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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건축문화에 K-컬처를 입히다①

지역신문발전위원회 공동주제 심층보도

  • 웹출고시간2026.08.03 17:29:24
  • 최종수정2026.08.03 17:39:00

편집자주

지역신문발전위원회 2026년 공동주제심층보도지원사업에 선정된 전북도민일보와 충북일보는 전북과 충북지역에 산재한 대표적인 건축문화유산을 공동 취재해 역사적 의미와 건축학적 특징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K-컬처 문화유산으로 재해석하는 기획보도(대한민국 건축문화에 K-컬처를 입히다)를 13회에 걸쳐 지면과 인터넷 홈페이지에 보도한다. 특히 공간의 입지와 풍수적 관점에서 건축을 재해석함으로써 공간 속에 담긴 역사와 시대정신을 입체적으로 조명, 관광자원 및 문화 콘텐츠로 활용 가능한 지역 문화자산으로 조명해 지역 문화유산의 보존 가치와 우수성을 알리고자 기획취재했다.
[충북일보] 천 년의 정읍, 최치원의 길을 걷는다. 천년의 시간이 두 채의 건축에 포개져 있다. 시공을 초월한 공감, 건축을 통한 성현의 기억. 역사를 담은 샘고을 정읍에서 두 건축을 걷는다. 앉아보고, 누워보고, 때로는 그 시절로 거슬러 가본다.
△ 정읍 무성서원

세계문화유산을 만나러 가는 길은 항상 설렘이다. 매표소를 지나고, 높은 산문을 올려다보고, 잘 닦인 진입로를 한참 걷는다.

낮은 돌담을 따라 걷다 보면, 여느 집 담장과 다를 바 없는 담 너머로 팔작지붕 누각 하나가 문득 고개를 내민다. 마을 한가운데,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세계유산이 다소곳이 서 있다. 이 무심함이야말로 무성서원의 첫인상이자, 이 서원의 성격을 그대로 말해 준다.

건축을 보는 첫걸음은 건물이 아니라 터를 읽는 일이다. 무성서원은 전북 정읍시 칠보면에 위치한다. 서원 앞으로 작은 천이 흐르고 뒤에는 성황산이 버티고 있는 배산임수형이다. 서원은 산자락에 홀로 물러나 있거나 마을을 등지지 않았고, 그냥 마을 속에 민초들과 함께 한다.

안동 도산서원이 낙동강을 굽어보는 산기슭에 있으며, 경주 옥산서원이 계곡 물소리 속에 들어앉아 자연과의 합일을 지향했다면, 무성서원은 사람들의 왕래가 끊이지 않는 마을 안길에 몸체를 뒀다.

담은 막기 위한 담이 아니다. 시선을 걸치게 하고, 안과 밖을 잇고, 마을 풍경을 서원 안으로 조용히 끌어들이는 담이다. 차경(借景)이란 결국 자연을 소유하지 않고 빌려 쓰는 태도인데, 무성서원은 담 하나로 그 태도를 완성했다. 배움이 세속과 분리된 성역이 아니라 생활과 밀접한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는 배치다. 담장을 스치고 정문 격인 현가루(絃歌樓)의 아래를 지난다. 이 층 누각의 밑을 통과하는 순간 천장의 무게에 눌려 몸이 잠시 어둔하고 서늘해지더니, 마당에 들어서자 맑고 푸른 하늘이 탁 트인다.

압축과 해방이다. 옛 목수는 이 짧은 통과의 순간에 유생들의 몸과 마음의 리듬까지 설계해 뒀다. ‘현가’란 거문고를 타며 노래한다는 뜻이니, 배움이 곧 즐거움이라는 유가의 이상을 현판에 걸어 둔 것이다.

마당 안쪽애는 명륜당이 마주 서고 그 뒤 한 단 높은 곳에 사당이 자리한다. 앞에는 배우는 곳, 뒤에는 기리는 곳을 두는 전학후묘(前學後廟). 이 위계의 질서가 서원 건축의 기본 배치다. 서원 곳곳을 둘러봐도 화려한 장식은 없다. 그러나 절제된 이 배치 속에는 조선 선비들이 자연과 우주를 이해하던 방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명륜당 안으로 들어서면 시선은 자연스레 천장으로 오른다. 대들보가 곧지 않다. 자로 켠 듯 반듯한 재목 대신, 본디 자란 나무의 휜 등을 그대로 살린 자연곡(自然曲)의 대들보가 지붕의 무게를 떠받치고 있다. 굽은 나무를 굽은 그대로 쓴다는 것, 이는 소박함이 아니라 검박함의 깊은 건축미학이다. 나무의 성정을 거스르지 않고, 힘이 흐르는 결을 읽어내며 그 곡선을 구조로 삼는 것이다. 곧게 다듬으면 재목은 약해지고, 굽은 대로 얹으면 오히려 큰 힘을 받는다.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의 정수다. 자연을 이기려 하지 않고 자연과 함께 사는 태도야말로, 낮은 담으로 마을을 끌어안은 저 바깥의 마음과 정확히 같다. 대들보 하나에 서원 전체의 철학이 묻어나는 것이다. 곡선은 자연의 필체로서 옛 목수는 그 필체를 읽어 기단과 기둥, 대들보와 서까래 그리고 위에 지붕을 얹히며 자태를 뽐낸다.

무성서원의 뿌리는 통일신라로 거슬러 오른다. 최치원이 태산군 태수로 부임해 선정을 베풀고 떠나자, 백성이 그를 기려 생사당(生祠堂) 태산사를 세웠다 한다. 살아 있는 사람을 기리는 사당을 백성이 스스로 세웠다는 것이다. 무성서원은 권력이 아니라 민심에서 비롯된 공간이다. 1696년 숙종이 ‘무성(武城)’이라 사액했고,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헐리지 않고 살아남은 서원 중 하나가 됐다. 수많은 서원이 무너지던 시절 무성서원이 살아남은 까닭은 분명하다. 백성의 삶과 함께 뿌리내린 서원, 공동체가 스스로 지켜 낸 배움의 자리였기 때문이다.

명륜당 마루에 앉아본다. 1906년, 바로 이 자리다. 국권이 저물던 시절, 일흔넷의 면암 최익현이 이 강당에 유생들을 불러 모았다. 잠시 그가 되어본다. 붓을 잡은 손이 떨렸을까, 아니면 오히려 고요했을까. 배운 것을 끝내 지키려는 자의 마음으로 창의문을 써 내려가던 그 손끝이 손바닥에 겹쳐 온다. 선비들이 글을 읽던 강당은, 나라가 위태롭던 순간 저항의 거점이 됐다. 동쪽 강수제 마당에 있는「병오창의기적비」가 그날을 증언한다. 배움이 곧 실천이어야 한다는 서원의 정신은 여기서 행동으로 끓어올랐다. 건축이 사상을 담는 그릇이라면, 이 강당은 그 사상이 불이 된 도가니였다.

무성서원의 가치는 지금도 마을 사람들이 담장 곁을 지나고 아이들이 그 앞을 뛰노는, ‘살아 있는 유산’이라는 점에 있다. 오늘 우리는 학교와 도서관을 지으면서도 배움의 공간을 자주 마을에서 떼어 놓는다. 담을 높이고 문을 잠근다. 무성서원은 정반대의 답을 이미 수백 년 전에 내놓았다. 배움터를 삶터 곁에 두고, 지역이 스스로 지켜 내게 하는 것. 지역 소멸이 화두인 지금, 낮은 담 하나가 던지는 물음은 결코 옛것이 아니다.

△피향정
오래된 건축 앞에서는 늘 같은 일을 하게 된다. 앉아보고, 누워본다. 그리고 지그시 눈을 감는다. 피향정 기둥에 등을 대자 나무는 아직 온기를 품고 있고, 사방으로 트인 난간 사이로 연꽃 향을 실은 바람이 스치며 건너간다. 마루 아래는 스물여덟 개의 화강암 석주가 몸을 위로 조용히 밀어 올린다. 그렇게 앉아 눈감으면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 피향정(披香亭)은 호남제일정(湖南第一亭)이다. ‘향기를 머금고 나누는 정자’ 그러나 그것은 향기가 아니라 시간이었다.

피향정은 신라 헌안왕 때 최치원이 태산군 태수로 재임하던 중 세웠다고 전한다. 정확한 초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이 연못가를 거닐며 풍월을 읊었다는 전설이 1천200년을 건너 이 정자에 그의 이름을 새겨 뒀다. 최치원은 열두 살에 당나라로 건너가 빈공과에 급제하고 ‘토황소격문’으로 문명을 떨친 신라 최고의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귀국한 그를 기다린 것은 골품제의 벽이었다. 뜻을 펴지 못한 그는 외직을 자청해 지방을 떠돌았고, 중앙에서 물러난 천재가 물가를 거닐던 피향정의 밑바탕에는 그의 쓸쓸한 서사가 깔려있다.

스물여덟 돌기둥은 하늘의 숫자다. 마루 밑으로 내려가 석주 사이에 앉아본다. 스물여덟 개의 돌기둥은 육중하고 거칠다. 물가의 습기로부터 목재를 지면에서 띄우려 화강암을 세운 이 해법은, 아름다움에 앞서 오래 견디게 하려는 계산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스물여덟인가. 옛사람들은 하늘의 별자리를 스물여덟으로 나누어 28수(宿)라 불렀다.
이 돌기둥들은 단순한 구조재가 아니다. 땅에 뿌리내려 하늘의 수를 떠받치고, 그 위에 사람이 오르는 마루를 얹었으니 아래로 땅(地), 기둥으로 하늘(天), 마루로 사람(人)이다. 천·지·인 삼재(三才)가 한 채의 정자에 포개진 셈이다. 돌을 쪼아 다듬던 석공은 그저 기둥을 세운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과 사람이 만나는 자리를 세운 것이다.

정자에 기대 연꽃 향을 맡으며 잠시 고운이 되어본다. 붓 대신 마음으로 그가 그렸을 그림 하나 현묘지도(玄妙之道). ‘난랑비 서문’에서 그는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이를 풍류도(風流道)라 하며, 그 안에 유·불·도 삼교가 이미 다 담겨 있다고 했다. 유도 불도 도도 아니면서 그 셋을 모두 품는 하나의 도다. 자연과 사람이 서로 사랑으로 하나 되는 접화군생(接化群生)의 이치를 그는 이곳 피향정 연못에서 실행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늘과 땅과 사람을 한자리에 세운 천지인의 구조, 그리고 담도 벽도 없이 자연을 안으로 들이는 이 개방성이야말로, 글로 남기지 못한 현묘지도다.

건축이 곧 사상의 번역체라면, 피향정은 하늘·땅·사람이 하나 되는 풍류도가 목조로 번역된 한 채의 도(道)다. 그리고 이 천지인 삼합의 정신적 사유는 정읍에서 우연이 아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그 오랜 꿈은, 천년의 세월을 건너 바로 이 땅에서 실제로 피어났다. 최치원이 자연과 사람의 하나 됨을 노래한 이 정읍에서 훗날 ‘사람이 곧 하늘(人乃天)’을 외친 동학이 일어섰다. 고부에서, 황토현에서, 이름 없는 민초들은 죽창을 들고 새 세상을 열고자 했다. 풍류도의 접화군생이 천년을 흘러 동학으로 다시 태어난 셈이다.
피향정은 1963년 보물로 지정됐다. 본래 앞뒤로 두 연못이 조화를 이뤘으나 지금은 앞쪽 하연지만 남았다. 이름의 절반이 사라진 정자인 셈이다. 그러나 정자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뜻을 펴지 못한 한 지식인이 자연에서 위안을 구하던 천년의 시간을 조용히 증언한다. 연꽃이 하연지를 가득 채울 때 태인이 거듭난다. 정자에 잠시 누우면 스물여덟 석주가 몸을 위로 밀어 올리고, 연꽃 향이 인향으로 다가온다. 바로 그 순간, 당신도 잠깐 고운이 된다.

공동취재단

충북일보:김용수 사진부 국장, 박소담 사회부 기자, 전은빈 문화부 기자
전북도민일보:이방희 디지털뉴스국장, 김상기 문화교육부 차장, 최진영 편집부 차장, 한신 편집부 차장
자문위원=백승기 도시공학 박사, 박상일 청주대학교 명예교수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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