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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건축문화에 K-컬처를 입히다 2, 김제 망해사·금산교회

바다를 품은 절, 신분을 허문 교회
같은 ㄱ자로 꺾인 두 건축, 마음과 사랑을 품다
마음이 모든 것을 짓는다는 일체유심조의 도량
머슴을 강단에 세운 ㄱ자 한옥 예배당 금산교회
신분도 남녀도 넘어선 소박한 사랑의 결정체

  • 웹출고시간2026.08.10 15:42:35
  • 최종수정2026.08.17 16:36:45

마음이 지은 성전, 김제를 걷다

김제는 바다에서 제일 높고 육지에서 가장 낮은 갯벌을 간직했던 지평선의 고장이다. 하늘과 땅이 맞닿는 그 너른 들, 만경강 동진강이 서해로 몸을 푸는 자락에 신앙이 서 있다. 하나는 바다를 바라보는 절집이요, 하나는 신분을 허문 예배당이다. 절은 마음이 모든 것을 짓는다 하고, 교회는 사랑이 모든 벽을 넘는다 한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두 채의 순례길을 찾았다.


# 망해사 - 사랑으로 시작해 마음으로 이룬 절


오롯이 바다를 보러 가는 절이 있다. 김제 진봉면의 끝자락 만경강이 서해로 스며드는 그 자리에 망해사(望海寺)가 있다. 이름부터 특이하다. 바다를 바라본다는 절. 경내를 들어서며 가장 먼저 눈이 가는 것은 ㄱ자로 나직이 앉은 낙서전(樂西殿)이다.


망해사의 터는 등지고 안은 방향이 분명하다. 뒤로는 전국 제일의 곡창인 호남평야를 등지고 있으며, 앞으로는 만경강이 서해와 몸을 섞는 드넓은 물을 안는다.


뒤에 땅, 앞에 물. 배산임수(背山臨水)가 이보다 정직할 수 없다. 이 절의 배산임수는 재물이나 발복을 구하는 기복신앙 터가 아니다. 저무는 해를 바라보기 위한 자리다. 서쪽으로 활짝 열린 이 터는 낙조(落照)를 건축물 안으로 들인다. 차경으로서 빌려 오는 것은 산도 물도 아닌 하루의 끝이다. 즉 시간이다.


이 절의 기원에는 한 편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 「부설전(浮雪傳)」의 주인공 부설거사(浮雪居士)의 러브스토리가 있다. 불국사에서 득도한 부설은 영조, 영희 스님과 함께 오대산으로 구도의 길을 떠나던 중 김제 땅 구무원(仇無寃)의 집에 잠시 머문다. 말 못 하던 딸 묘화 낭자가 부설의 도력으로 말문이 트이고, 삼생연분(三生緣分)이라며 죽기를 각오하고 그를 붙든다. 부설은 도반을 떠나보내고 속세에 남아 부부의 연을 맺는다. 사랑이 한 수행자의 길을 바꾼 것이다.


부설과 묘화는 아들 등운, 딸 월명을 두었다. 자녀가 성장하자 부설은 서해 백강 변에 초막을 짓고 다시 수행에 드니, 향토 기록은 그 자리를 곧 '망해'라 전한다. 이것이 망해사의 시작이다. 부설은 산속에 홀로 들지 않았다. 세속과 사랑의 한복판에서 도를 이룬 재가성도(在家成道) 산 증인이다. 「부설전」의 결론은 한마디로 귀결된다. 진리는 다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다. 이후 이 도량은 통장법사, 조선의 진묵대사가 중창하였다고 전한다.


낙서전은 팔작지붕으로 'ㄱ자형 목조' 집이다. 망해서의 법당이자 요사채다.


한 칸에는 마루를 놓아 종을 걸고, 꺾인 다른 칸에는 방과 부엌을 들였다. 예불의 공간과 밥 짓는 공간이 한 몸으로 꺾여 붙어 있다. 성(聖)과 속(俗)을 굳이 나누지 않은 이 배치야말로, 속세를 떠나지 않고 깨달음에 이른 부설의 재가성도를 그대로 옮긴 건축이다. 꺾인 처마 사이로는 바다가 걸린다. 담도 벽도 저 물을 막지 않는다. 서해바다를 즐긴다는 낙서전, 건물에는 재가 수행자의 해탈이 온전하게 배어 있는 듯하다.


기둥에 손을 얹는다. 곧지 않다. 본디 자란 대로 굽고 비틀린 자연목을 그대로 깎아 세웠다. 초석 또한 다듬은 돌과 덤벙 주초가 뒤섞여 있다. 굽은 나무를 굽은 대로 쓴 이 태도는 게으름이 아니라 사상이다. 무성서원 명륜당의 곡선 대들보가 그러했듯, 자연을 이기려 하지 않고 그 결에 몸을 맡기는 마음이 여기 다시 있다. 굽음을 흠으로 보지 않고 그대로 끌어안는 눈, 그 눈이 곧 일체유심조다.

굽어보는 저 물, 만경강이 서해와 몸을 섞던 드넓은 갯벌은 이제 새만금이라는 새 땅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바다를 바라보던 절이, 바다가 뭍이 되는 거대한 변화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자리에 섰다. 훗날 새만금을 사는 이들에게, 망해사는 '이 앞이 본래 바다였음'을 증언하는 기억의 등대가 될 것이다. 천사백 년 전 부설이 바라본 바다와 백 년 뒤 후손이 바라볼 땅. 그 사이를 이 작은 ㄱ자 절집이 조용히 잇는다.


해가 질 때, 심포로 가보자. 지붕 끝 ㄱ자 처마 아래로 천사백 년의 저녁노을이 붉게 밀려온다. 그리고 바람이 속삭인다. 이 모든 풍경은, 결국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이 짓는 것이다.

# 금산교회 - 신분을 꺾은 ㄱ자, 사랑이 지은 집


모악산 자락에는 ㄱ자로 꺾인 집이 한 채 있다. 그러나 이 집이 품은 마음은 망해사와는 결이 다르다. 망해사가 '마음'으로 지은 집이라면, 교회는 '사랑'으로 지은 집이다. 1908년에 데이트(Lews Boyd Tate) 선교사가 세운 한옥 예배당으로 김제 금산교회다.


겉모습은 여느 한옥과 다르지 않다. 기와를 이고 나무로 짠 몸이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서면 평면이 ㄱ자로 꺾여 있다. 남북축의 한쪽 날개는 남자가, 다른 쪽 날개에는 여자가 앉는다. 출입문도 따로다. 두 날개가 만나는 꺾인 모서리, 바로 그 지점에 강단을 두었다. 설교자는 남녀 어느 쪽도 온전히 마주 보지 못하고, 남과 여 또한 서로를 보지 못한 채 같은 말씀을 듣는다. 


왜 이렇게 지었을까. 답은 시대에 있다. 남녀가 한자리에 섞여 앉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던 때다. 서양에서 건너온 복음은 이 완강한 유교의 벽 앞에 섰다. 벽을 부수면 사람이 오지 않고, 벽에 굴복하면 복음이 올바르게 서지 못한다. 금산교회의 ㄱ자는 그 사이에서 나온 지혜로운 해법이었다. 남녀유별의 유교 전통을 깨지 않으면서, 같은 지붕 아래 같은 말씀을 나누게 한 것이다. 전통을 배격하지 않고 그 위에 새 믿음을 얹은 이 정신은, 낮은 담으로 마을을 안은 무성서원의 마음과 통한다. 상량문이 있는 천정을 보면 남자석 천장에는 한자로, 여자석 천장에는 한글로 같은 성경 구절을 나란히 새겼다. '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 문자는 달라도 말씀은 하나다. 건축이 사상을 담는 그릇이라면, 교회의 ㄱ자는 충돌하는 두 세계를 한 몸에 품어 낸 사랑의 번역이요 말씀의 공간이다.

교회에는 건축보다 더 따뜻한 이야기가 있다. 1907년 교회가 처음으로 장로를 뽑던 날. 후보는 둘이었다. 교회를 지어 바친 지주 조덕심과 그 집 마부로 일하던 머슴 이자익. 투표 결과 장로가 된 것은 머슴 이자익이었다. 신분이 하늘처럼 완강하던 시절, 머슴이 주인을 넘어선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다음이다. 주인 조덕삼은 승복했다. 아니 기뻐했다. 머슴이 강단에서 설교할 때 그는 교회 바닥에 무릎 꿇고 그 말씀을 들었고, 집에 돌아오면 이자익은 다시 주인을 깍듯이 섬겼다. 이 아름다운 서사는 시기가 아니라 사랑으로 안은 조덕삼의 큰 그릇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조덕삼은 자비로 이자익을 평양신학교에 보냈다. 머슴을 목회자로 키운 것이다. 훗날 이자익은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장을 세 차례나 지낸 큰 인물이 되었다. 이른 나이에 조덕삼이 세상을 떠나자 아들 조영호가 아버지의 뜻을 이어 장로가 되었고, 유광학교 교장이 되어 아이들에게 나라 사랑을 가르쳤다. 주인의 집안과 머슴이 대를 이어 한 교회를 섬기고, 서로를 높이며 이 소박한 한옥 안에서 평등과 평화의 신앙을 심어 낸 것이다. 교회에는 화려한 첨탑도 스테인드글라스도 없다. 그러나 이 낮고 순한 기와집 안에는 어떤 성전보다 큰 사랑이 깃들어 있다.


성령의 말씀으로 다시 그 ㄱ자 강단 앞에 선다. 남과 여를 가른 두 날개는, 가르기 위한 벽이 아니라 만나게 하기 위한 꺾임이었다. 반상의 벽을 넘어 머슴을 강단에 세운 교회에서 건축의 ㄱ자와 사람의 이야기가 정확히 이어진다. 꺾인 두 날개가 한 강단에서 만나듯 주인과 종도 한 말씀 앞에 나란히 있었다. 공간이 정신이라면, 금산교회의 공간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사랑의 형상이다. 교회는 학교를 세워 인재를 길렀고, 3·1운동에 나섰으며,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문을 닫는 수모를 견뎠다. 백 년이 지난 지금도 예배당은 모악산 자락에 그대로 서 있다. 남녀가 자유로이 섞여 앉는 오늘, 꺾인 평면은 낡은 유물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벽을 부수지 않고도 벽을 넘는 법을, 이 작은 한옥은 이미 백 년 전에 사랑으로 보여 주었다. 차별이 여전한 시대에, ㄱ자 하나가 던지는 물음은 결코 옛것이 아니다.


망해사는 마음이 모든 것을 짓는다 하고, 금산교회는 사랑이 모든 벽을 넘는다 한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와 사랑. 하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안으로 마음을 닦았고, 하나는 사람을 바라보며 밖으로 벽을 허물었다. 그러나 둘은 결국 하나다. 망해사가 사랑으로 시작해 마음의 도리에 이르렀듯, 마음이 사랑에 이르고 사랑이 마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김제의 너른 들에서 두 신앙의 건축은 나직이 전한다. 
진정한 명당은 땅의 기운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에 깃든 마음과 사랑이다.

공동취재단

충북일보:김용수 사진부 국장, 박소담 사회부 기자, 전은빈 문화부 기자
전북도민일보:이방희 디지털뉴스국장, 김상기 문화교육부 차장, 최진영 편집부 차장, 한신 편집부 차장
자문위원=백승기 건축사·도시공학박사, 원광대학교 겸임교수, 박상일 청주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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