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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8.06 10:29:03
  • 최종수정2026.08.06 10:29:03
가을이 깊어지면 할머니의 발길이 분주해졌다. 조상님들의 시제를 지내려면 준비해야 할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중에 떡을 수북하게 고이고 맨 위에 장식할 붉은색 떡을 만들려면 지치가 필요하였다. 할머니는 그 지치를 캐러 먼 산을 다녀오셨다. 이 지치는 캐는 순간부터 붉은 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잘 씻어서 한 주 조각으로 분질러서 물에 담가 놓으면 진한 붉은색 물이 된다. 그 물로 쌀가루를 염색해 떡을 만드셨던 것이다. 정말로 각종 약으로도 쓰이는 천연 식염료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곳에 더 이상 지치는 없다. 산과 들판의 양지바른 풀밭에 자라는데, 숲이 우거져 지치가 살 수 없는 환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산림녹화가 너무 잘 돼 생기는 아이러니라 할까. 숲이 우거진 덕분에 많은 양지 식물들이 묘지로 피난(?)을 가서 산의 묘지가 식물 다양성 유지에 일조(?)를 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옛날 아련한 추억 때문에 지치 씨를 구해 재배해 보았다. 약간의 그늘을 만들어 주어야 잘 자라는데 도라지처럼 2년 이상을 견뎌내지 못하고 썩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비옥한 농토보다는 척박한 토양에서 오래 살아 남는다니 참으로 넘쳐나는 영양이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지치는 5-6월 봄에 흰꽃을 피우는데 뿌리가 마르면 자주색을 띠어 자초(紫草)라고도 하였던 것이 지치 또는 지초(芝草)라 하게 되었다. 자단(紫丹), 지혈(地血)이라고도 한다. 지치의 종명인 erythrorhizon은 '뿌리가 붉다'는 뜻이다. 지치의 주색소 성분은 시코닌(shikonin)으로 세계에는 '도쿄 바이올렛(Tokyo Violet)'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아세틸시코닌(Acetylshikonin)이라는 어두운 보라색 색소를 함유하고 있다. 눈 쌓인 겨울에도 지치를 캘 수 있는데, 이 색소가 눈에 녹아 주변을 붉으스름하게 물들이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어린순을 나물로 먹으며 뿌리를 말린 것을 자근(紫根)이라 해 해열, 강심, 해독등의 한약재로 사용한다. 진도에서 홍주를 만들 때 사용하며, 북한 지방에서 감홍로를 만드는 원료로도 쓰인다. 감홍로는 선온宣醞(왕이 신하에게 베푸는 술)로 유명했는데, 소주를 내릴 때 지초로 물들여 홍주를 만들어 벌꿀을 첨가해 만든다고 한다.

또한 지초는 옷감의 자주색 염료로 사용했는데 햇볕에 쬐면 쉽게 바래는 결점이 있기는 하나 색상이 매우 아름답다고 한다. 이처럼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 지초는 붉은색이나 진한 자주색을 내는 특이한 식물이다.
지치는 여러해살이풀로 온몸에 빳빳한 털이 나 있다. 잎은 어긋나고 피침 모양이다. 5~6월에 흰색 꽃이 피고 수술은 5개, 암술은 1개이며 씨방에는 십자형의 홈이 있다.

비슷한 식물로 같은 속의 개지치, 반디지치가 있는데, 반디지치는 꽃이 5~6월에 피며 벽자색이고, 줄기 상부의 잎겨드랑이에 꽃이 1개씩 달린다. 개지치는 지치와 비슷하지만, 뿌리에 지치와 같은 색소가 없다.

반디지치는 풀밭 속의 푸른 별이다. 양지바른 풀밭이나 모래땅에 자라는데 우리나라 중부 이남에 많이 자생하며 자주색, 푸른색이 섞인 화려한 꽃이 특징이다. 꽃이 진 다음 가지가 옆으로 벋으면서 뿌리를 내린다.

지치와 같은 집안이나 좀 더 먼 지치들로 들지치, 뚝지치, 산지치와 모래지치, 왜지치, 당개지치, 대청지치 등이 있다.

당개지치는 반디지치와 달리 주로 중부 이북 지방의 산지에서 자생한다. 주변 습도가 높고 물 빠짐이 좋으며 유기질 함량이 풍부한 토양을 좋아한다. 수술은 5개로 짧고 암술대는 1개로 길게 밖으로 빠져나와 있다. 열매는 8~9월경에 검게 익으며 짧은 털이 있고 아래로 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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