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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8.09 14:32:08
  • 최종수정2026.08.09 17:24:17

김병규

전 상당고 교장

수련원 내의 퇴계 시 공원에는 일라이트 맨발 길이 아담하게 있어 수련생들에게 만족을 주고 있다. 몇 년 전에 서울 지도위원들이 맨발 걷기를 소개하여 조성된 길인데 도산면 태자리에 매장되어 있는 레드 일라이트석을 곱게 파쇄하여 충전재로 사용하였다. 일라이트 광석은 영동에도 세계 최대의 매장량이 발견되었다고 언론에 보도되었지만 레드 일라이트 원석은 안동 도산면 태자리가 국내 유일의 매장지라고 한다. 레드 일라이트는 적운모(赤雲母)라 불리며 이름처럼 붉은색으로 수질 정화, 유해 물질 개선, 원적외선 및 음이온 방출 효과가 있고, 화장품 원료로 사용될 정도로 피부 미용에 탁월한 효능이 있다고 한다.


가히 전국적이라 할 맨발 걷기 광풍 여파로 우리 집 뒤의 금천 배수지 공원에도 황톳길이 생겼고, 김수녕 양궁장 주변에도 긴 거리의 맨발 길이 마련되었으며, 인근 낙가산 기슭에서도 맨발 걷기 하는 사람들을 수시로 보게 된다. 물론 맨발 걷기가 암 환자를 치유했다는 뉴스도 있거니와 나의 귀를 괴롭히는 이명에도 효험이 있다는 말을 들은지라 걷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되어 있다만. 보통 길도 아니요, 효험이 그리 많다는 레드 일라이트 길을 가까이 두고 아니 걸을 수는 없다. 고수는 즉시 한다는데 이야말로 물실호기이다. 다만, 걸을 기회와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 새벽에 헬스장을 가는 때문에 다른 사람처럼 새벽에 걸을 수가 없어 맨발로 걸을 기회는 오후 6시에 저녁 식사하고 나서 프로그램이 시작되는 7시까지 30여 분이 고작이다.


부지런히 저녁을 먹고 나서 가장 좋아하는 방송 프로그램인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듣고자 핸드폰 앱을 열면서 맨발 길로 향한다. 감미로운 음악을 들으며 걷기에는 무언가 다른 일을 보태는 것도 좋겠다. 평소 생활신조로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하자인데 자세히 보니 그 독한 일라이트 모레를 비집고 더 독한 쇠뜨기가 얼굴을 들여 민다. 그냥 두면 마침내 다른 풀과 더불어 길을 덮어 버리겠기에 특별히 쇠갈퀴를 준비했다. 비가 온 뒤나 며칠 뒤집어 주지 않고 내버려 두면 처음에는 부드러운 모래라 할지라도 이윽고 단단한 시멘트 길처럼 굳어 버린다. 부드러운 모래가 아니라 걷기에도 불편할뿐더러 발바닥에도 상쾌함을 주지 못하므로 길도 다듬고 풀도 정리하는데 쇠갈퀴처럼 긴요한 용구도 없다.


결국 일라이트 길을 걸으면서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하루의 생각을 정리하고, 단단하게 굳은 길을 평탄히 고르고, 풀도 뽑으려니 한번 걸으며 네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셈이 되었다. 이명 치료차 효험을 바라던 처음 생각은 이제 저 멀리 가버리고 오직 걷는 데만 집중하며 잡풀을 뽑고 단단한 곳을 뒤엎어 보수하는데 음악은 바지 주머니에서 울린다. 사방은 고요하고 소슬바람에 잔잔한 목소리로 진행을 하는 전기현 님의 음악 해설과 함께 퍼져나오는 음악은 오로지 나를 위한 선물이라 여기게 된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도 오히려 더 편하고 사위가 점점 어두워지는 것도 마음을 온전히 집중하도록 만들어 준다. 걷는 것이 이리 좋고, 파쇄된 일라이트 광석이 주는 더 따가운 감촉도 좋다. 피부 미용을 살필 필요도 없고 이명을 줄여주는가 확인할 필요도 없이 맨발 걷기를 하루라도 궐하였기 때문에 굳어진 길을 보면서 내 마음을 검속하기에 바쁘다. 마침 길옆 샘가 돌에 새겨진 퇴계 선생의 시가 이런 내 마음에 딱 부합된다.


수천(修泉) 샘을 치다


작일수천야청결(昨日修泉也淸潔) 어제 샘을 쳐 깨끗하고 맑았는데


금조일반견니생(今朝一半見泥生) 오늘 아침에 반은 흙탕물이 되었네


시지철정유인력(始知澈淨由人力) 맑고 깨끗함도 인력에 달렸음을 알겠으니


막견치공일일정(莫遣治功一日停) 공들이기를 하루도 멈추지 말아야겠구나.


1년여 지나서 쇠갈퀴를 집어 보니 갈퀴 살이 애초보다 반 정도나 줄어들었다. 워낙 단단한 광물질을 긁었기 때문에 쇠로 만든 갈퀴 살도 견디지 못하고 닳아 없어졌다. 이야말로 마부작침(磨斧作針)의 확실한 예가 아닌가. 갈퀴 살이 반으로 줄어들 정도의 노력으로 이명도 잡혔더라면 좋았겠지만, 아직 효과는 미미하니 이제는 천상 집 근처 황톳길을 걸어 효과를 바래야겠다. 다만 조금의 정성이라도 있으면 어찌 愚公의 뜻을 보답받지 못할 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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