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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숙

시인·한국어 강사

"아이구, 시원하다!"


무더위에 화분 앞에서 며칠째 진땀을 흘리고 있다. 땀이 비 오듯이 쏟아진다. 이마에서 흐른 땀은 눈으로도 들어가고 온몸이 흠뻑 젖기 일쑤이다. 하지만 귓가에서는 시원하다는 기분 좋은 음성이 들려온다. 오랜만에 어머니의 밝은 목소리가 연거푸 들리는 듯하다.


얼마 전, 거동이 불편하여 집안에서조차 이동하기가 힘든 어머니를 뵙고 왔다. 어머니는 목욕하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좋아하셨다.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동생이 욕실 바닥에 미끄럼방지 패드를 깔고 목욕용 의자와 타올, 비누와 샴푸, 수건까지 모두 준비를 해줬다. 그리고 의자에 안전하게 앉을 수 있도록 어머니를 부축했다.


목욕용 의자에 앉은 앙상한 어머니는 손과 발에 따뜻한 물이 닿자마자 아이처럼 얼굴이 환해졌다. 숨이 가빠서 쉬엄쉬엄 천천히 움직였지만 얼굴에는 엷은 미소가 머물렀다. 샤워기로 등에 따뜻한 물을 뿌리며 부드럽게 문지르자, "아이구, 시원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좋아하셨다. 나는 그 소리가 하도 행복하게 들려서 힘든 줄도 모르고 어머니 몸을 부드럽게 씻겨드렸다. 어머니는 후렴처럼 "아이구, 시원하다!"는 말씀을 반복하셨고 나는 그 리듬에 맞춰 팔과 다리, 등과 허리, 손과 발, 어깨를 마사지하며 물을 뿌려드렸다. 목욕 후에는 어머니의 밝은 표정을 보면서 손톱과 발톱을 깎아드렸다. 어머니는 맑은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시며 마침표를 찍듯이 시원하다는 말씀을 거듭하셨다.


올해는 유난히 습하고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절로 입에서 덥다는 말이 나온다. 너무 습하고 더워 집안에 있는 화분도 몸살이 난 모양이다. 지나치게 웃자라거나 꽃대가 늘어져 감당하기가 어려운가 하면, 뱅갈고무나무에는 진딧물이 하얗게 달라붙었다. 이파리 앞뒤에 진딧물이 붙어 이파리가 힘없이 뚝뚝 떨어지곤 했다. 편백나무 액기스와 물을 희석하여 뿌리고 정성스레 이파리를 닦아주었다. 몇 번을 그렇게 하자 고무나무 이파리에 반짝반짝 윤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연둣빛과 초록빛의 문양이 예쁘고 건강하게 되살아났다. 하지만 잎이 떨어진 자리는 앙상한 뼈마냥 가지가 드러났다.


어머니의 기운 없이 가느다란 팔과 다리, 무릎과 굽은 등과 허리를 빼닮아있었다. 그래서일까. 뱅갈고무나무에 더 애착이 간다. 여름내 여유가 있을 때마다 뱅갈고무나무를 바라본 것 같다. 이리 보고 저리 보고 화분을 돌려가며 잎의 앞면과 뒷면까지 살피며 진딧물 퇴치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며 나무를 자세히 들여다볼 때마다 어머니의 음성이 들린다.


"아이구, 시원하다!"


더워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어머니의 음성은 더위를 식혀 줄 만큼 기분 좋게 들려온다. 어쩌면 더위를 식혀 주는 보약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헤아릴 수조자 없는 위대한 어머니의 사랑이리라.


오늘도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뉴스 헤드라인에 날씨에 관한 이야기가 연이어 나오고 사건 사고 소식이 뒤를 잇는다. 만나는 사람마다 '너무 덥죠?', '더운데 어떻게 지내세요?', '내 평생 이렇게 더운 건 처음이에요.', '물 많이 마셔야 한 대요.', '더위 조심하세요.', '뜨거울 때는 밖에 나가지 마세요.' 등등 여름 안부를 전하느라 분주하다.


나는 이렇게 분주하고 무더운 더위 중에도 시원한 여름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어머니의 "아이구, 시원하다!"는 음성이 더위를 식혀 주기에 충분하다.


돌아오는 주말에도 어머니를 만나러 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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