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건축문화에 K-컬처를 입히다 9.속리산 법주사 일원

지발위 공동주제 심층보도 9. 속리산 법주사 일원
속리산 품은 천년 고찰 법주사…자연 속에 남은 전통 건축의 흔적
대웅보전부터 쌍사자 석등·팔상전까지 이어지는 문화유산
신라부터 조선까지 이어진 법주사의 역사적 가치

  • 웹출고시간2026.09.28 17:00:34
  • 최종수정2026.09.28 17:00:50
[충북일보] 충북 보은군 속리산. 해발 1천57m의 천왕봉을 비롯해 아홉 봉우리가 이어지는 산세와 기암·기석이 어우러진 이곳은 예부터 '제2금강', '소금강'으로 불려왔다. 대한 8경의 하나로 꼽힐 만큼 빼어난 경관 속에는 크고 작은 사찰과 문화유산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 풍경을 따라가다 보면 속리산의 자연과 오랜 역사를 품은 법주사를 만난다. 신라시대부터 이어진 법주사는 대웅보전과 팔상전 같은 목조 건축물부터 통일신라시대의 쌍사자 석등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시대와 형태의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경내를 걸으면 한눈에 하나의 모습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목조건축과 석조 유산이 차례로 시야에 들어온다. 거대한 목조건축물과 단단한 석조 유산이 어우러진 풍경은 오랜 역사가 이어진 법주사의 시간을 보여준다.

'속리산 법주사 일원'은 1966년 사적 및 명승으로 지정된 뒤 2009년 명승으로 변경 지정됐으며, 법주사는 201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속리산의 산세를 배경으로 자리한 법주사는 우리 전통 건축과 석조문화가 자연과 어떻게 어우러져 왔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공간이다.
◇속리산에 뿌리내린 법주사, 1천400여년 역사 이어가

법주사에 들어서면 목조건출물과 석조 문화유산이 차례로 시야에 들어온다. 법주사는 553년 의신 조사가 서역에서 불경을 가져온 뒤 절을 지을 곳을 찾던 중 속리산의 험준한 산세를 보고 터를 정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776년 진표 율사가 사찰을 대규모로 고쳐 지었고,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지금의 규모를 갖추게 됐다. 오랜 역사만큼 순탄한 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법주사는 정유재란 당시 사찰이 모두 불타는 큰 피해를 입었다. 이후 1624년 사명대사와 벽암 대사가 다시 세우고 규모를 넓히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법주사의 모습을 갖춰갔다.

법주사의 가치는 개별 건축물에만 머물지 않는다. 사찰 곳곳에는 국보 3점과 보물 15점, 천연기념물 1점, 도 지정 문화유산 22점이 남아 있다. 팔상전과 쌍사자 석등, 석련지, 사천왕 석등 등은 각각 목조와 석조라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당시의 건축과 조형 기술을 보여준다.

특히 법주사에는 서로 다른 시대의 문화유산이 함께 남아 있다는 점에서 건축의 변화도 살펴볼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석조 문화유산과 조선시대에 다시 세워진 목조 건축물이 한 공간에 자리하면서 오랜 시간 이어진 사찰의 역사를 보여준다.

속리산 법주사 일원은 1966년 사적 및 명승으로 지정됐으며 2009년 명승으로 변경 지정됐다. 법주사는 2018년 7월 3일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등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현재 속리산에는 법주사를 비롯해 복천암, 탈골암 등 10개의 전통 사찰이 자리하고 있다.
◇높이 19m 대웅보전, 목조건축의 규모 보여줘

법주사의 건축적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대표적인 건물 가운데 하나가 대웅보전이다.

대웅보전은 553년 의신 조사가 처음 세웠고 776년 진표 율사가 고쳐 지었다. 임진왜란 때 불탄 뒤 1624년 벽암 대사가 다시 지었다.

건물은 앞면 7칸, 옆면 4칸의 2층 구조로, 면적은 402.80㎡에 이른다. 높이는 약 19m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이루는 팔작지붕으로 만들어졌다.

대웅보전은 무량사 극락전, 화엄사 각황전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불전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금산사 미륵전과 같은 건축 수법이 사용된 건물이라는 점도 특징이다. 장대한 규모와 팔작지붕의 형태는 대웅보전이 지닌 웅장한 건축미를 한눈에 보여준다.

경내를 걷다 대웅보전 앞에 서면 약 19m 높이의 건물이 시야를 채운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앞면 7칸의 규모와 2층으로 구성된 건물의 형태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건물 안에는 보물인 보은 법주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이 모셔져 있다. 세 불상 가운데 가장 큰 불상의 높이는 5.5m, 허리둘레는 3.9m에 달한다. 국내 최대 규모의 소조불 좌상으로 알려진 삼불좌상은 대웅보전이라는 건축 공간과 함께 법주사의 불교문화적 가치를 보여준다.
◇산세를 배경으로 우뚝 선 5층 목조탑, 팔상전

대웅보전 앞에 서서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쌍사자 석등 너머 하늘 높게 솟은 팔상전이 한눈에 들어온다. 팔상전은 법주사의 또다른 대표 건축물로 석가모니의 일생을 여덟장면으로 나눠 그린 5층 목조탑이다. 팔상전에는 통일신라시대 석조 기단과 조선시대 목조 건축, 불교 회화가 함께 남아 있다. 한 건축물 안에 여러 시대의 흔적이 층층이 쌓여 있는 것이다.

팔상전은 두 단의 석조 기단 위에 세워졌다. 기단 네 면 중앙에는 돌계단이 놓였으며, 이 기단과 계단은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목조 건축 아래에 오래된 석조 기단이 남아 있다는 점은 팔상전의 독특한 건축적 가치를 보여준다. 돌로 만들어진 기반 위에 목조탑이 세워지면서 서로 다른 재료와 시대의 흔적이 하나의 건축물 안에 겹쳐 있다.

건물은 위로 올라갈수록 규모가 작아지는 구조다. 1층과 2층은 각각 5칸, 3층과 4층은 3칸, 5층은 2칸으로 구성됐다. 각 층의 밑면은 정사각형이며 위로 갈수록 규모를 줄여 안정성을 높였다.

공포의 구성도 층에 따라 다르다. 1층부터 4층까지는 주심포식, 5층은 다포식으로 만들어졌다. 지붕은 사모지붕이며 꼭대기 부분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져 현재까지 온전히 보존되고 있다.

팔상전 내부에는 5층을 관통하는 중심 기둥이 자리한다. 네 면에는 팔상도가 두 폭씩 배치돼 있으며 그 안에는 열반상과 삼존불상이 담겨 있다. 건축물의 외형뿐 아니라 내부 공간에도 불교적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목조탑인 팔상전은 속리산의 산세를 배경으로 독특한 수직적 풍경을 만들어낸다. 더욱이 걸음을 멈추고 올려다보면 낮게 펼쳐진 석조 기단에서 시작해 5층까지 이어지는 건물의 높이가 더욱 선명하게 느껴진다.

산의 거대한 능선을 배경으로 5층 목조탑이 서 있는 모습은 자연경관과 건축물이 만들어내는 법주사 특유의 공간미를 보여준다.
◇돌에 새긴 두 사자, 법주사 풍경에 깊이를 더하다

대웅보전과 팔상전 사이에 놓인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은 두 건축물 사이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통일신라시대 석등으로 720년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는 3.3m다.

대웅보전의 규모와 팔상전의 높이를 지나 두 건축물 사이에 놓인 석등을 바라보면, 같은 공간 안에서도 전혀 다른 크기와 재료의 문화유산이 눈에 들어온다.

대형 목조건축물이 중심을 이루는 법주사에서 쌍사자 석등은 돌을 재료로 한 석조 문화유산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섬세한 조형미를 보여준다.

석등의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이름 그대로 두 마리의 사자다. 두 사자는 서로 마주 보며 가슴을 맞대고 서 있다. 뒷다리로 아래쪽 돌을 딛고 앞다리와 입으로 위쪽 돌을 받치는 모습이다.

석등 아래쪽은 8각형으로 만들어졌으며 하대 연화석과 쌍사자, 상대 연화석이 이어진다. 특히 이 부분은 각각의 돌을 따로 쌓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돌에 조각했다. 불을 밝히는 화사석과 지붕돌은 다른 석등보다 큰 편이다.

석등은 기능과 조형을 하나의 구조에 담았다. 불을 밝히는 시설이면서 동시에 사자의 자세와 연꽃무늬를 정교하게 표현한 조각 작품이기도 하다. 단단한 돌을 깎아 만든 석등의 섬세한 형태는 주변 목조건축과 또 다른 질감의 풍경을 만든다.

속리산의 산세와 법주사의 목조 건축물이 묵직한 공간감을 만든다면, 쌍사자 석등은 그 안에서 섬세한 조형미를 더한다. 거대한 자연과 장대한 목조건축 사이에 놓인 작은 석조 유산 하나까지도 법주사의 풍경을 이루는 요소가 되는 셈이다.

통일신라시대부터 이어진 쌍사자 석등은 법주사의 오랜 역사를 보여주는 동시에 당시 석조기술과 조형 감각을 살펴볼 수 있는 문화유산이다.

속리산 법주사 일원은 단순히 산속에 사찰이 자리한 풍경으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속리산의 험준한 산세를 바탕으로 법주사의 터가 정해졌고, 그 공간에 시대를 달리하는 목조와 석조 건축물이 차곡차곡 더해졌다.

웅장한 산세를 배경으로 건축, 신앙과 시간이 겹겹이 포개지며 지금의 법주사 풍경을 만들어낸다.

1천400여년의 시간이 쌓인 법주사는 산악 지형을 바탕으로 형성된 우리 전통 사찰의 공간문화를 보여준다. 속리산의 자연은 건축물의 배경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법주사의 공간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가 됐고, 그 안에 축적된 건축과 문화유산은 오늘날까지 하나의 역사적 풍경으로 남아 있다.

공동취재단

충북일보:김용수 사진부 국장, 박소담 사회부 기자, 전은빈 문화부 기자

전북도민일보:이방희 디지털뉴스국장, 김상기 문화교육부 차장, 최진영 편집부 차장, 한신 편집부 차장

자문위원=백승기 건축사·도시공학박사·원광대학교 겸임교수, 박상일 청주대학교 명예교수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매거진 in 충북

'취임 100일' 이상식 충북도의장 "일 잘하는 의회 만들고 실행에 전력 다할 것"

[충북일보] 취임 100일을 맞은 이상식 충북도의회 의장은 "지난 7월 취임 이후 현장을 직접 찾아다니며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했다"며 "도민들이 의회에 바라는 게 무엇인지, 의회를 어떻게 잘 이끌어갈지 깊이 고민한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도민 행복이라는 하나의 지향점을 향해 지역 사회와 발걸음을 맞추는 의회가 돼 도민 삶 속으로 더 깊이 다가가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 의장과 일문일답. ◇ 취임 100일 소감은. "13대 충북도의회 전반기 의장이라는 중책을 맡은 지 100일이 지났다. 보람과 성찰이 함께한 시간이었다. 여야 간 원 구성을 큰 잡음 없이 마무리하고 주요 현안마다 의견을 폭넓게 모아 조율하며 의회가 도민을 위한 일에 한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반면 고물가와 경기 침체 속에서 의회의 노력이 도민이 체감하는 속도에 미치지 못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남은 임기 동안 이런 아쉬움이 반복되지 않도록 현장에서 답을 찾겠다. 임기를 마치는 날 '미처 다하지 못한 일'보다 '도민과 함께 이루어낸 성과'가 먼저 떠오르는 의회가 되도록 늘 처음의 마음으로 성실히 달리겠다." ◇ 13대 충북도의회 출범 후 변화된 모습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