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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7.14 14:55:53
  • 최종수정2026.07.14 14:55:58

임가영

전 충북교육청비서관·전 기자

비가 무섭게 내리기 시작하자 3년 전 여름이 떠올랐다. 그날도 사람들은 출근했고, 기자였던 나는 방송국으로 향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매섭게 쏟아지는 비를 뚫고 차량 시동을 걸었다. 신호등은 노란색 점등불로 깜빡였고, 우비를 입은 경찰은 다른 길로 우회하라며 다급히 신호봉을 흔들고 있었다. 우회도로가 반쯤 잠겨 산남동으로 방향을 틀으니 그곳도 상황은 마찬가지, 분평동 사거리가 반 이상 물에 잠겼고 어떤 차는 침수가 돼 가고 있는 중이었다. 몇 번을 반복하고 나니 등줄기에 땀이 흘렀고, 눈앞에 재난영화의 한 장면이 펼쳐지는 듯했다. 우여곡절 끝에 방송국에 도착했을 때 이미 몇몇 기자들은 현장으로 출동한 뒤였다. 나는 그들이 보내온 소식을 속보로 정리했다. 창밖으로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며 그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에도 각각의 사람들은 자기 동네 현황을 개인 sns에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피해 상황을 알렸고, 실제로 그들이 건넨 제보 영상은 뉴스에 사용됐다.

기자를 그만둔 지 3년 여가 지났지만 비가 많이 내리면 습관처럼 뉴스를 켜고 sns를 유심히 본다. 어느 도로가 잠겼는지, 어느 마을이 침수됐는지, 현장에 누가 나가 있는지 먼저 살펴본다. 몸은 가지 않았지만 시선만큼은 여전히 현장에 머물러 있다. 사람들은 흙탕물로 변한 무심천과 물바다가 된 동네를 실시간으로 공유했다.

직장을 떠날 수는 있어도 오랜 시간 몸에 밴 기자의 시선을 쉽게 내려놓지는 못한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요즘 나의 일상은 인터뷰를 하기 위해 틈틈이 섭외 전화를 하고 인터뷰이를 만난다. 인터뷰 너머로 보이는 그 사람의 표정과 목소리, 풍겨져 나오는 아우라를 온몸으로 느끼며,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을 압축할 수 있는 몇 가지 질문이 무엇일까 고민한다.

뉴스는 침수 면적과 피해액을 기록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남는 것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인터뷰한다.

누군가는 새벽부터 배수로를 치우고, 누군가는 주민을 대피시키고, 누군가는 물에 젖은 가게를 정리한다. 재난은 숫자로 기록되지만, 사람은 기억으로 남으니까. 그래서 박재주 전 도의원을 섭외했다. 그의 이름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정치인의 명함이 아니라, 빗속에서 배수구를 뚫던 민소매 차림의 뒷모습이다. 주민자치위원장으로 활동했던 그는 억수같이 비가 쏟아져 내리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할 수는 일이 무얼까 고민하다 평소 하던 것처럼 배수구를 뚫었는데, 그 모습이 지나가던 대학생의 휴대전화에 담겼고,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았다.

사람들은 옛 시절의 기억과 지나온 과거를 회상하며 현재를 살아간다. 이처럼 어떤 사건에 대한 기억은 정확한 수치나 스토리보다는 한 장의 사진으로, 한 사람의 임팩트 있는 말과 표정으로 각인된다. 난 오늘도 인터뷰 일정을 짜고 서툰 편집을 하고 글을 쓴다. 좀 변한 게 있다면 사건 사고의 진실을 캐기 위한 송곳 질문이 아니라, 한 시대를 살아온 사람의 시간과 그 시간을 기록하기 위한 질문으로 깊이를 더하려 한다. 비는 또 내릴 것이다. 그때도 사람들은 뉴스를 보고, 누군가는 현장으로 달려갈 것이다. 기자는 그만뒀지만, 기자의 눈은 아직도 비를 따라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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