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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9.01 17:20:30
  • 최종수정2026.09.01 17:20:30

박영순

'커피인문학' 저자·커피비평가협회(CCA) 회장

장애인 바리스타 대회를 마친 뒤 한 장면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동작이 다소 느리고 과정이 매끄럽지 않은 순간은 있었지만 선수들은 끝내 에스프레소와 카페라테를 완성해 심사위원 앞에 내놓았다. 그 한 잔에는 반복해서 익힌 기술과 누군가가 믿고 기다려 준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지난 8월 29일 세계커피콩축제 부대행사인 '제10회 세계커피대회(WCC) 바리스타챔피언십' 결선이 열렸다. 선수 10명은 12분 안에 에스프레소 4잔과 카페라테 2잔을 제조하며 기량을 겨뤘다. 참가 자격을 장애인으로 한 것은 선수들이 자신의 조건에 맞는 환경에서 바리스타의 기량을 공평하게 겨루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역도에서는 체급을 나누고 육상에서는 종목에 맞게 경기 조건을 정한다. 공정은 모두를 똑같이 대하는 데서 완성되지 않는다. 서로의 차이를 고려해 각자의 실력이 온전히 드러날 조건을 만드는 데서 시작된다.

커피비평가협회는 WCC의 독자적 규정을 이러한 원칙에 따라 마련했다. 작업 공간과 의사소통 방식, 보조기기와 합리적 편의를 허용하고 이를 감점 사유로 삼지 않았다. 장애 특성 자체는 평가에서 제외했다. 대신 모든 선수의 추출 기술과 위생·안전, 음료의 관능 품질, 커피 지식과 서비스 역량을 같은 기준으로 평가했다.

장애인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필요한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지만 도움만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존재도 아니다. 몸과 감각, 인지와 의사소통에서 사회 다수와 조금 다른 특성을 지녔을 뿐 우리 사회를 당당하게 구성하는 시민이며 직업인이다.

이를 보여 준 사람이 우승자 김현수 선수다. '사회적협동조합 이음'이 운영하는 '이유보호작업장' 소속인 김 선수는 현재 '떡앤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다. 경기에서는 현장에서 다진 안정적인 기본기와 효율적인 작업 동선, 용도별 타월 사용을 비롯한 위생 관리 능력을 선보였다. 현직 바리스타로서 쌓아 온 역량을 경기로 입증한 것이다.

일부 선수는 과제를 수행하는 데 시간이 더 필요했다. 집중을 다시 가다듬거나 기술 동작을 연결하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은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자 모든 선수가 에스프레소와 카페라테를 완성했다. 완성도를 살피기 전에 속도부터 재촉하는 우리의 습관이 그들의 능력을 가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됐다.

장애인 바리스타가 일하는 카페를 이용할 때 필요한 최고의 예절은 기다림이다. 커피가 늦게 나온다고 재촉하거나 동작이 서툴다고 능력을 낮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 기다림은 시혜도 연민도 아니다. 서로 다른 속도가 한 공간에서 공존하도록 만드는 시민의 능력이다.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아비투스(habitus)는 사회적 경험을 통해 몸에 밴 성향과 실천 방식을 가리킨다. 장애인 바리스타가 일하는 공간에서 나타나는 기다림과 태도는 손님의 문화적 품격을 드러내는 아비투스다.

카페 이용 에티켓을 겨루는 대회를 열어 보면 어떨까. 이번에는 손님이 선수다. 바리스타를 재촉하지 않는지, 주문을 분명하게 전달하는지, 음료가 완성될 때까지 편안하게 기다리는지를 평가한다. 바리스타의 시간에 자신의 속도를 가장 자연스럽게 맞춘 손님이 우승자다.

못할 것이라고 미리 판단해 일을 맡기지 않는 친절은 차별의 또 다른 얼굴이 될 수 있다. 동정이나 과잉보호를 이유로 정당하게 기술을 발휘할 기회를 막아서도 안 된다.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면서 장애인 바리스타가 자신의 방식으로 끝까지 수행할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김현수 선수는 개별 훈련을 거쳐 오는 10월 31일 은계호수공원 특설무대에서 시상식에 앞서 공개 시연을 펼친다. 이와 같은 무대가 더 많은 지역으로 퍼져 나가 장애인 바리스타의 기술과 직업적 역량을 시민과 공유하기를 바란다.

카페에서는 커피가 완성되는 시간을 존중했으면 좋겠다. 더불어 사는 행복한 세상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누군가의 카페라테가 완성될 때까지 기꺼이 기다리는 작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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