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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8.17 16:28:50
  • 최종수정2026.08.17 16:28:50

최은희

청주복지재단 상임이사

우리나라와 타이완은 각각 35년, 50년 동안 일제 강점의 세월을 겪었지만, 일본을 바라보는 두 나라의 시선에는 온도 차가 존재한다. 반일을 기본 정서로 하면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우리나라와 달리, 타이완은 상대적으로 일본에 친화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표면적인 친화성 뒤에 식민 지배가 남긴 복잡하고 다층적인 역사의 결이 있다. 그런 숨결을 보여주는 작품이 『1938 타이완 여행기』다.

1938년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일본인 작가 아오야마와 타이완 통역사 샤오첸이 함께 1년여 동안 여행하며 겪는 내면의 감정을 다룬다. 화자인 아오야마는 보기 드물게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인물로 타이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현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국주의 전쟁을 적극적으로 찬양하지 않으며, 타이완의 문화와 사람들을 존중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아오야마의 진보성은 근본적인 한계를 지닌다. 타이완의 철도와 근대적 건축물을 보며 식민 지배가 가져온 발전을 칭찬하고, 일본 제국이 강제로 심은 벚나무는 불쾌하지만 벚꽃 자체에는 죄가 없다고 말한다. 그녀에게 철도와 도시 시설은 편리한 문명의 상징이지만, 샤오첸에게는 자신의 나라에 새겨진 권력의 흉터였다. 아오야마는 타인의 문화를 좋아하는 연민은 있었으나 피지배 민족이 짊어진 역사의 고통을 깊이 이해하지는 못했다.

이러한 한계는 샤오첸에게 평등한 친구가 되고 싶다는 요구에서도 나타난다. 샤오첸의 드러내지 않는 감정, 답하지 않는 침묵이 분노이자 자존감을 지키는 방식이며, 주도권을 쥔 자에 대한 저항이었지만 늘 자기중심적이었던 그녀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책을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나는 나를 샤오첸의 위치에 놓았다. 샤오첸의 입장이 되어보니 그녀의 침묵이 공감되었고 아오야마와 적당한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친구가 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의 현실을 냉정히 되짚어 보면, 나 역시 나의 편리와 시선으로 타인의 삶을 재단하는 아오야마이기도 했다.

올해도 광복절을 보냈다. 광복절에 이 책을 읽으며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빛'을 되찾기 위해 모든 것을 던졌던 선열들의 위대함을 다시!, 더! 진심으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빛'을 되찾았다는 광복(光復)의 진정한 의미는 단순히 지나간 희생에 대한 감사도 있지만 거기에만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타인을 향해 어떤 '빛'을 비추고 있는가? 라는 현재형 질문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우리가 또 다른 아오야마가 되어 누군가의 역사와 존엄성을 쉽게 재단하고 있지는 않은지, 타인을 대하는 시선 속에 은연중에 비인권적인 태도가 녹아 있지 않은지, 보이지 않는 권력으로 누군가의 자유를 제한하고 군림하려 들지 않는지 자문해야 한다. 나아가 샤오첸이 되어 구조적인 비인권과 불의에 저항하고 있는지 스스로 묻고 답해야 한다.

현재의 풍요와 편리함에 취해 역사의 의미와 정신의 가치를 잊는다면, 우리 사회의 도덕적, 사회적 태도는 성숙해질 수 없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진 채 자만할 때 우리는 어렵게 되찾은 '빛'을 다시 잃을 수 있다. 더 강건한 사회, 부끄럽지 않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우리 사회는 지금, 온전한 '빛'을 향해 가고 있는지 물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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