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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건축문화에 K-컬처를 입히다 4. 완주 화암사·송광사

지발위 공동주제 심층보도
화암에 숨어 핀 꽃, 송광에서 십(十)자로 품다

  • 웹출고시간2026.08.24 16:01:00
  • 최종수정2026.08.24 16:03:39
전라북도 완주군에는 성격이 정반대인 두 절이 있다. 하나는 산자락을 다 올라야 비로소 모습을 여는 은둔의 절이요, 다른 또 하나는 평지에 일자로 활짝 열린 대중의 절이다. 화암사는 이 땅에 하나뿐인 하앙식 구조를 산속에 은밀하게 감춰 뒀고, 송광사는 하나뿐인 열 십(十)자 종루를 세워 뒀다.

이른 아침 햇살을 맞으며 숨은 꽃과 열린 품으로 두 절을 걷는다.
◇숨어 피어 더 귀한 꽃, 하앙(下昻)에 처마 걸다

절을 찾아가는 길이 이토록 사람을 시험하는 곳도 드물다. 완주 불명산(佛明山) 깊은 골에 은둔한 화암사(花巖寺)는 가파른 길을 다 오른 자에게만 문을 연다. 그 수고로움 끝에 우화루 밑을 지나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사방이 건물로 둘러싸인 아늑한 세계 불국정토가 나타난다. 꼭꼭 숨어 있어 더 귀한 꽃 화암사다.

원효와 의상으로 시작되는 절의 뿌리는 아득하다. 창건 기록은 분명치 않으나, 절에 남은 화암사중창비에 원효와 의상이 이곳에 머물며 수도정진 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창건역사는 신라 문무왕 이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동쪽 고개에는 원효대가 있고 남쪽 고개에는 의상암 터가 있다. 두 성현의 숨결이 이 산에 배어 있는 느낌이다. 그 뒤 조선의 중추원판사 성달생의 뜻과 지원으로 해총·신해가 중창을 주도하여 오늘의 면모를 갖췄다고 한다. 신라의 구도(求道)와 조선의 중창(重創)이 한 절에 겹쳐 있다.

극락전 하앙식 구조 처마.

◇조선에 하나뿐인 구조

화암사 극락전은 우리나라에 단 하나뿐인 하앙식(下昻式) 건물이다. 하앙이란, 처마를 더 멀리 내밀기 위해 지붕 밑에 지렛대처럼 비스듬히 끼워 넣은 긴 부재를 말한다. 기둥과 처마 사이에 하앙이라는 또 하나의 구조재를 덧대어 처마 끝을 앞으로 밀어낸 것이다. 이 방식은 중국 남조와 백제에서 많이 전하는데 당시 백제식 건축술이 이 깊은 산속 극락전 한 채에 오롯이 살아남았다.

눈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아 처마 밑에서 한참을 올려다보아야만 비로소 그 지렛대의 원리가 보인다. 깊은 산속에 감추어 두었기에 오히려 온전히 전해진 건축의 화석 같은 귀한 존재다.

극락전 안마당에는 우화루라는 꽃비가 내리는 듯한 누각이 있다. 극락전과 마주 선 누각으로 우화루(雨花樓)다. '꽃비 내리는 누각'이라는 이름처럼, 부처님께서 설법할 때 하늘에서 꽃이 비처럼 내렸다는 경전의 장면을 건물 이름에 새겨 뒀다. 우화루 마당 쪽은 벽 없이 트여 극락전을 바라보고 있으며, 바깥쪽은 사찰 출입구를 향해 앉았다. 안으로는 열리고 밖으로는 닫힌 이 이중의 표정으로 은둔 도량의 성격을 그대로 말해 준다.
ㅁ자의 품으로 된 화암사의 배치는 특별하다. 정면의 극락전, 맞은편의 우화루, 왼쪽의 적묵당, 오른쪽의 불명당이 안마당을 가운데 두고 네 방향에서 둘러싼 ㅁ자형 구성이다.

화암(花巖) '꽃바위'라는 이름에는 아름다운 전설이 서려 있다. 가르빙가 왕국의 극락조(極樂鳥)인 관음조(觀音鳥)가 모란꽃을 물고 와 반석 위에 뿌렸다는 전설과 연화공주가 부처님이 일러 준 바위 꽃을 먹고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가 함께 전해진다. 이 깊은 산속에 사람들이 굳이 이름을 지어 붙이고 이야기를 남겼을까. 숨은 절에서 사람들은 더 애틋한 이야기로 그 자리를 기억하고자 한다.

아침 햇살이 극락전 기둥에 자태를 드러낸다. 반듯하게 다듬지 않고 자연석 덤벙주초 위에 민흘림 기둥을 세웠다. 돌 생긴 대로 기둥을 앉히고, 나무 자란 대로 부재를 짰다. 화려한 단청도 이 산에서는 세월에 삭아 은은하기만 하다. 자연을 이기려 들지 않고 그 결에 맞추어 앉힌 소박한 건축미학이다.
◇열 십(十)자로 품은 소리, 평지에 활짝 열다

화암사가 숨은 절이라면, 송광사는 대중에게 내준 열린 절이다. 종남산(終南山) 자락 넓은 들에 일주문부터 대웅전까지 일자로 시원하게 트여 있다. 봄이면 진입로부터 2km가 온통 하얀 벚꽃 터널이 된다. 누구든 어렵지 않게 걸어 들어오라는 듯, 이 절은 산이 아니라 사람 사는 들 가까이 몸을 뒀다.

송광사는 통일신라 867년 체징 창건설과 고려 보조국사 지눌의 중창·점지 전승을 품은 사찰이다. 오랫동안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1622년(광해군 14) 원암사 승려들이 중창을 시작해 1636년 대가람으로 다시 일어선 곳이다.

열 십(十)자는 종교적 상징의 표현이다. 이 절에는 조선에 하나뿐인 열 십(十)자 누각이 있다. 지금은 보수공사로 인하여 볼 수가 없으나 절의 백미는 종루가 있는 십자각(十字閣)이다. 보통 종루나 종각은 대개 네모반듯한 평면인데, 이 종루를 위에서 내려다보면 열 십(十)자 모양이다. 종이 걸린 가운데 칸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네 방향에 한 칸씩 날개를 덧붙였고, 지붕은 그 중심으로 모여드는 화려한 모습이다.

종루 가운데에 범종을 두고, 사방으로 뻗은 칸에 목어·북·운판을 나누어 걸었다. 불전사물(佛前四物)의 소리가 십자의 네 팔을 타고 동서남북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구조다. 오늘날 사물놀이의 원형이 절에서 유래된 것이다. 조선건축물을 통틀어 십자형 이층 누각은 송광사 종루가 유일하다.
화려한 공포와 날아갈 듯 치켜 올라간 추녀가 어우러져 있다. 건물은 마치 정교한 공예품 같다. 성당이나 교회건축의 원형이 (十)자 형태로 건축되는 것은 우연의 아님을 보여 주고 있다.

종루 소리는 사방으로 고루 퍼뜨리려는 기능이 먼저다. 그 소리가 동서남북 온 세상 중생에게 두루 미치기를 바라는 발원이 다음이다. 종소리는 지옥 중생의 고통까지 쉬게 한다 했으니, 십자로 뻗은 이 누각은 곧 사방 만민을 향해 열린 자비의 형상이다. 화암사가 ㅁ자로 안을 오므려 수행을 갈무리했다면, 송광사는 십(十)자로 밖을 향해 소리를 열었다. 두 절의 성격이 배치와 구조에 그대로 새겨져 있다.
◇하나는 숨고 하나는 열렸다.

화암사는 안을 오므려 하앙식 처마를 감췄고, 송광사는 십(十)자로 밖을 열어 종소리를 사방에 퍼뜨린다. 하나는 숨어서 지키고 있으며, 또 다른 하나는 열어서 세상과 소통한다. 두 절의 시작은 하나요 종국에는 열이다.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이다. 때론 닫히기도 하고 열리기도 하니 결국은 세상사 마음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유학길에 원효대사가 해골 물을 마시고 동굴에서 깨달은 찰나의 그 마음,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다. 암바위에 핀 숨은 꽃은 찾아온 이의 정성을 알았다. 열린 마음은 지나는 이를 불러 쉬게 한다. 완주에 가서 걸어보자. 두 절이 답한다.

감추어 지키는 것과 열어 나누는 것은 다르지 않으니 건물이란 결국 그 자리에 사람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의 빈 마음이라고.

공동취재단

충북일보:김용수 사진부 국장, 박소담 사회부 기자, 전은빈 문화부 기자
전북도민일보:이방희 디지털뉴스국장, 김상기 문화교육부 차장, 최진영 편집부 차장, 한신 편집부 차장
자문위원=백승기 건축사·도시공학박사, 원광대학교 겸임교수, 박상일 청주대학교 명예교수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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