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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8.10 15:54:40
  • 최종수정2026.08.10 15:54:40

이윤지

간호사·작가

국회 앞에서 누군가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그는 크론병 환아 정로운 군의 아버지 정찬희 씨다. 손에는 '희귀질환 환자 학생을 위한 교육 지원법 제정'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아이가 아프면 부모는 병원을 찾는다. 그런데 그는 왜 병원이 아닌 국회 앞에 서게 되었을까. 그의 이야기는 백미 밥 한 그릇에서 시작됐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은 질환 특성상 잡곡밥이 아닌 백미 밥을 먹어야 했다. 그는 학교에 백미 밥 제공이 가능한지 문의했지만, 돌아온 답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의문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학교는 우유나 달걀, 갑각류 등 식품 알레르기가 있는 학생들을 위해 대체 급식을 제공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치료를 위해 반드시 백미 밥이 필요한 아이에게는 왜 같은 지원이 어려운 것일까. 문제는 학교의 무관심이 아니었다. 희귀질환 학생을 위한 교육지원 기준도, 학교가 참고할 지침도, 이를 뒷받침할 법과 조례도 없었다.


 그러나 백미 밥은 시작에 불과했다. 다른 희귀질환 학생들 역시 학교에서 각자의 어려움과 마주하고 있었다. 학생 A는 치료 때문에 결석을 반복하고, B는 도시락을 싸 와 부모의 차 안에서 점심을 먹는다. C는 체육활동과 체험학습을 포기하고, D는 시험과 진료 사이에서 매번 선택해야 한다. 학교마다 대응 방식은 달랐다. 같은 질환을 가지고도 누군가는 배려받았고, 누군가는 그렇지 못했다. 제도가 아니라 재량에 기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희귀질환을 의료의 문제로 이해해 왔다. 치료제 개발과 의료비 지원, 희귀질환 지정과 같은 정책은 꾸준히 논의됐다. 그러나 치료를 마친 아이들이 다시 살아가는 공간은 병원이 아니라 학교다. 질병으로 인한 어려움은 진료실에서 끝나지 않는다. 교실과 급식실, 운동장에서도 계속된다. 병원에서 치료가 아이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라면, 학교에서 배움은 아이의 삶을 지키는 일이다. 희귀질환 정책은 오랫동안 병원 안을 향해 있었다. 치료제와 의료비는 논의됐지만, 아이들이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학교는 정책의 바깥에 남아 있었다. 희귀질환은 환자 수가 적다는 이유로 종종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그러나 숫자가 적다는 것은 권리가 작다는 뜻이 아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교육받을 권리는 환자 수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국회 앞에 서 있는 그가 바라는 것은 특별한 배려가 아니다.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치료를 다녀온 다음 날 아무렇지 않게 교실로 돌아오며, 체험학습과 운동회에 망설임 없이 참여하는 것. 다른 아이들에게는 너무도 평범한 학교의 하루를, 희귀질환 학생들도 누릴 수 있게 해달라는 것, 그것이 그의 바람이다. 어쩌면 그가 요구하는 것은 새로운 권리가 아니라, 이미 헌법이 약속한 교육받을 권리가 학교의 일상에서도 온전히 실현되는 일일지 모른다. 병원을 나온 아이들이 아무런 설명 없이도 학교로 돌아갈 수 있는 날, 그의 1인 시위도 비로소 끝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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