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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경희

객원논설위원

'한국 오락문화의 창의성을 보여주며 다른 투기나 도박과 달리 민주적 룰을 갖춘 국민적 놀이는 무엇일까?'

국민과 민주를 들먹이는 말장난에 속아 답을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평범한 한국인이 아니다. 아예 세속에 신경을 끈 비범한 도인이 아닌 보통 한국인은 이 질문에 바로 '고스톱'이란 답을 낸다.

고스톱을 예찬가들은 고스톱의 룰 중 '독박'은 불공정한 놀이를 견제하고 '쇼당'은 중재와 화해가 적용된다고 강조한다. 고스톱에 그렇게까지 깊이 있는 뜻이 담겨 있었다니, 새삼 예리한 분석에 무릎을 치게 된다. 고스톱이라는 말은 'go'에 'stop'이 더해진 외래어다. 화투가 일본 쓰시마 섬으로부터 상인들에 의해 우리에게 넘어왔다는 설이 있으나 일본에선 거의 시들해졌다고 한다.

고스톱이 전 국민적 놀이로 정착하게 된 데는 까다롭지 않은 셈법이 일조를 했다. 장소나 인원, 시간, 내기 돈의 액수를 때마다의 상황에 맞춰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은 고스톱의 큰 매력이다.

초기에는 광박, 피박, 멍박, 3고의 개념이 없었으나 내기에서만큼은 쩨쩨함을 용서하지 않는 우리의 기호에 따라 룰도 점점 판을 키우는 방향으로 바뀌게 됐다.

기본적인 룰 이외에도 고스톱에는 즉석에서 정하는 룰이 있는데, 정치에 대한 관심이 유별난 민족성 탓인지 한동안은 전직 대통령의 정치스타일을 풍자한 대통령 고스톱이 큰 관심과 사랑을 받았었다.

말을 꺼낸 김에 박정희 고스톱부터 살펴보자. 박 전 대통령의 3선 개헌을 빗댄 이 룰은 쓰리고를 불렀다가 실패할 경우 승자에게 3배의 돈을 물어줘야 한다.

다음, 싹쓸이를 하면 상대방의 피를 한 장씩 받아오는 일반적 규칙과 반대로 판에 깔린 패를 모두 먹은 사람이 도리어 상대방에게 피를 한 장씩 줘야 하는 황당한 규칙의 게임이 최규하 고스톱이다. 대통령직에 있었으나 허수아비 노릇만 했던 최 전 대통령의 딱한 처지를 읽게 된다.

가장 인기가 있었던 전두환 고스톱은 싹쓸이를 했을 때 상대방이 획득한 피를 한 장씩 거둬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유리한 패를 마음대로 가질 수 있게 했다. 자신에게 유리한 패를 무엇이라도 빼앗아 단번에 판을 장악할 수 있게 한 이 규칙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권력 쟁취를 풍자하고 있다.

6월 열 끗, 2월 피, 9월 피를 먹으면 세 숫자를 모두 더하여 17점으로 인정하는 6ㆍ29 노태우고스톱과 함께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는 게 김영삼, 김대중 고스톱이다. 선을 잡으면 자신의 패를 모두 까발린 후 게임을 시작하고 요행히 그 판에 이기면 점수의 2배를 받을 수 있는 김영삼 고스톱은 툭하면 '마음을 비웠다'는 김 전 대통령의 말버릇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 같다.

김대중 고스톱을 치는 도중 점수가 나면 일단 '고'를 부른 상태에서 상대의 패를 확인할 수 있다. 만일 자신에게 판세가 불리하면 '스톱'을 하고 안전하다 싶으면 '고'를 진행하는 이 편리한 규칙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통령 불출마선언 번복을 배운 것이다.

재치 있는 사람들은 고스톱의 룰을 빌려 사회를 풍자하고 정치판을 흉보지만, 고스톱의 이미지는 지능적이거나 영악하지 않고 서민적이며 소탈하다. 게임에 둔한 탓에 이번 명절에도 가족 고스톱 판에서 지갑 속 잔돈푼을 털렸다. 하지만 끊기는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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