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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8.30 14:41:55
  • 최종수정2026.08.30 14:41:54

이정희

수필가

이스라엘에 가면 슬픔의 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힘들고 속상할 때 옷을 걸어두면 가라앉는다는 상징적 나무다. 주변은 늘 슬픔 때문에 떠나 온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게 된다. 얘기 끝에 자기보다 훨씬 더 슬픈 사연을 듣고는 걸어둔 옷을 입고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만 외롭고 슬픈 줄 안다. 남이 행복해 보인다면 그 사람 눈에는 나도 행복해 보인다. 불행이나 슬픔도 한 겹 막을 걷어내면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게 된다.

엊그제 고추장을 뜨러 장독에 올라갔다. 보통 작은 단지에 떠다 놓고 먹는데 한여름 땡볕에 바짝 말라 버리고 두꺼운 막이 생겼다. 습습한 날씨에 곰팡이까지 끼었다. 탈이 난 줄 알고 파 보았더니 빨갛게 숙성된 고추장이 잔뜩 묻어났다.

장마전선이 오락가락할 때도 속속들이 무르익은 고추장 맛은 두껍게 덮인 막 때문에 가능했다. 기쁨과 행복도 슬픔과 불행의 한 겹 막으로 덮인다. 우리 한 겹도 덮이지 않은 채 곧장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만 그러다 보면 슬픔과 불행의 나무에 달리는 열매의 진수를 알지 못한다.

행복 또한 불행과 슬픔의 막에 파묻혀 숙성될 때가 진짜다. 한여름에는 눅눅해서 곰팡이가 슬지만 땡볕에 마르면서 두꺼운 층이 겹겹 생길 때 훨씬 더 맛깔스럽게 되는 고추장같이 그렇게.

솔직히 행복해서 행복한 사람 있던가. 행복할 건 없지만 우정 찾아내는 것이다. 행복은 모래알뿐인 백사장에서 좀 더 빛나는 사금을 발견할 동안의 기쁨이다. 암흑과 어둠 때문에 빛이 더 찬란한 것처럼 고통과 불행은 행복을 향해 나가는 관문이었다.

문득 슬픔의 나뭇가지에 걸어둔 옷이 펄럭인다. 나무는 수없이 걸린 옷 때문에 휘청대고 부러졌을 것이다. 옷을 걸면 근심은 덜어졌을지 모르나 얼마 후 또 다른 슬픔이 찾아온다. 슬픔이 덜어질 거라는 그 나무 또한 폭풍과 눈보라를 견디고 자랐다.

슬픔의 나무를 찾아 왔다가 돌아가는 사람들을 상상해 보았다. 누구든지 자기가 가장 외롭고 힘들다는 생각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자기는 그나마 행복했다는 마음에 온 길을 되짚어 갔을 테지.

사는 게 슬프다고는 하지만 기쁨으로 새길 수 있어야 하리. 천국 문은 또 진주로 만들어졌다지 않은가. 천국인데 진주문은 당연할 것 같지만 달리 해석하면 천국이야말로 진주가 생성되는 것 같은 인내와 고통이 따른다는 의미다.

눈 감으면 들려오는 슬픔의 나무 메시지. 진주가, 이물질을 떼어내지 못하고 감싸 안은 채 형성된 거라면 온몸으로 껴안는 고통 속에서 최고의 경지가 나온다. 슬픔의 나무는 무색해질 테지만 우리는 그 나무를 통해 자기의 슬픔을 형상화하면서 보다 숭고한 경지를 추구하게 된다. 기쁨의 열매는 슬픔의 나뭇가지에 달리듯 고통의 닻을 내린 후라야 행복의 바다를 향해 나갈 수 있다.

어쩌면 이스라엘뿐이 아닌 세상 곳곳에 자라면서 슬픔의 노정을 향해 가는 우리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지 않을까. 사는 게 힘들어질 때마다 찾아가 열매를 따 먹거나 쉬면서 더 큰 아픔도 수용하게 되고 아름다운 삶을 조각하게 될 테니 고마운 나무다. 전설도 아닌 전설 같은 얘기를 내 삶의 목록에 끼워 두었다. 우리 슬프다고 하지만 사실은 기쁨의 원천이었던 배경을 돌아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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