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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8.13 14:30:27
  • 최종수정2026.08.13 14:30:27

김순덕

수필가

나의 애마 자동차 제조사로부터 리콜 조치 연락을 받았다. 예약해 둔 날짜에, 서비스센터에 방문하니 업데이트에 소요되는 시간이 두세 시간 걸린다고 한다. 어차피 오늘을 위해 온전히 비워둔 시간이었기에 고객 쉼터에서 기다리는 동안 가볍게 읽을 책도 서너 권 준비했다. 내가 첫 번째 손님인지 고객 쉼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음에 드는 자리를 골라 가방을 의자에 내려놓고 모자도 벗어 놓았다. 방금 뽑아 마신 립스틱 묻은 커피잔과 준비해 온 책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넓은 공간 한쪽에 안마의자도 있다. 읽던 책을 들고 안마의자로 이동했다. 시원하게 아래위를 두드려 주는 안마를 받으며 책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계단을 오르는 소리와 함께 두 번째 손님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두 명의 아이를 대동한 젊은 여자였다. 잠시 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돌아보니 내가 짐을 놓아둔 자리에 그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 자리 말고도 비어 있는 테이블이 많이 있었는데 굳이 내 짐이 놓인 자리에 앉는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당황스럽고 불편한 심기가 올라왔다. 안마기 작동을 중간에 멈추고 자리로 돌아가니 가방이 놓인 의자 옆에서 아이들이 음료수를 마시며 다리를 흔들고 앉아 있었다.

이 상황이 황당했지만 나는 아무 말 없이 천천히 세 번에 걸쳐서 다른 테이블로 내 짐을 옮겼다. 커피잔을 옮기고 책과 가방을 옮길 동안에도 아이들의 엄마인 그녀는 슬쩍 쳐다보기만 할 뿐, 자리를 이동하거나 미안한 기색이 하나도 없다. 평소 성격대로라면 상대에게 불편한 심기를 얘기했겠지만, 그 자리에는 아이들이 있었다.

자리를 옮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도 뭔가 '이건 아닌데' 싶은 마음이 올라온다. 짐을 모두 옮긴 후, 아이에게 다가가 몇 살이냐고 물었다. 초등학생인 아이는 자신의 나이는 물론 유치원 동생 나이까지 말해준다. 나는 "아줌마가 너 때문에 그냥 자리를 옮겨 주는 거야"라고 부드럽게 말해주었다. 아이 엄마는 그제야, 마치 처음부터 자기 자리였던 것처럼 같이 앉아 있어도 괜찮다고 선심 쓰듯 말한다.

'자녀 교육은 어머니의 무릎 아래서 시작한다'라는 이스라엘 격언이 있다. 내가 자리를 옮길 때 아이 엄마가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 내 자리를 침범한 변명이라도 해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녀는 끝내 미안해하지 않았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알게 모르게 많은 배려와 양보를 하며 살고 있다. 다음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손길, 먼저 건네는 인사 한마디, 상대가 말을 끝낼 때까지 기다려주는 침묵,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 할 때 잠시 기다려주는 것 등.

어디 그뿐이랴. 먼저 지나가게 하고, 먼저 앉게 하고, 복잡한 곳에서는 한발 물러서서 상대에게 공간을 내어주는 잠재된 배려 속에서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는 따뜻한 마음을 수시로 만날 수 있다. 더러는 상대의 호의나 배려를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덕분입니다"라는 표현으로 따뜻한 마음을 열어가는 사람들이 세상에 더 많다는 것에 위안을 삼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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