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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9.28 14:13:59
  • 최종수정2026.09.28 14:13:59
[충북일보] 속리산의 매력적인 강점은 압도적인 자연이다. 거대한 산군의 도열은 아름다움을 넘어선다. 숲의 신전과 같다. 생명의 숨결을 품은 산이다. 언제나 두렵지만 가보면 늘 흥분한다.

*** 여행자 숙명은 걷기다

9월 어느 날 사부작사부작 산길을 오른다. 신정리에서 상학봉 거쳐 애기업은바위로 간다. 서두르지 않고 제 호흡으로 걷는다. 숨이 차면 한숨 고르고 다시 걷는다. 오롯이 두 발로 걷는 일에 집중한다. 걷는 중 감각 세포가 안테나를 펼친다. 몸에서 원초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움츠러지던 내면이 확 열린다. 시간과 공간, 숲과 계곡이 함께 한다.

걷는 일은 정말로 인간적이다. 함께 걸어야 함께 하는 사람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아름다운 산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 계곡을 건너는 바람 소리를 고즈넉하게 느낄 수 있다. 숲의 침묵을 즐길 수 있다. 여름의 동굴을 거쳐 바위에 올라온 바람이 뺨을 때린다. 초록 향기가 코로 들어와 폐부 깊숙이 자리한다. 청량한 숨결이다. 시원한 감촉의 따뜻함 좋다. 롤랑 바르트의 통찰을 실감한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프랑스 철학자다. 비평가이기도 하다. 자연 속에서 걷는 행위를 사유의 실천으로 여긴다. 중립의 상태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본다. 대상을 거창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자연의 한순간을 있는 그대로 툭 던진다. 대부분 자연 안에서 걸으며 마주하는 풍경들이다. '나뭇가지에 앉은 새'나 '발에 밟히는 낙엽 소리'가 좋은 예다. 사유의 전환이자 뉘앙스 회복이다.

인류 역사의 출발은 직립 보행 때부터다. 오늘 내 발걸음이 700만 년 전과 이어진 셈이다. 산행에서 발걸음 하나하나는 문장 속 낱말과 같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모여 서사를 만든다. 한 편의 서정을 풍경으로 연출한다. 걷기는 관람이 아닌 목격이다. 단순한 몸의 이동이 아니다. 자연에서 원초적인 감각을 회복하는 일이다. 일종의 숨어 있던 감각 깨우기다. 상당히 존재론적인 삶의 방식이다.

속리산의 큰 산줄기 두 개가 몸을 섞는다. 이내 한 줄기가 더 큰 줄기를 이룬다. 백두대간을 타고 북진하면 백두산에 닿는다. 남진하면 지리산의 서사를 만난다. 낱말 같은 발걸음이 하나하나 모여든다. 고요를 깨는 건 바람 소리뿐이다. 눈을 감으면 다시 고즈넉한 산속이다. 햇살 받은 나뭇잎 한 장이 반짝반짝 빛난다. 고요한 풍경 한 모금을 길게 마신다. 찰나에 여행자의 숙명을 깨닫는다.

*** 어쩔 수 없는 세계로 이동

다시 걸어 처음으로 간다. 내 산여행의 방향은 늘 지금, 여기까지다. 때론 벽이 되고, 때론 길이 되기도 한다. 나를 찾아 떠나지만 끝내 찾지 못한다. 이제 자아를 찾아보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저 탈출에 가까운 걷기를 한다. 일상과 적당한 거리 두기다. 7할 정도는 도피고, 3할은 호기심이다. 그 덕에 다시 걷고 존재한다. 어제와 다른 나를 꿈꾼다.

가보지 않은 길은 두렵지만 가봐야 안다. 걸어온 길이, 달려온 길이 까마득하다. 그래도 걸어온 만큼의 행복이 쌓인다. 내 안에 평화로움과 고요함이 깃든다. 산여행은 마음이 이끄는 어쩔 수 없는 세계로 이동이다. 장소가 아닌 생각이다. 속리산에서 떠올린 롤랑 바르트의 소환은 가슴을 벅차게 했다.

추석 연휴가 끝났다. 더 넓어진 마음으로 일상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훗날 다시 찾을 속리산의 풍경을 생각한다. 함께 한 사람들을 떠올린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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