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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9.28 14:12:14
  • 최종수정2026.10.12 16:25:36

류상현

세명대학교 산업디자인과 조교수

민족 대명절인 추석이 지났다. 추석 뒤 첫 출근을 하면 잘 쉬었느냐는 인사가 오간다. 그런데 열에 여덟은 잠깐 웃고 만다. 쉬긴 쉬었는데 쉰 것 같지 않고 우리는 이걸 명절 증후군이라 부르며 대개 나이 탓 체력 탓으로 이야기를 끝낸다. 디자인을 가르치는 사람의 눈에는 이 말은 의문점이다.

나는 대학에서 디자인을 가르친다. 디자인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꼭 하는 말이 있다. 사람이 물건을 잘못 쓰는 일은 없다고 사용자가 실수했다면 사용자가 틀린 것이 아니라 디자인이 잘못된 것이라고 그러면 한 명쯤 손을 든다. 설명서를 안 읽은 사람 잘못 아니냐고 그러면 나는 강의실 문을 가리킨다. "미시오"라고 붙여둔 유리문을 당겼다가 실수해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손잡이가 막대 모양이면 손은 그냥 쥐고 당기게 되어 있다. 열 명 중 여덟이 같은 자리에서 틀린다면 여덟이 덤벙거리는 게 아니라 문이 잘못 만들어진 것이다. 사람을 탓하기 시작하면 새롭게 디자인을 개선할 곳이 보이지 않는다. 왜 이걸 못 쓰지 하고 묻는 순간 디자인은 거기서 멈춘다. 명절도 그렇다 해마다 같은 때 수백만 명이 똑같이 지친다면 그것은 우리가 약해서가 아니라 오래된 관습이 지금의 생활과 어긋나 있다는 신호이다.

요즘은 전을 종일 부치는 집이 줄었다고들 허는데도 명절 부엌은 한가하지 않다. 격식은 덜어냈는데 마음이 그대로이기에 아들이 좋아한다고 갈비를 재우고 손주 입에 맞는다고 잡채를 만들고 사위 온다고 생선을 굽는다. 형식은 가벼워졌지만, 정성은 줄지 않아 일의 총량은 비슷한 것이다. 힘든 건 양이 많아서라기보다 그 마음을 감당하는 사람이 대개 한 명이라서다. 그러한 부담은 손에만 있지도 않다. 장은 언제 볼지 누가 뭘 못 먹는지 몇 시에 나서야 안 막히는지를 한 사람이 머릿속으로 다 굴린다. 나머지는 시키면 하겠다는 얼굴로 기다리는데 그 기다림이 오히려 일을 두 배로 만든다. 무엇을 시킬지까지 생각해야 하니까.

흔히 푹 쉬라고 하지만 그 말은 설명서 없는 가전제품 같은 조언이다. 우선 연휴의 마지막 하루는 이동이 아니라 착륙에 써야 한다. 비행기도 착륙해서 점검을 마쳐야 다시 뜰 수 있듯이 하루 일찍 돌아와 짐을 풀고 다음 주 일정을 훑는 반나절이 그 뒤 일주일을 살린다. 힘들었던 것은 기억에 두지 말고 적어두는 게 좋다. 특식 세 가지 만드느라 하루가 갔다, 도착 시간이 제각각이라 상을 두 번 차렸다. 가족 대화방에 이런 세 줄만 남겨도 내년엔 그 메모에서 시작할 수 있다. 그걸 기본값으로 다시 정해야 한다. 각자 좋아하는 음식을 따로 챙긴다는 원칙도 모든 끼니를 집에서 해결한다는 전제도 오래전에 정해진 뒤 검토된 적이 없다. 올해는 특식을 하나만 정하고 같이 만들자고 하는 건 정성을 줄이는 일이 아니다. 지친 사람이 없는 식탁이 그 음식을 더 맛있게 만들게 될 것이다. 대화도 마찬가지로 설계가 필요하다. 나는 학생들에게 위험한 버튼은 손이 닿지 않는 곳이거나 숨기라고 가르친다. 주의력을 믿지 말고 구조로 막으라는 뜻이다. 진로나 결혼 이야기는 묻지 말자고 어른 한 분이 먼저 말해주면 그 한마디가 열 사람의 저녁을 편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젓가락도 우산도 자전거도 수백 년을 살아남았지만 처음 모습 그대로인 건 없다. 오래 살아남은 물건은 안 바뀐 물건이 아니라 부지런히 고쳐 쓴 물건이다. 명절의 본래 목적은 흩어져 살던 사람들이 얼굴을 보고 안부를 확인하는 데 있었다. 그 목적이 지금의 방식 때문에 망가지고 있다면 바꿀 것은 목적이 아니라 방식이다. 사용자를 탓하는 순간 디자인이 멈추듯 가족을 탓하는 순간 명절도 거기서 멈추게 될 것이다. 올해 무엇이 힘들었는지 둘러앉아 이야기하는 삼십 분이 내년 명절의 설계도가 될 것이다. 명절 증후군은 앓고 넘어가야 할 계절병이 아니라 함께 고쳐 쓸 수 있는 오래된 초안이고 우리는 시간과 문화에 따라 점차 우리의 방식을 새롭게 디자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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