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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7.08 17:51:53
  • 최종수정2026.07.08 17:51:53

김혜식

수필가

주먹밥 위에 다소곳이 얹혔던 분홍색 꽃잎을 요즘도 잊을 수 없다. 여섯 살 무렵 초여름 어느 날이었다. 어머닌 좀체 울음을 그치지 않는 필자에게 주먹밥을 해주었다. 큰 접시 위에 주먹밥을 나란히 올려놓고 그 위에 분홍색 꽃으로 장식을 했었다. 이 때 어머닌 필자가 흘리는 닭똥 같은 눈물을 무명 앞치마로 닦아주며 울지 말라고 달랬다.

이 주먹밥을 먹자 갑자기 슬픔이 가시는 듯했다. 종전에 트럭에 짐을 가득 싣고 집을 떠난 막내 이모와의 가슴 아린 이별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흰쌀밥에 고소한 참기름과 깨로 만든 당시 주먹밥 맛은 지금 돌이켜봐도 최고의 맛이다. 특히 주먹밥과 함께 하얀 접시 위에 올려 진 분홍색 꽃잎은 어린 눈에도 퍽이나 예뻤다.

그 시절 어머닌 텃밭에 심은 아욱 꽃잎을 따서 말린 후 차로 마시길 즐겼다. 더구나 이 꽃차는 흰 눈이 펑펑 내리는 추운 겨울날 마시면 제격이다. 유리잔 속 뜨거운 물 위에 꽃잎을 띄어서 마시노라면 꽁꽁 언 온 몸에 온기마저 도는 느낌이었다. 또한 바짝 마른 꽃잎이 유리잔 속에서 제 몸을 한껏 풀며 우려내는 분홍색 찻물은, 그 색이 고와서 운치를 자아내기도 했다.

훗날 이 차가 아욱이 피워낸 꽃이 주재료임을 알게 됐다. 어느 문헌에 의하면 아욱 꽃에는 칼슘, 인, 철분, 베타카로틴, 비타민 B1,비타민 C 등이 함유돼 있어서 건강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이로보아 어머니는 참으로 지혜로웠다. 어찌 아욱 꽃을 차로 만들어 음용(飮用)할 생각을 하였을까· 뿐만 아니라 어머닌 초 여름날 장독대에서 된장을 퍼서 쌀뜨물에 넣은 후 깨끗이 씻은 아욱으로 국을 끓이곤 했다. 이 때 어머닌 집 앞에 흐르는 도랑물에서 민물 새우를 조리로 건져서 아욱국에 넣곤 하였다. 그 때 어머니가 끓여준 아욱국은 고깃국보다 더 맛있었다. 이즈막 구수하고 감칠맛 나는 아욱국 맛을 재현해 보련만 지난날 어머니 솜씨엔 미치지 못한다.

며칠 전 한식뷔페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그동안 양식 뷔페만 찾다보니 그곳 음식 전부가 달착지근해서 영 입맛에 안 맞던 터였다. 막상 그곳엘 가보니 '한식 뷔페'라는 간판이 무용지물이었다. 기대와는 달리 우리 고유의 음식이 별반 없었다. 초밥, 짜장, 게살 스프, 파스타, 탕수육, 쌀국수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나마 김치와 물김치, 잡채, 쌀밥이 한식의 명맥을 겨우 이을 뿐이었다. 다양한 계층의 입맛을 겨냥한 뷔페식당이긴 하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네 입맛에 맞는 된장국 정도는 준비했어야 했다. 그 나라 국민 정서와 문화를 대변해 주는 게 음식이 아니던가. 아욱은 중국에선 '채소의 왕'이라고 손꼽고 있다. 아욱국엔 단백질 칼슘이 시금치에 비해 2배나 함유돼 성장기 어린이들의 뼈 건강에 좋단다. 한의학에선 아욱을 동규자(冬葵子)라고 부르며 이 씨앗은 이뇨제로도 쓰인단다.

소박하여 왠지 정감이 가는 아욱 꽃이 요즘따라 눈앞에 선하다. 회색빛 촌에 갇혀 살아서인가. 주위에서 쉽사리 찾아 볼 수 없는 아욱 꽃이 못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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