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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건축문화에 K-컬처를 입히다 3. 전주향교·풍패지관(객사)

자존을 세운 두 공간 향교에서 묻고 객사에서 답하다

  • 웹출고시간2026.08.17 17:23:39
  • 최종수정2026.08.23 14:57:16
전주는 전주이씨 조선왕조의 본향이다. 왕조의 터 위에 두 채의 국가 공공건축물이 서 있다. 하나는 나라가 세운 배움의 집 향교이고, 하나는 풍패지관 객사다. 향교는 사백 년 은행잎으로 호남 선비문화와 지역 유생의 배움을 지켜 왔으며, 객사는 한쪽 잘린 몸으로 잃어버린 민족자존을 되묻고 있다. 두 건물의 질서는 과거에만 머물지 않는다. 전통 공간은 우리가 미래로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바탕이 되기도 한다. 잘려나간 역사의 자존을 딛고 두 공간을 걷는다.

△ 전주향교

◇나라가 세운 배움의 집, 노란 은행잎으로 물든다

이른 아침 배움의 집을 찾아 한옥마을이 있는 교동으로 간다. 은행나무 은행잎이 보이는 그 집, 전주향교는 한옥마을 동쪽 끝자락에 단아하게 자리 잡고 있다.

가을이 오면 이 담 안이 온통 노랗게 물든다. 사백 년 된 은행나무가 쏟아 내는 그 빛은 이 땅이 오래도록 지켜 온 희망과 배움의 빛이다.

향교와 서원은 출발이 다르다. 서원이 선비들이 세운 사립(私立)기관이라면, 향교는 나라가 세운 국립(國立)교육기관이다. 앞서 걸었던 정읍 무성서원이 고운 최치원을 기리려 유림이 세운 사학(私學)이었다면, 향교는 국가가 지방 백성을 교육하려 세운 관학(官學)이다. 오늘로 치면 서원이 사립학교이고 향교는 국공립학교인 셈이다.
전주향교는 수도향교라 불릴 정도로 전라도 오십삼 관(官)의 맨 앞에 서열이 있는 으뜸 향교다. 조선 후기 그 규모는 대성전·명륜당·동무·서무·계성사에 이르러 아흔아홉 칸을 헤아렸다. 특히 5성인 공자, 안자, 증자, 자사, 맹자의 아버지를 모신 계성사(啓聖祠)까지 갖춘 향교는 전국에 몇 되지 않는다. 이는 전주가 왕조의 발원지에 걸맞은 교육의 중심이었음을 말해 준다. 전주가 예로부터 '교육 도시'였다는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전주향교에는 특별한 내력이 있다. 본래 경기전 근처에 있던 향교는, 1410년 태조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이 들어서자 글 읽는 소리가 성역을 어지럽힌다 하여 전주성의 서쪽 황화대(黃華臺) 아래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1603년, 순찰사 장만이 조정에 건의하여 다시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배움의 터 하나를 옮기는 데도 예(禮)의 질서를 먼저 살핀 것이다.

대개의 향교와 서원은 언덕에 기대어 앞에 강학 공간(명륜당)을 두고 뒤 높은 곳에 사당(대성전)을 배치한다. 배우는 곳이 앞에 있고 배향하는 곳이 뒤인 전학후묘(前學後廟)다. 그런데 평지에 자리한 전주향교는 그 반대다. 앞에 대성전을 두고 뒤에 명륜당을 둔 전묘후학(前廟後學)배치다. 성현을 앞자리에 모시고 배움을 그 뒤에 둔 이 배치는, 스승을 존중하고 높이며 학문이 그를 따른다는 유가의 위계를 공간으로 번역한 것이다. 배치 하나에 조선 선비의 사상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 질서 있는 공간은 지금도 그 안에 선 사람에게 바른 자세를 가다듬게 한다. 좋은 공간의 질서는 시대를 넘어 사람을 올바로 세우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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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향교(대성전 정면 정원부)

대성전과 명륜당 앞뜰에는 사백 년 된 은행나무가 각각 두 그루씩 서 있다. 옛사람은 벌레 타지 않는 은행나무처럼 유생들이 병들지 않고 곧게 자라기를 빌어 이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가을이 깊으면 그 잎이 일제히 노랗게 물든다. 노랑은 기다림의 빛이다. 봄에 심은 씨앗이 여름을 지나며 가을에 열매로 맺어오듯, 배움이란 본디 더디게 익고 오래 기다리는 것이다. 노랑은 희망의 빛이다. 낙엽이 진 자리에 다시 새순이 돋듯, 백성의 배움은 끊기지 않고 대를 이어 왔다. 사백 년을 한자리에서 물들어 온 이 노랑 은행나무는 천년 교육 도시 전주가 지켜 온 희망과 기다림의 미학이다.

향교에서는 공자를 기리는 석전대제가 열리고, 아이들이 그 마당에서 예를 배운다. 배움의 공간이 살아 있는 교실로 이어지는 것이다. 학교를 자꾸 도심 밖으로 밀어내는 현대는 참교육과 교권의 위기다. 마을 한복판에서 사백 년을 이어 온 이 배움의 집은 조용히 묻는다. 배움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향교가 세운 공간의 질서와 배움의 자존은 존재하는가. 역사는 낡은 과거가 아니라 교육 도시 전주가 내일로 나아갈 든든한 버팀목이다. 은행잎이 담을 넘어 골목까지 노랗게 물들 때, 교동으로 가 보자. 그 빛 아래에 천 년 교육의 숨결이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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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객사 풍패지관(정면)

△ 풍패지관-전주객사

◇잘린 몸으로 견딘 집, 전주의 자존을 다시 세운다

전주 구도심 한복판, 상가와 도로에 둘러싸인 채 옛 객사 하나가 서 있다. 풍패지관(豊沛之館)이다. 왕조의 발원지 전주를 상징하던 이 집은, 지금 두 개의 이야기를 안고 있다. 하나는 잘려나간 몸의 상처요, 하나는 그 상처 앞에서도 꺾이지 않는 자존의 내력이다.

객사는 임금이 없는 지방에서 임금을 대신하던 공간이다. 주관인 감실에 위패를 모시고 관찰사는 매월 초하루와 보름이면 이곳에서 임금이 계신 한양을 향해 망궐례를 올린다. 사신이 오면 객사에서 묵으며 임금의 명을 전한다. '풍패(豊沛)'란 한 고조 유방의 고향인 패군, 풍현을 이르는 말이니, 조선을 세운 태조의 본향 전주를 그에 견주어 붙여진 이름이다.

정면에 초서체로 쓴 거대한 편액 '풍패지관'은 명나라 사신 주지번의 글씨로 전한다. 언뜻 보면, 왕조의 발원지를 상징하는 집의 이름을 남의 손에 빌린 사대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붓의 내력을 알면 이야기는 정반대가 된다. 젊은 날의 주지번은 북경의 한 아궁이에서 불을 때며 글을 읊던 가난한 청년이었다. 그의 사정을 알아본 이가 익산 출신 표옹 송영구(宋英耉)선생이다. 1593년 사신으로 명에 갔던 송영구는 이 청년의 재주를 아껴, 과거 시험을 치르는 요령을 손수 일러 주고 책과 노잣돈까지 쥐여 주었다고 한다. 오늘로 치면 최고의 1타 강사 과외 선생이자, 가난한 인재에게 장학금을 준 후원자였다. 이듬해 주지번은 장원으로 급제했고, 스승을 잊지 못해 1606년 조선 사신을 자원해 건너왔다. 한양에서 머물던 그는 익산으로 찾아가 스승 송영구를 뵙고 망모당 현판을 남긴다. 그 길에 전주 객사의 편액도 썼다고 전한다. 그러니 객사 편액은 큰 나라의 지명과 문장을 우러른 흔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조선의 선비가 길러 낸 인재가, 스승의 나라에 바친 고마움과 존경의 글씨다.

그러나 객사에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하나 있다. 주관을 중심으로 좌우에 동익헌과 서익헌이 날개처럼 뻗는다. 자세히 보면 눈이 자꾸 어긋남에 걸린다. 마당에서 바라볼 때 왼쪽 서익헌은 정면 다섯 칸으로 길고, 오른쪽 동익헌은 세 칸으로 짧다. 좌우가 짝짝이다. 관아 건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좌우 대칭으로 권위와 균형을 세운다. 대칭은 흐트러짐 없는 질서, 곧 권위와 존엄의 언어다.
◇길이 삼킨 날개. 왜 철거됐는가

답은 동익헌 우측 곧게 뻗은 길 끝에 있다. 그 길의 끝에 풍남문이 있다. 일제는 1905년 폐성령으로 전주 부성을 허물기 시작해, 1912년부터 이른바 시구개정(市區改正)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의 읍성을 헐고 반듯한 신작로를 냈다. 전주에서도 남문인 풍남문을 기점으로 성벽이 좌우로 차례로 해체됐다. 그리고 남북으로 내는 직선 도로의 축에 놓인 동익헌이 잘려나갔다. 초석만 남아 있던 것을 1999년에야 겨우 복원했으나, 잘린 날개는 끝내 온전한 크기를 되찾지 못했다. 지금의 짝짝이는 우연이 아니다. 도시를 격자로 재편한다는 명분 아래, 왕조의 발원지를 감싸던 옛 질서를 지워 버린 그 시대의 흉터다. 일제가 상징적인 건물의 좌우 대칭을 깨뜨린 것은, 곧 이 땅의 민족자존을 말살하려는 일이었다.

◇길에서 자존을 살린다

객사는 잘려나간 채로 끝나지 않았다. 잘린 동익헌을 복원해 다시 세운 것은, 비록 온전하지 못할지언정 잃어버린 것을 되찾으려는 우리 시대의 응답이다. 생각해 보자. 편액에는 조선의 스승이 중국 최고 문장가를 길러 낸 자존이 서려 있고, 몸에는 일제가 남긴 침탈의 상처가 새겨져 있다. 이 집은 자존과 상처를 한 몸에 지녔다. 자존이란 상처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상처를 딛고 자신을 다시 세우는 힘이다. 흉터를 지우지 않고 기억하되 그 위에 새로운 주체를 세우는 것, 남에게 이름을 빌린 것이 아니라 남을 가르친 스승의 나라였음을 당당히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무너진 자존을 되세우는 길이다.

향교는 배움의 정신을 지켜 냈고, 객사는 잘린 몸으로도 전주의 자존을 세웠다. 하나는 사백 년 은행잎을 이어 왔고, 하나는 스승이 길러 낸 붓으로 자존을 증언한다. 두 공간이 세운 것은 역사의 자존감이다. 그리고 그 터 위에 놓인 질서는 과거에 갇히지 않는다. 배움을 마을 곁에 두고 지켜 낸 향교의 질서와 오랜 상처를 딛고 되세운 객사의 질서는 미래로 나아갈 길의 안전한 이정표가 된다. 왕조의 본향 전주에서 두 공간은 나직이 말한다. 진정한 터는 땅의 기운이 아니라, 자존을 지키고 그 위에 내일의 길을 놓으려는 시민들의 마음에 있다고.

공동취재단

취재기자=전북도민일보:이방희 디지털뉴스국장, 김상기 문화교육부 차장, 최진영 편집부 차장, 한신 편집부 차장
충북일보:김용수 사진부 국장, 박소담 사회부 기자, 전은빈 문화부 기자
자문위원=백승기 건축사·도시공학박사, 원광대학교 겸임교수, 박상일 청주대학교 명예교수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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