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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길 들꽃이야기 - 석양빛보다 더 붉은 한여름의 꽃, 동자꽃

  • 웹출고시간2026.09.03 17:01:28
  • 최종수정2026.09.03 17: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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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기 시작하는 제비동자꽃.

ⓒ 우래제
올여름 더워도 너무 덥다. 더위에 관한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는 여름이다. 40도를 넘나드는 더위는 에어컨을 벗어나질 못하게 한다. 그래도 그런 무더위 속에서도 동자꽃은 핀다. 높은 산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 무더위에 꽃을 피워낸다는 것이 참 경이롭다. 이 동자꽃에는 어린동자 스님의 애달픈 사연이 전해진다.

옛날 깊은 산속 암자에 스님과 동자 스님이 함께 살고 있었다. 어느 겨울, 필요한 물건을 구하기 위해 스님이 산 아래, 마을로 내려가게 됐다. 어린 동자 스님은 암자에 남아 스님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스님이 마을에 내려간 사이 많은 눈이 내렸고 산길이 막혀 버렸다. 스님은 곧바로 암자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길을 오를 수 없었다. 산속에 홀로 남은 동자 스님은 날마다 스님이 떠난 길을 바라보며 기다리다 매서운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숨을 거두었다. 눈이 녹은 뒤에야 돌아온 스님은 죽은 동자 스님을 발견하고 정성스럽게 묻어 주었다. 이후 무덤 주변에서 전에 보지 못했던 붉은 꽃이 피어났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스님을 기다리던 동자 스님의 마음이 꽃으로 다시 피어난 것이라고 여겼고, 그때부터 동자꽃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고 한다.
전설을 생각하며 꽃을 보면 꽃잎이 사방으로 펼쳐진 모습이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며 바라보는 모습과 닮아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동자꽃의 꽃말은 오랜 기다림 끝에 바치는 진한 주황색의 진심, '나의 진정을 받아주세요', '기다림', '순수한 사랑', '그리움', '영원한 기다림'이다. 우리나라에는 동자꽃, 털동자꽃, 제비동자꽃, 가는동자꽃 등이 자생하고 있다. 전에는 동자꽃속으로 분류했으나, 요즘은 유전자 분석 결과 장구채속으로 분류한다. 장구채와 아주 닮은 모양이지만 좀 더 강렬한 느낌을 주는 꽃이 동자꽃속 식물들이다.

동자꽃은 석죽과의 식물로 높은 산에 자생한다. 반 그늘지고 습한 곳을 좋아하며 줄기는 곧게 자라며, 키가 40∼100 cm 정도에 이르는 풀이다. 6∼8월에 줄기와 가지 끝에 주황색 꽃이 핀다. 5장의 꽃잎은 끝이 오목하게 파여 있다.
털동자꽃은 동자꽃과 비슷하나 동자꽃색이 주황색인데 털동자꽃은 좀 더 붉은색이 강한 짙은 홍색이다.

그리고 털동자꽃은 동자꽃에 비해 꽃받침과 꽃대에도 긴 흰털이 많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꽃받침의 길이가 동자꽃보다 더 짧고, 꽃잎이 깊게 갈라지는 것이 다르다.

가는동자꽃은 멸종위기 2급의 식물로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문헌에는 강원도 산지의 습지에서 자란다고 하는데 찾아보기 어렵다. 술패랭이꽃이나 제비동자꽃과 많이 닮았는데 부산에서 발견됐다. 금정산을 대표하는 깃대종으로 부산의 어느 수목원에서 증식에 힘쓰고 있다고 하니 언젠가 볼 날을 기대해 본다.
제비동자꽃도 현재 산림청 희귀식물 EN(위협종)과 환경부 멸종위기종 2급으로 지정돼 있기도 하다. 필자도 아주 오래전부터 보고 싶었다가 자생지를 수소문 한 끝에 몇 개체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꽃잎이 아주 깊게 갈라져 제비의 꼬리를 닮아 제비동자란 이름을 얻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가 자생지에서 처음 만난 순간, 그 강렬한 색상에 놀라고, 물 찬 제비 꼬리같이 긴 꽃잎의 우아함에 감탄했다. 한랭한 지역의 햇볕이 잘 드는 고원 습지에서만 자라는 것으로 보아 동자꽃보다 생존 조건이 더 까다로운 듯하다. 종자나 포기 나누기로 번식이 가능하다. 지금은 국립수목원에서 자생지 보호와 복원에 나서고 있고, DMZ 자생식물원에 심어 좀 더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을 거 같다. 가끔 원예종으로 재배된 것을 볼 수 있는데 야생종에 비해 꽃잎이 조금 짧은 듯하다.

그 밖에 동자꽃은 자생식물이 아니고 관상용으로 재배하는 동자꽃들이다. 우단동자꽃은 원산지가 유럽 남부나 서아시아로 우리나라에 원예종으로 도입된 종이다. 줄기와 잎 전체에 희고 부드러운 털이 나 있어 벨벳 같은 느낌을 주어 '우단'이란 이름이 붙었다.
그리고 갈기동자꽃(깃털), 흰갈기동자꽃, 흰동자꽃, 애기동자꽃(수레동자꽃), 고산동자꽃, 끈끈이동자꽃등, 아주 다양한 종들이 도입돼 재배되고 있다. 동자꽃은 붉은 꽃빛만큼이나 문학 작품에서도 그리움과 애틋함을 상징하는 소재로 등장한다.

동자꽃/이화인

굽이굽이 돌고 도는 열두 굽잇길에/인연의 잔불은 구만리여라//

그리움 평생토록 묻고 지웠어도/저 타는 석양빛보다 더 붉어라//

날 저문 저승길 가시덤불 속에/외로이 흔들리며 피어 있는 꽃//

그리움 염원으로 꽃을 피웠어도/외로움에 이내 지는 아기동자꽃.

이화인 시집 '새들은 머문 자리를 기억하지 않는다'에서

시인은 어떤 동자꽃을 보고 이 시를 지었을까. 석양빛보다 더 붉다고 했으니 털동자꽃을 본 것일까. 왜 하필 저승길 가시덤블 속에서 피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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