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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8.17 16:31:34
  • 최종수정2026.08.17 16:31:34

김순남

수필가

늦은 봄 여행길에 특별한 꽃나무를 만났다. 자연이 펼쳐놓은 산과 들의 연둣빛 싱그러움을 보며 들뜬 마음으로 산책하던 중이었다. 화려한 꽃들이 한 차례 피었다 지고 나뭇잎이 산야를 물들이고 있을 때, 어디선가 바람결에 은은한 향기가 코끝에 와 닿았다. 둔덕 위 나무 한 그루에 흰 꽃이 만발하였다. 나뭇잎 아래 종 모양으로 생긴 꽃이 땅을 내려다보고 있지 않은가. 해를 향해 피어있는 수많은 꽃과 달랐다. 꽃나무가 궁금해 머뭇거리다 일행들을 따르느라 아쉬운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종소리가 울려 퍼질 것 같던 그 나무를 다시 만났다. 유월, 뜨거운 햇볕 아래 수목원 나무 읽기에 푹 빠진 날이다. 솔나리, 벌노랑이, 기린초, 물망초 등 옹기종기 모여있는 화단에는 유치원 아이들처럼 이름표를 붙여 놓았다. 군데군데 조용히 서서 이름표를 읽어달라는 듯 눈길을 보내는 나무들이 있었다. 그중 꽃자루를 길게 늘어뜨리고 동글동글 열매를 달고 있는 나무 앞에 섰다. 지난봄, 그 고운 향기와 종 모양을 하고 아래를 내려다보던 하얀 꽃, 그 나무였다. 이름이 '때죽나무'라고 한다. 언젠가 들어본 듯하고 내 고향 뒷산에도 있었던 것처럼 촌스러운 이름이 다정하게 다가왔다. 꽃자루에 동그란 열매가 조롱조롱 매달려있는 모습이 머리를 깎은 동자승들이 모여있는 모습 같아서 때중나무로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 있으며, 예전에 열매를 짓이겨 냇물에 풀어놓으면 에고사포닌 성분 때문에 물고기가 잠시 기절해 떼로 물 위에 떠올랐다 한다. 이런저런 설이 전해져 '때죽나무'로 불린다고 한다.

사방으로 뻗은 나뭇가지 끝에 정말 신기한 게 눈에 띄었다. 작은 바나나 송이처럼 보이는 게 있다. 이미 열매는 주렁주렁 달고 있는데 이건 또 뭐란 말인가. 그건 '때죽납작진딧물' 집 벌레혹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나무의 열매처럼 보이는데 그 안에는 벌레가 오글오글 들어 있다. 진딧물은 식물의 즙액을 빨아 먹을 뿐만 아니라 바이러스를 퍼트리기도 한다. 이 때문에 진딧물이 생기면 농작물이나 나무는 결국 말라 죽게 된다.

벌레혹은 때죽나무의 배려이자 지혜로운 선택이다. 때죽나무는 '때죽납작진딧물'이 나타나면 그들이 살 집을 얼른 나뭇가지 끝에 만들어 준단다. 나무 전체를 돌아다니며 즙을 빨아 먹게 놔두지 않고 그들이 한 곳에서만 살아가도록 영양분을 공급해 주며 격리와 배려의 의미가 담겨있는 '벌레혹'이다. 낮은 곳을 향해 꽃을 피우는 이 나무의 꽃말이 겸손이라더니 마치 인심 넉넉한 주인이 오 갈 데 없는 사람에게 행랑채에 방 한 칸을 내어주고 거두는 모습처럼 보인다. 나무는 자신을 헤칠 불청객인데 벌레집을 만들어 함께 공생하는 모습이 경이롭다.

자연이 살아가는 세상이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다르지 않다. 묵묵히 행동으로 삶의 이치를 보여주는 나무의 모습이다. 때죽나무의 삶에서 또 한 수 배우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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