어둠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한적함이 답답했다. TV 속 화려한 고층 빌딩과 밤늦도록 불빛이 꺼지지 않는 큰 도시, 문화생활이 넘쳐나는 세상이 나에게는 유토피아처럼 느껴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나는 망설임 없이 고향을 떠났다.

대학도, 첫 직장도, 그리고 가정을 꾸린 곳도 모두 타지였다. 그렇게 서서히 고향은 내 일상의 중심에서 밀려났고, 명절이나 어버이날에나 잠시 들르는 방문지가 되었다. 꿈꾸던 도시의 삶을 살아가며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나의 뿌리이자 출발점이었던 고향 마을은 까마득한 옛 기억의 한 조각으로 잊혀가는 듯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고, 어머니는 팔순이 넘은 연세로 고향집에 홀로 남으셨다. 얼마 전 고향을 찾았을 때 어머니가 무심한 듯 던지신 한마디가 가슴 깊은 곳을 비수로 찔렀다. "요즘은 자식들이 가까이 살아서 자주 찾아오는 집이 제일 부럽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속상함과 죄책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타지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내 아이들을 챙기며 바쁘게 사느라 어머니의 외로움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자책이었다. 긴급한 일이 생겨도 차로 꼬박 3시간 반 이상을 달려가야 하는 거리. 멀리 떨어져 있다는 현실적 한계는 만약의 상황에 대한 불안감과 함께 자식으로서의 무력감을 더해줬다.

요즘은 가끔 부질없는 상상을 해보곤 한다. '그때 고향을 떠나지 않고 그곳에서 직장을 구해 정착했다면 어땠을까? 어머니 곁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매일 나누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릴 적 그토록 싫어했던 시골의 풍경이, 이제는 어머니의 따뜻한 품이자 그리움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지나온 나의 삶을 부정할 수는 없다. 도시로 나와 겪었던 수많은 시행착오와 치열했던 나날들, 그리고 지금 내 곁에 있는 가족 역시 내가 책임져야 할 소중한 삶이다. 내가 선택한 길을 걸어오느라 어머니와의 거리가 멀어졌지만, 그 거리가 결코 어머니를 향한 마음의 거리까지 멀어지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3시간 반이라는 물리적 거리를 당장 없앨 수는 없다. 내가 짊어진 직장의 무게와 부모로서의 책임 역시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가까이 있지 못한다는 미안함에 마냥 마음을 매어두는 대신, 멀리서나마 어머니의 외로움을 채워드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려 한다.

매일 전해드리는 짧은 안부 전화 한 통, 어머니의 소소한 일상을 챙기는 작은 관심과 선물, 그리고 주말을 쪼개어 달려가는 발걸음. 비록 가까이 사는 자식들처럼 매일 찾아뵙지는 못하더라도, 멀리서 늘 자신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자식이 있음을 어머니가 느끼실 수 있도록 마음을 표현하려 한다. 고향을 향해 달리는 3시간 반의 길, 그 길은 이제 죄책감의 길이 아닌 어머니에게 다가가는 따뜻한 사랑의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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