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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7.28 17:55:59
  • 최종수정2026.07.28 17:55:59

김병규

전 상당고 교장, 현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수련기획실장

간밤 집중적인 폭우로 비상 문자가 울리더니 급기야 저지대 지역이 침수되었다는 뉴스도 보인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낙가산에 오르고자 채비를 차렸다. 아내는 호우주의보도 내린 날씨에 위험하다고 말리지만, 산사태 날 산은 아닌 것 같아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읽었던 '눈과 비바람도 이들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는 말을 뇌며 대문을 열었다. 다행히 장대비는 잦아들고 가는 비가 잡히므로 평소처럼 가방을 메지 않고 스틱과 우산만 들고 집을 나섰다. 낙가산 초입에 들어서자 산에서 내려오는 냉기로 머리가 깨끗해지는 듯하여 우중 산행을 잘했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이 정도 비가 올 때에는 산행하는 사람도 드물어 생각에 방해를 받지 않으니 더 좋다.

얼마쯤 갔을까· 손바닥 두 개는 실히 됨직한 황소개구리 한 마리가 길 한복판에서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다. 방금 아침 식사를 하여 몸이 무겁기 때문인지 아니면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 여겨서 그런지 모르나 비 맞으며 제법 느긋하게 움직인다.

내 고향 사람들은 어두운 밤길에 로드킬 당한 황소개구리를 횡재로 여긴다. '이것 끓이면 뿌연 국물이 삼계탕보다도 낫다고 하던데.' 요 며칠 낙가산을 다시 걸어보니 고작 두 해 만인데도 전보다 숨이 더 차고 이따금 무릎까지 시큰거려서 세월의 흐름을 느끼던 차 보신용으로 딱 걸렸다. 요것을 겨누며 어렸을 적 멱감다가 개구리 뒷다리 구워 먹었던 경험으로 그때의 버드나무 가지 대신에 등산용 스틱으로 머리를 모질게 때리려니 저 커다란 놈이 뒷다리를 바르르 떨며 생을 마감하는 꼴을 도저히 못 보겠다. 그렇다고 진흙 묻은 스틱을 풀잎에 닦고는 과감히 등판을 찍으려니 내장이 튀어나오는 꼴은 더 끔찍하겠다. 게다가 오늘따라 배낭도 없으니 설사 황소개구리를 처단한다손 담아 갈 일도 막막하다. 너 오늘 '선비 공부'하는 사람 만나서 운이 좋은 줄 알아라 하면서 혹시 만날 다른 사람의 모진 손끝에 비명횡사를 당할까 봐 스틱으로 꽁지 부분을 툭툭 쳐서 숲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런데 이놈이 무슨 심보인지 뒷다리에 힘을 주고 숲속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게 아닌가. 설마 나랑 놀자고 하는 것인가· 파충류라서 빗물에 체온이 떨어져 민첩하게 움직일 수 없거나 아니면 내가 알아서 갈 테니 기분 나쁘게 밀지 말라는 것인가. 아무튼 그놈 자존심도 있네. 파충류의 머리라 뇌간만 있을지라도 연 전에 알락 할미새를 손바닥에 올려 생명을 구해주고, 샘물에 빠져 죽어가는 말똥가리를 살려주었던 이 사람의 착한 심성은 아는가 보다.

전두엽이 있으나 지인지감(知人知鑑) 없는 사람보다는 낫군.

삿된 생각을 멀리하고 길을 재촉하여 산속으로 접어든다. 홍수주의보 내린 덕으로 산 곳곳에 물길이 열려 골짜기 얕은 곳은 간류(澗流)가 되고 깊은 곳은 계류(溪流)가 되어 폭포도 잡히니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산속에서 제법 크게 아롱진다. 살 많은 우산을 썼더니 우산 면이 팽팽하여 빗방울 듣는 소리가 거문고 소리와 비슷하다. 국궁에서 활을 잘 놓으면 시윗소리가 거문고 소리처럼 청아하더니 우산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이리 명랑한 줄 처음 알았다. 산길 나뭇잎에 모여 떨어지는 묵직한 빗방울 소리, 폭포를 이뤄 흐르는 골짜기 물소리에 반바지가 흥건히 젖어도 엉덩이 께가 척 늘어 붙어도 마음은 흥겹다.

두 시간여 걷는 동안 인적 없어 호젓했거늘 맞은편에서 흰 머리의 여인이 우산 쓰고 오는데 자세히 보니 맨발로 걷고 있다. 간밤의 폭우로 모래는 다 쓸려나가고 잔돌만 널려있는 좁은 산길이라 한편에 비켜서서 기다리려니 지나면서 인사 한마디를 건넨다. "오늘 산이 장관이네요" 답례차 "좋은 날 보내세요"라 말하면서 장관이라는 그분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런데 만약에 아까 봤던 황소개구리를 보신용 또는 생태환경 보호 명분을 걸어 처단했더라면 오늘 비 오는 산이 장관이라는 말에 그리 공감할 수 있었을까·

그러다 보니 오늘 산행에서는 老先生의 좌우명 중 사무사(思毋邪)와 신기독(愼其獨)을 살핀 하루였다. 미물일지라도 남의 생명을 다치게 했더라면 장관을 느끼지도 못했을 뿐더러 그런 말에 공감도 못 하였겠다. 모름지기 아침 저녁으로 마음을 단정히 다잡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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