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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건축문화에 K-컬처를 입히다 5.익산 미륵사지·망모당

지발위 공동주제 심층보도

  • 웹출고시간2026.08.31 16:40:11
  • 최종수정2026.08.31 16:40:10
[충북일보] ◇ 미륵을 우러른 탑, 그리움의 정자

익산은 시간의 층이 유난히 두터운 땅이다.

고조선의 마지막 임금이 남하하여 '내가 한왕(韓王)'임을 선포한 땅이다. 옛 조선(고조선)의 숨결이 남아 있다. 백제의 무왕이 나라의 힘을 모아 동아시아 최대의 절을 세운 곳이기도 하다. 익산에는 크기도 다르고, 시대도 다른 두 개의 건축이 있다. 하나는 미륵의 세상을 땅 위에 새긴 거대한 절터이고, 다른 하나는 조선의 선비가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지은 작은 정자다. 신앙과 선비의 효심이다.

◇ 준왕이 '한(韓)'을 선포한 금마에서 미륵의 세상을 새겼다.

미륵산 정상에 서보면 그 위엄과 수려한 경관에 압도당한다. 산 아래 텅 빈 절터가 이토록 웅장할 수 있는가? 모진 세파에 견디지 못하고 건물은 사라졌으나 주춧돌과 두 기의 석탑만이 남아 왕들의 염원을 서원하고 있다. 천사백 년 전 이 터에 섰던 동아시아 최대의 미륵사를 짐작하게 한다.

절터를 품은 뒷산은 미륵산(옛 용화산)이다. 산 중턱 사자암(師子庵)은 무왕 부부가 미륵을 만났다는 설화의 무대이기도 하다. 지금은 노스님의 수행암자로서 시절의 명맥을 유지한다. 이 산의 기억은 백제보다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기원전 194년 옛 조선의 마지막 임금 준왕(準王)이 위만에 밀려 뱃길로 남하하고, 마침내 익산 금마에 이르렀다. '고려사'와 '제왕운기', '세종실록지리지'가 하나같이 그 정착지를 금마로 짚는다. 

준왕은 이곳 금마에서 스스로 '한왕(韓王)'임을 선포했다. 한 나라 한(漢)이 아닌 우리의 한(韓)이었다. 마한·진한·변한 삼한의 시대가 열렸다.

미륵산성이 '기준성(箕準城)'이라 불려 온 것도 그 기억의 흔적이다. 익산에는 정월이면 아직도 기세배 문화가 전승되고 있다. 미륵산이 병풍처럼 두르고 남서로 호남평야가 끝없이 펼쳐진 이 길지에서 준왕은 옛 조선의 새로운 청사진을 다듬고 있었다. 백제가 절을 세우기 팔백여 년 전에 이미 민족의 자존이 새로 거듭난 곳이다.

절은 백제 무왕(재위 600~641) 때 세워졌다. 오랫동안 창건설화는 '삼국유사'의 서동요로 전해졌다. 마를 캐던 서동이 신라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아 왕이 되고 용화산 못에서 미륵삼존을 만나 왕비의 청으로 못을 메워 절을 세웠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2009년 석탑을 해체하다 그 속에서 사리봉영기(舍利奉迎記)가 나왔다. 이 절을 발원한 왕후가 좌평 사택적덕의 딸로 백제 사택왕후라 새겨져 있었다. 639년에 사리를 봉안했다는 기록도 함께였다. 설화 속 선화공주와 기록 속 사택왕후 사이에서 역사는 잠시 술렁였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 이 절이 백제 왕실이 온 힘을 모아 세운 국가적 가람이었다는 사실이다.
◇ 삼원(三院)의 구조 미륵의 세상을 꿈꾼다. 

미륵사의 가장 큰 특징은 삼탑삼금당(三塔三金堂)의 배치다. 탑과 금당을 갖춘 절 세 채가 동쪽·중앙·서쪽에 각각 나란히 서고 회랑으로 이어져 하나의 절을 이룬다. 

왜 셋인가. 미래의 부처 미륵이 이 땅에 내려와 세 번의 설법으로 모든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신앙을 세 채의 가람으로 땅 위에 구현한 것이다. 믿음을 공간의 언어와 구조로 번역한 사상의 건축이다. 못을 메워 평지를 다지고 그 위에 미륵의 세상을 펼친 이 배치는 백제인의 우주관이 곧 설계도가 된 셈이다.

서원에 남은 석탑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석탑이다. 그런데 오래 보면 이상하다. 돌인데 나무처럼 생겼다. 기둥이 있고 그 위에 공포가 얹히고 지붕돌이 처마처럼 뻗는다. 본디 탑은 나무로 지었다. 백제인은 그 목탑의 형태를 고스란히 돌로 옮겼다. 나무의 시대에서 돌의 시대로 건너가는 첫걸음이 이 탑 한 채에 새겨져 있다. 사라질 나무 대신 영원할 돌로 믿음을 남기려 한 것이니 돌로 나무의 꿈을 세운 이 발상이야말로 백제 건축의 창조적 혁명이다.

◇ 스무 해에 걸친 복원의 여정

그 영원할 것 같던 돌탑도 세월 앞엔 무너졌다. 일제가 콘크리트로 발라 놓은 것을 1999년 다시 해체해 바로 세우기로 하고 2001년부터 돌을 한 층씩 내려 낱낱이 살피며 원래의 돌을 되살려 쌓았다. 그렇게 스무 해 2019년에야 탑은 제 모습을 되찾았다. 옛 돌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 아버지를 바라보는 마루에 걸터앉아서

표옹 송영구가 선영을 그리워하며 조선 중기에 지은 작은 누각이 있다.

미륵사지의 웅장함을 뒤로하고 왕궁면 장암마을로 접어들면, 언덕 위 담장 안에 아담한 정자 한 채가 보인다. 망모당(望慕堂)이다. 거대한 절터를 보고 온 눈에는 아주 작아 보였지만 이 집에 담긴 마음은 부모를 향한 한없는 그리움이다.

망모당은 조선 선조 때의 문신 표옹 송영구(宋英耉, 1556~1620)가 1605년에 지었다. 병조참판에 오른 강직한 선비였던 그는 아버지를 여의고 그 묘가 있는 산을 바라보며 추모하고자 집 뒤뜰에 이 정자를 세웠다. '망모(望慕)'란 곧 '바라보며 사모한다'라는 뜻이다. 아버지가 묻힌 산을 날마다 바라보기 위해 마루를 높이 들어 올렸다. 건물의 이름과 형태가 모두 하나의 마음으로 효(孝)를 향해 있다.
◇ 특별한 것은 그 앉음새다. 

앞쪽 네 개의 주춧돌을 한 길이나 높은 기둥 꼴 초석으로 세워 마루를 공중에 띄우고 뒤쪽은 지반을 계단처럼 다져 건물을 받쳤다. 앞은 높고 뒤는 낮은 이 정자는 경사진 언덕을 거스르지 않고 그대로 타고 넘는 지혜를 발휘했다. 건축가는 마루를 높이고 아들이 마루에 앉으면 담장 너머로 멀리 산자락이 걸린다. 아버지가 잠든 산을 바라보기 위함이다. 건물구조의 선택이 '바라봄'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향한다.

곧은 선비의 기개, 내려앉으며 시선을 올린 작은 정자. 송영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이 정자가 말해 준다. 의로움에 맞설 줄 아는 익산 선비의 용기, 제자를 아끼는 자애와 연민의 정 그리고 부모를 섬기는 효심이 온전하게 투영된다.

그는 임진왜란 때 도체찰사 정철의 종사관으로 나라를 위해 몸을 던졌고 뒷날 광해군이 어머니를 폐하려 하자 이에 맞서다 벼슬에서 쫓겨난 강직한 조선의 선비였다. 권세를 좇지 않고 고향에 물러나 높은 누각 대신 아버지를 바라보는 작은 정자를 지었다. 큰 벼슬을 지낸 이가 남긴 것이 화려한 저택이 아니라 효심을 담은 소박한 한 칸이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조선 선비의 기개와 정신을 증언하고 있다.

마음이 향하는 망모당의 아름다움은 규모가 아니라 관계에 있다. 정자 앞으로 조망이 트이고 아래로 왕궁천이 흐른다. 송영구는 이 마을에 최초로 백련(白蓮)을 들여와 연못을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도 백련지 터가 남아 있다. 산을 바라보는 정자, 백련이 뜬 연못, 냇물과 너럭바위가 하나의 풍경으로 어우러진다. 건물은 배산임수의 자리에 앉았으나 그 자리를 정한 것은 명당 발복의 계산이 아니었다. 오직 아버지의 묘를 바라볼 수 선생의 지극한 마음이다. 좋은 터란 재물이 모이는 자리가 아니라 마음이 향하는 자리임을 정자는 조용히 속삭인다.

공동취재단

충북일보:김용수 사진부 국장, 박소담 사회부 기자, 전은빈 문화부 기자   
전북도민일보:이방희 디지털뉴스국장, 김상기 문화교육부 차장, 최진영 편집부 차장, 한신 편집부 차장 
자문위원=백승기 건축사·도시공학박사·원광대학교 겸임교수, 박상일 청주대학교 명예교수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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