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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8.02 15:29:25
  • 최종수정2026.08.02 15:29:25

원광희

청주시정연구원장

지루했던 장마가 끝나고 숨 막히는 폭염이 찾아왔다. 연일 이어지는 무더위 속에서 우리는 불과 얼마 전의 폭우와 침수 피해를 벌써 잊은 것은 아닌지 뒤돌아봐야 한다. 비가 그치고 물이 빠졌다고 위험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재난이 지나간 지금이 오히려 다음 재난을 준비해야 할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우리의 기후는 이미 달라졌다. 오랫동안 비가 내리던 전통적인 장마에서 벗어나 짧은 시간 특정 지역에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지는 아열대성 집중호우가 일상화되고 있다. 폭염으로 달궈진 대기와 많은 수증기가 만나면 예측하기 어려운 국지성 폭우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이제 집중호우는 장마철에만 대비하는 계절적 위험이 아니라 도시를 상시 위협하는 재난이 된 지 오래전이다.


우리는 어디가 잠기고 왜 잠기며 어떤 피해가 반복되는지를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폭우가 지나가고 폭염이 시작되면 침수된 도로와 주택, 고립됐던 지하차도의 위험은 빠르게 잊힌다. 같은 피해가 되풀이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자연재해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책의 실패이며 실행의 지연이다.


청주의 침수는 구조적이다. 우암산과 부모산에서 내려온 물은 계곡부를 따라 도심으로 빠르게 집중된다. 불투수면으로 뒤덮인 도시는 빗물을 흡수하지 못하고, 금강으로 이어지는 서해안의 조수간만의 차이와 무심천·미호강의 수위가 상승하면 배수 기능도 급격히 약화된다. 산지와 도심, 하천이 하나로 얽혀 작동하는 '복합 침수 구조'가 침수 문제의 본질이다.


저지대 집수구역과 내수배제 한계 지역, 하천 범람 위험구역은 상당 부분 확인돼 있다. 데이터와 피해 이력도 축적돼 있다. 그동안 저류조를 만들고 우수관로와 배수시설을 정비해 왔지만 기후 위기의 속도는 기존 방재 기준을 앞서가고 있다. 부족한 것은 해법이 아니라 실행이다.


청주를 비롯한 지방정부의 방재 정책은 이제 '빨리 배수하는 도시'에서 '빗물을 머금고 조절하는 도시'로 전환돼야 한다. 물을 관로와 하천으로 밀어내는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도시 안에서 빗물을 분산해 저장하고 흐름과 속도를 조절하며 위험지역으로의 집중을 통제해야 한다.


첫째, 단기적으로 상습 침수구간의 빗물받이와 측구를 정비하고 침수센서와 CCTV를 확대해야 한다. 지하차도와 지하주차장에는 위험 수위에 따라 작동하는 자동 차단시설을 조속히 설치해야 한다. 침수흔적도와 민원 자료, 재난지원금 지급 이력, 소방 출동 기록을 통합한 '침수 이력 DB'도 더욱 촘촘하게 구축해야 한다. 데이터 기반 대응체계가 없으면 투자 우선순위를 정할 수도, 반복 피해를 줄일 수도 없다.


둘째, 중기적으로 도시 전역에 분산형 저류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학교 운동장과 자연공원, 공영주차장, 공공청사 지하 등에 빗물저류시설을 촘촘히 배치하고 투수 포장과 빗물 정원 등 그린인프라를 확대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학교 운동장 아래 대형 저류시설을 설치해 평상시에는 학생들의 교육·체육 공간으로 활용하고, 집중호우 시에는 빗물을 일시 저장하는 방재시설로 운영하는 사례가 확산되고 있다. 우수관로의 병목구간도 함께 정비해 배수와 저류가 동시에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핵심은 '공간의 재해석'이다. 학교 운동장과 공원은 평상시 교육과 휴식 공간으로 사용하고, 집중호우 때는 빗물을 일시 저장하는 재난 대응 공간으로 전환할 수 있다. 공공청사와 주차장도 지상은 기존 기능을 유지하면서 지하에는 저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도시의 일상 공간이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방재 인프라가 돼야 한다.


셋째, 장기적으로 무심천과 미호강 합류부, 오송·옥산 등 반복 피해지역을 중심으로 대심도 저류·방수터널과 하천변 저류지 조성을 검토해야 한다. 일본 도쿄의 수도권 외곽 대심도 방수로(G-Cans)와 서울 신월 빗물 저류 배수시설은 집중호우 시 대량의 빗물을 지하에서 저장한 뒤 하천으로 안전하게 방류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는 만큼 전면 도입보다는 피해 이력과 수리·수문 분석을 토대로 배수 병목구간에 선택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강우량과 하천 수위, 배수문, 도로 통제, 지하차도 차단, 주민 대피 정보를 통합하는 스마트 홍수관리시스템도 함께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업을 지방정부의 의지와 재정만으로 추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대심도 터널은 막대한 사업비와 장기간의 공사가 필요하고, 학교 운동장은 교육시설, 자연공원은 공원·녹지시설, 공공청사는 행정재산으로 관리 주체와 적용 법률이 각각 다르다. 일본처럼 교육시설을 방재시설과 복합 활용하려 해도 부지 사용과 시설 기준, 안전관리, 유지비용, 책임 소재를 둘러싼 제도적 장벽을 해결해야 한다.


따라서 중앙정부 차원의 법제화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대심도 터널과 분산형 저류시설을 국가 기후재난 대응 인프라로 규정하고, 학교·공원·공공청사 등 기존 공간을 다목적 방재시설로 활용할 수 있도록 관련 법률과 시설 기준을 정비해야 한다. 국비 지원 근거와 중앙정부·지방정부·교육청 간 역할 분담, 설치와 운영, 안전관리 기준도 명확히 마련해야 한다. 여러 부처가 관련된 사업은 통합적으로 심의하고 지원하는 범정부 추진체계도 필요하다.


폭우 때마다 대책을 발표하고 비가 그치면 잊는 방식으로는 달라질 수 없다. 장마는 끝났지만, 집중호우의 위험은 끝나지 않았다. 청주가 물을 빨리 버리는 도시를 넘어 물을 머금고 조절하며 통제하는 도시로 전환하려면 지역의 결단과 함께 국가의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다음 폭우가 찾아오기 전, 법과 제도를 움직이는 일이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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