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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도 송전선 앞에서 막혔다"…갈등 겪으며 '전력망의 룰' 바꿨다

재생에너지 확대 뒤 송전망 갈등 본격화…주민 반발 속 지중화 우선 전환
건설 속도 높여도 주민 참여는 유지…갈등 '없애기'보다 '다루는 방식' 바꿔

  • 웹출고시간2026.09.13 15:51:52
  • 최종수정2026.09.13 15:51:51

편집자주

반도체 산업 확대와 에너지 전환에 따라 전국 곳곳에서 대규모 송전망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한 국가 기반시설이지만 송전선이 지나는 농촌에서는 환경·재산권·건강권 침해 등을 우려하는 주민 반발이 거세다. 특히 사업 초기 주민 참여와 정보 공개가 충분했는지를 놓고 정부·한국전력과 지역 주민의 시각차가 크다. 충북일보·진안신문·주간함양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주민 동의 없는 초고압 송전선로 갈등, 지역 언론이 해법을 묻다'를 공동 취재했다. 영동·진안·함양의 갈등 현장에서 국내 선행 사례와 독일의 주민참여형 전력망 구축 과정까지 살펴보고, 주민과 지역을 희생시키지 않는 전력망 구축의 해법을 7차례에 걸쳐 모색한다.
<글 싣는 순서>

① 영동·진안·함양, 왜 송전선과 싸우나

② 왜 송전선 갈등은 반복되는가

③ 먼저 겪은 당진이 말하는 것

④ 독일은 무엇이 달랐나

⑤ 주민을 '설득 대상' 아닌 '정책의 주체'로

⑥ 송전선은 들어왔지만, 마을은 떠나지 않았다

⑦ 지역언론이 독일에서 찾은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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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농경지를 가로지르는 고압 송전선로. 넓은 농지 위로 송전탑과 전력선이 이어져 있다.

ⓒ 이진경기자
[충북일보]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앞서 추진한 독일은 재생에너지 전력 비중을 절반 이상으로 끌어올렸지만 또 다른 문제와 마주했다. 전기를 만드는 곳과 많이 쓰는 곳이 달랐다.

풍력발전은 북부와 북해 연안에 집중된 반면 자동차·화학·기계 등 주요 산업과 대규모 전력 수요는 남부와 서부에 몰려 있다. 2023년 4월 마지막 원전 3기까지 가동을 멈추면서 북부의 재생에너지 전력을 남부 등 수요지역으로 보내기 위한 송전망 확충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독일 환경청에 따르면 2025년 재생에너지는 독일 총전력소비의 55.1%를 담당했다. 2000년 6.3%에서 25년 만에 절반을 넘어섰다. 2030년 목표는 최소 80%다.

재생에너지의 성장이 역설적으로 더 많은 전력망을 요구한 것이다.

◇ 재생에너지 늘자 '전기를 옮기는 길'이 문제였다

독일의 에너지전환 '에네르기벤데(Energiewende)'는 발전원만 바꾸는 작업이 아니었다. 북부에서 생산한 풍력전력을 남부로 보내기 위해 A-Nord와 SuedLink(쥐트링크), SuedOstLink(쥐트오스트링크) 등 대규모 남북 송전축이 필요했다.

대표적인 쥐트링크는 북부 슐레스비히홀슈타인에서 남부 바이에른과 바덴뷔르템베르크를 잇는 약 700㎞ 규모의 고압직류(HVDC) 송전망이다. 사업비만 약 100억 유로, 한화로 약 16조 원 달한다. 2025년 10월 마지막 구간까지 계획승인이 끝나 현재 대부분 지중 케이블 방식으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목표는 2028년 말 가동이다.

하지만 독일에서도 대규모 송전망 계획이 발표되자 경과지역 주민들이 반발했다. 경관 훼손과 건강 우려, 토지 이용 제한 등을 이유로 예정 노선 곳곳에 주민대책위원회가 만들어졌고 송전망의 필요성부터 노선과 지중화 방식까지 문제를 제기했다.

탈핵과 재생에너지 확대에 동의하는 것과 자신의 생활권을 지나는 송전선에 동의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12년이 지난 지금도 갈등은 사라지지 않았다. 지난해 방한한 독일연방네트워크청(BNetzA) 소속 보도 헤르만 박사도 국가 주도의 전력망 확충에서 '소통과 주민 참여'를 강조하며 핵심 과제로 '수용'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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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농촌지역에 풍력발전기와 고압 송전선로가 나란히 들어서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 확대는 생산한 전력을 다른 지역으로 보내기 위한 새로운 송전망 확충 과제로 이어졌다.

ⓒ 이진경기자
◇ 주민 반발 속 '지중화 우선'으로 전환

차이는 갈등이 벌어진 뒤 나타났다.

독일은 주민 반발과 사업 지연이 이어지자 2015년 말 주요 신규 초고압 직류송전망(HVDC)을 가공선보다 지중 케이블로 우선 건설하도록 관련 법을 개정했다. 비용이 더 들더라도 경관 영향을 줄이고 주민 수용성을 높이겠다는 판단이었다.

쥐트링크와 쥐트오스트링크는 이 전환을 상징하는 사업이다. 다만 지중화도 모든 갈등의 해답은 아니다. 농지와 토양, 생태계에 영향을 줄 수 있고 가공선보다 건설비도 많이 든다.

독일의 정책이 다시 움직이는 이유다. 연방정부는 올해 4월 앞으로 새로 추가되는 주요 초고압 직류송전망에 가공선을 우선 활용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미 지중화로 추진 중인 쥐트링크 등을 뒤집는 것은 아니지만 수용성과 비용, 건설 속도를 다시 저울질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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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넓은 농경지 사이로 풍력발전기와 고압 송전선로가 이어져 있다.

ⓒ 이진경기자
◇ 속도 높여도 '주민 참여'는 남겼다

독일 역시 전력망 건설 속도를 높이고 있다.

연방네트워크청에 따르면 2025년 말 전력망 확충 필요성이 법적으로 확정된 선로는 약 1만6천800㎞다. 이 가운데 연방네트워크청이 승인 절차를 맡은 선로는 약 9천600㎞다. 지난해 승인한 선로만 약 2천㎞로 전년보다 45% 늘었다.

인허가 단축과 절차 디지털화도 추진했다. 그러나 속도를 높이면서 주민 참여 자체를 걷어내지는 않았다.

박진희 동국대 교수는 지난해 국제심포지엄에서 독일이 인허가 제도를 정비하면서도 기존 시민 참여 절차를 폐지하거나 축소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연방네트워크청은 올해 6월에도 2037·2045년 전력망개발계획 초안을 공개하고 시민과 관계기관의 의견을 받았다.

헤르만 박사도 주민 참여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소통이 신뢰를 만들고 주민 수용성을 높이는 과정이라는 점도 함께 강조한다.

결국 '속도'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다. 계획 초기에 주민 의견을 듣는 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후 반대와 소송으로 사업이 장기간 표류하는 것보다 낫다는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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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농촌지역의 고압 송전선로가 농경지 위를 가로지르고 있다. 독일은 송전망 건설을 둘러싼 주민 반발과 사업 지연을 겪으며 지중화와 주민 참여 등 전력망 추진 방식을 지속적으로 조정해왔다.

ⓒ 이진경기자
◇ 갈등이 없었던 게 아니라, 다루는 방식이 달랐다

독일을 갈등 없는 '모범국가'로 볼 수는 없다. 송전망 반대와 소송은 여전히 이어지고 주민에게 사업을 거부할 절대적 권한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지중화의 막대한 비용도 풀어야 할 숙제다.

그럼에도 지난 10여 년의 과정에서 확인되는 차이는 있다. 갈등을 없앤 뒤 송전망을 건설한 것이 아니라, 갈등을 겪으면서 이를 다루는 방식도 함께 바꿔왔다는 점이다.

독일의 시행 착오는 대규모 전력망 확충을 앞둔 한국에도 질문을 던진다. 이재명 정부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과 '에너지고속도로'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송전망이 늘어날수록 이를 통과하는 지역의 부담과 갈등을 어떻게 풀 것인지도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전기를 어디서 생산해 어디로 보낼 것인가의 문제는 결국 누가 혜택을 얻고, 누가 송전망의 부담을 감당할 것인가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독일의 경험이 던지는 질문도 여기에 있다. '얼마나 빨리 송전선을 지을 것인가'에서 나아가 '누가 결정하고, 주민은 언제부터 그 결정에 참여할 것인가'를 함께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독일 주민은 송전망 계획의 어느 단계에서 정보를 받고 의견을 낼 수 있을까.

다음 편에서는 공동취재단이 독일 현지에서 만난 전문가와 지역 사례를 통해 주민을 '설득 대상'이 아닌 '정책의 주체'로 다루는 전력망 결정 구조를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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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농경지에 고압 송전탑과 풍력발전기가 함께 늘어서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시설과 이를 연결하는 송전망의 모습은 독일 에너지전환이 '전기를 만드는 문제'를 넘어 '어떻게 옮길 것인가'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 이진경기자
공동취재단 충북일보 이진경 기자·진안신문 류영우 국장·주간함양 임아연 부국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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