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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우의 그림 이야기 - 빛을 그린 화가 하동철

빛을 그린 화가 하동철

  • 웹출고시간2026.07.09 17:08:39
  • 최종수정2026.07.09 17:08:39

1996년 경주남산에서 고 하동철 화백

ⓒ 뉴시스
"나는 항상 신비한 빛의 환상 속에 있다. 그 빛은 환상이라기보다 나에게는 오히려 하나뿐인 현실이며, 나는 그로 인해 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게 된다"라고 작가 노트에 쓸 정도로 빛을 작품에 올인 해 '빛의 화가'로 불리는 작가가 있다. 그의 이름은 하동철(1942-2006)이다. 하동철 작가는 충북 출신이며, 필자의 대학 1년 선배 H작가의 작은아버지라 친근감이 가는 작가이다.

하동철은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고향에서 멀지 않은 대전으로 중·고등학교를 갔는데 성적이 뛰어나면서 미술대회에서도 큰상을 받는 등 두각을 나타낸다. 그러다 당시 다니던 대전고등학교 미술 교사였던 김철호(1925~2011)의 영향을 받아 미술가로서의 길을 가기로 맘을 먹는다. 1961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에 입학해 정창섭(1927~2011) 교수를 만나 추상미술 세계에 빠진다. 그때 학생 신분으로 국전에서 연이은 입선과 특선을 하면서 미술계의 주목을 받기도 한다. 미술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중.고등학교에서 미술 교사로 근무한다.

하동철, Falls Of Light, 1980, Color Pen on Paper, 55x148cm

ⓒ 연합뉴스
그는 미술 교사를 하면서도 그림에 대한 열정을 잠재울 수 없어 학교를 그만두고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미국에서는 판화를 공부했다. 그 후 성신여대와 서울대 미술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미국, 프랑스, 일본에서 열리는 다수의 국제전에 참가해 한국의 현대미술를 국제적으로 알리는 데 기여한다.

그는 어릴 때 초등학교 교장이던 아버지를 따라 다니다 보니 어머니와 떨어져 산 적이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를 떠나 살면서 그리움과 외로움이 그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준다.

어린 시절 집으로 돌아오는 어머니를 기다리며 보았던 빛, 아버지를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보내는 상여가 고향 보리밭에 잠시 머물렀을 때 보았던 하늘의 푸르름, 상여와 보리밭의 보리가 한데 어울린 데에서 빛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었노라고 회상한 적이 있다.

그의 작품에서 반짝이는 빛은 무수한 수평과 수직의 선이 예리하게 교차하며 빚어낸 빛줄기이다. 그에게 빛은 단순한 물리 현상으로서 색의 스펙트럼이 아니며, 우주 삼라만상의 원리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창(窓)이자 고리로 작품세계의 모티프와 근원이 된 것이다. 질서 정연한 화면은 생명의 근원을 찾아가는 화가의 구도의 몸짓과도 같다.

그는 흑과 백으로 모사되는 우리나라 탁본 방식을 벗어나 색과 글자를 더함으로써 현대적 판화 미술로 변화시키기도 한다. 이는 탁본을 흑백으로 간주해온 전통적인 고정관념을 벗어나는 파격이었으며, 판화와 탁본, 회화의 영역을 가로지르는 현대 미술의 장르로 승격시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동철의 제자인 강병직 청주교대 교수는 옥천지방신문에 스승에 대한 글을 쓰면서 "미술가 하동철은 필자를 가르친 대학과 대학원의 은사였다. 이 글을 쓰는 내내 참으로 죄송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배움의 과정에 있던 학창 시절 그의 작품세계와 가르침의 의미를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르침에 있어 그는 교수라는 권위와 형식을 따지지 않았다. 제자들의 작품을 대할 때 늘 열려 있었고, 열정적으로 토론하기를 좋아했다. 그런 까닭에 제자들은 한 명의 동료 작가로 대해주는 스승의 넓은 품을 좋아했다"라고 옛 스승을 회고하고 있다. 이를 보면 하동철은 열정적으로 작업하는 작가이자, 가슴 따뜻한 교육자였던 것 같다.

하동철은 정년을 1년 앞둔 2006년 4월12일, 정년 퇴임 기념 전시회 준비를 위해 창작에 매진하던 중 갑작스러운 위출혈로 64세의 불꽃 같은 생을 마감한다. 유해는 자신의 작품혼을 쏟은 양평의 작업장 '빛이 머물고 간 자리' 정원에 영원히 빛과 함께하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필자는 그 당시 대전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되는 'ART DAEJEON 06(2006.4.13.~22)'이라는 전시회 부스전에 참가하고 있었다. 이 전시회에 하동철 작가도 작품을 출품했다. 개막을 하루 앞두고 정신없이 작품을 설치하고 있는데, 누군가 하동철 작가가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알려준다. 그때 전시회 참가작가들은 일손을 잠시 놓고 고인을 추모하며 묵념했던 기억이 난다.

그가 떠나고 10년 후인 2016년, 흥(興)이 많았고, 감정 표현에 박하지 않았으며, 엄하지만 인간적이었던 스승 하동철을 기리며 제자들이 모여 학고재갤러리에서 '헌정-기리고 그리다'라는 이름으로 추모전을 연다.

하동철 작가는 20년 전 세상을 떠났으니 지금 살아있다면 만 84세이다. 청주지역에는 단청산수화가 홍병학, 보리작가 박영대, 산을 많이 그리는 서양화가 양응환 등이 1942년생으로 하동철과 동갑내기이다. 이 작가들이 현역작가로 새로운 작품을 시도하며 왕성하게 활동하는 것으로 봤을 때 '하동철 작가도 살아있었으면 우리에게 좋은 작품을 많이 보여주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늘나라에서 하동철은 끊임없이 빛을 찾아다니고 있을 것 같다. 비 온 뒤 햇살이 좋은 날에는 하동철 작가의 빛 그림과 맑은 하늘이 오버랩되면서 그가 많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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