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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

충주문인협회 회원

날씨가 아침부터 덥고 습하다. 몸은 땀에 흠뻑 젖어도 파크골프 재미에 빠져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구장 한 모퉁이를 지날 즈음에 탄성이 쏟아져 내렸다. 어디서 에어컨 바람이 불어오듯 온몸을 시원하게 만들어 주고 있어서다. 그제야 그 근원지가 물안개를 가득 고이고 흐르는 강물 탓인 줄 알아차렸다.

정신을 차리고 두리번거린다. 신선한 충격에 빠진 이유는 바로 바람의 힘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다. 셀 수 없는 안개의 입자를 바람이 흩어서 강 가로 옮겨주는 작용은 표현하지 못할 만큼 청량함을 몰아오고 있었다. 아주 반갑게, 그리고 바람도 길이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도록 했다.

바람은 상황에 따라 제 갈 길을 만들어 낸다. 시간도 정해두지 않으며 제가 가고 싶은 곳으로 부는 것쯤으로 안다. 적당히 부는 날에는 친화적이지만 어디엔가 숨었다가 산을 넘고 바다를 가를 만큼의 위용으로 다가올 때면, 두려움의 대상으로 돌변하게 되니 조심스럽다. 그래서 우리는 바람이 지닌 속성을 이해하고 공존해 가는 방법에 주의를 기울이며 살고 있다.

지금껏 금수저니, 흙수저니, 따위의 낱말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자칭 흙수저라 인정했기에 아예 다른 삶은 거들떠보지 않았고 저울질할 줄도 몰랐다. 오로지 내 앞에 놓인 몫만큼 감당해 가겠노라는 정신에 잡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나 조심하며 가슴이 열어주는 방향으로 걸어야만 했다. 피할 수 없을 때는 인정하면서 멈추지 않아야 했고 꼭 지켜낼 약속쯤으로 여겨왔다.

바람도 제 길을 가다가 넘지 못할 벽이 있으면 분명 우회하는 법칙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방향과 세기에 맞닥뜨릴 때는 다른 길을 찾아가야 할 선택의 기로를 맞이한다. 그동안 살면서 익힌 이런저런 작은 경험이 있어서일까. 용케도 힘에 겨워지면 감당할 만큼의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지금 강가에서 마주한 좋은 바람만을 원하며 살아온 삶이 아니었을까.

삶의 궤적을 들춘다 해도 자랑할 만한 거리는 없다. 잠시 땀을 거두게 만든 바람의 촉감에서 충분한 울림이 있었다는 사실을 고할 뿐이다. 그냥 지나는 바람이 아니었다. 그 길목에 서 있었다는 순간만으로도 작은 감사의 조건이라 생각하고 싶다. 개인에 따라 감정의 차이는 있으리라. 살아가는 여러 일들이 수월할 수도 있고, 난감한 상황에 이르기도 하는 것을 터득한 즈음이어서 그렇다.

이제 나에게 남은 길을 헤아려 본다. 흘러간 시간이 길을 만들며 앞으로의 날로 나를 데려가는 중이었다. 잠시 멈추어 선 채 주변을 살피도록 한다. 흐리기도 했고 밝았던 길들이 이제는 추억처럼 맴돌면서 여유를 허락하고 있다. 거듭되는 계절풍을 겪어낸 듯 담담하게 성장해 가는 상태라고나 할까. 여전히 앞으로 가야 하는 길 위의 인생이나 마찬가지 모양새이다. 시간이 조금 더디게 걸려도 괜찮다고 여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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