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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7.19 14:38:43
  • 최종수정2026.07.19 14:38:43

김경숙

(전)청주시평생학습관장

며칠 전 저녁, 식당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식당 앞 커다란 감나무 한 그루가 내 발걸음을 붙잡았다. 감나무 가지마다 붉은 꽃이 환하게 피어 있었다.

'감나무에 저런 꽃이 있었던가·'

가까이 다가가 보니 장미 넝쿨이 감나무를 타고 올라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장미는 감나무를 의지해 햇살 가까이 닿았고, 감나무는 묵묵히 그 무게를 품어 주고 있었다. 서로 다른 두 생명이 한 폭의 그림처럼 어우러진 모습은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나무는 어제도 그 자리에 있었고, 장미도 이미 피어 있었을 것이다. 달라진 것은 풍경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본 내 마음이었다.

살다 보면 사람도 그런 경우가 있다. 누군가는 기꺼이 버팀목이 되어 주고, 누군가는 그 온기 덕분에 자신의 꽃을 피운다. 혼자 빛나는 삶보다 서로를 빛나게 하는 삶이 더 아름답다는 사실을 그 감나무는 말없이 일러 주고 있었다.

그 따뜻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주차를 마치려는데 차 뒤편에서 퍼드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어린 새 한 마리가 와이퍼 위에 앉아 있었다. 잠시 뒤 어미 새가 날아와 먹이를 먹여 주고는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몇 초 되지 않는 짧은 장면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에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사랑이 담겨 있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돌보고, 먹이고, 기다려 주는 일. 사랑은 어쩌면 거창한 말이 아니라 그런 일상의 반복인지도 모른다.

그 순간 아침에 보았던 풍경이 떠올랐다. 베란다 괴마옥 화분에서 막 고개를 내민 연둣빛 새순이었다. 손톱만 한 생명이 뜨거운 햇살을 향해 조용히 몸을 밀어 올리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그날 내게 찾아온 행복은 세 번이었다.

아침에는 새순이 나를 웃게 했고, 저녁에는 감나무를 타고 오른 장미가 걸음을 멈추게 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직박구리 가족이 하루를 따뜻하게 마무리해 주었다.

그날은 특별한 일이 없었다. 좋은 소식도 없었고, 큰 행운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하루는 오래도록 따뜻했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풍경들이 그날은 하나같이 나를 불러 세웠다. 행복은 특별한 날에만 찾아오는 손님이 아니었다. 늘 내 곁에 있었지만 내가 너무 바빠 알아보지 못했던 오래된 친구였다.

우리는 늘 더 큰 기쁨만 기다리느라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 행복을 지나치는 것은 아닐까. 기쁨은 새순처럼 조용히 올라오고, 장미처럼 서로에게 기대어 피어나며, 어미 새의 부리 끝에서 사랑이 되어 건너온다. 잠시만 걸음을 늦추면 평범한 하루에도 그런 풍경은 얼마든지 숨어 있다.

무더운 여름이다. 혹시 오늘도 덥다는 말만 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고, 나무 한 그루 앞에 걸음을 멈추고, 작은 생명을 바라보는 여유를 가져 보자.

어쩌면 우리를 가장 시원하게 해 주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마음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그 풍경은 우리보다 먼저 와, 잠시 걸음을 멈추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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