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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8.19 15:50:43
  • 최종수정2026.08.19 15:50:43

김일복

수필가

[충북일보] 화가 났다. 작은 주먹을 불끈 쥐더니 제 머리를 때린다. 다가가는 나에게도 주먹을 휘두른다. "안 돼! 안 돼!" 날것 그대로의 감정이 큰 소리로 쏟아진다. 이럴 때 억지로 붙잡거나 제지하면 오히려 더 거세진다. 무시당했다는 서러움과 두려움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감각 때문이다.

나 역시 몇 번이나 어깨를 맞는다. 한 번은 주먹으로 맞았는데 일주일이나 통증이 이어갔다. 맞아 본 사람은 그 힘을 안다. 지영이의 분노가 시작되면 센터장은 눈짓으로 말한다. "밖에 나가 바람을 쐬고 오세요."

나는 지영이와 함께 천천히 꽃밭으로 걸어간다. 흥분으로 굳어 있던 얼굴이 꽃 앞에 서면 조금씩 풀린다. 작은 손으로 꽃잎을 툭, 툭 건드리고 향기를 맡는다.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센터에 보낼 때쯤 조금 전까지의 거친 아이는 어디에도 없다. 꽃은 지영이를 꾸짖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피어 있었다.

지영이는 화를 다 쏟아낸 뒤에는 다른 사람이 된다.

"그래, 차분하게 숨 쉬어 보자."

그러면 금세 내 말을 따라 한다.

"그래. 차분히 숨 쉬자."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되풀이하다가 어느 순간, 작은 목소리로 스스로를 달랜다.

"괜찮아. 괜찮아."

그 말은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붙드는 말이었다. 나는 그때마다 사람이 가장 먼저 안아 주어야 하는 존재는 결국 자기 자신이라는 생각을 한다.

처음에는 왜 그렇게 분노하는지 알 수 없었다. 친구들의 소음 때문인지, 질투 때문인지, 답답함 때문인지 쉽게 설명할 수 없었다. 다만 과잉행동에도 분명 이유가 있다는 것만은 알게 되었다.

지영이는 넉넉한 가정의 외딸로 자랐다고 한다. 피아노와 첼로를 배우며 부족함 없이 성장했다. 그래서인지 원하는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다 가졌다. 하지만 사람의 결핍은 가진 것의 크기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기댈 곳의 깊이로 채워지는 모양이다.

지영이는 프로그램 활동을 누구보다 잘한다. 그림도 잘 그리고, 노래도 잘하고, 손재주도 뛰어나다. 그런데도 문득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울음을 터뜨린다.

"엄마가 보고 싶구나."

그 한마디를 건네면 금세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는 누구에게나 마음의 첫 번째 집이다. 불안할수록, 속상할수록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다. 지영이도 다르지 않았다. 엄마를 찾는 것은 떼를 쓰는 일이 아니라, 가장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본능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돌봄이란 사람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마음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숲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기다림과 보살핌, 포기하지 않는 손길이 쌓여 비로소 숲이 된다.

오늘 함께 걸은 짧은 산책, 조용히 잡아 준 손, 건넨 한마디가 당장 눈에 띄는 변화를 만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작은 시간이 모여 한 사람의 마음에 뿌리를 내린다.

우리는 안다. 꽃을 피우는 것은 계절이지만 숲을 만드는 것은 사람이라는 것을. 그러니 언젠가 지영이도 자기만의 계절을 만나 아름답게 꽃 피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더불어 울창한 숲이 되는 날을 기다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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