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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자

수필가

두 사람의 발소리만 외롭게 울리는 널따란 거실을 멍하니 바라본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문을 열면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사방으로 뛰어다니던 북적임으로 가득했던 공간이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처럼, 지금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은, 낯선 고요와 무거운 침묵뿐이다. 시선을 돌려 벽에 걸린 커다란 가족사진을 본다. 사진 속 아이들은 여전히 해맑게 웃고 있지만, 현실의 거실은 쓸쓸할 정도로 넓기만 하다.

문득 어깨를 누르는 집의 크기가 새삼스럽게 무겁고 낯설게 다가온다. 젊은 날엔 더 넓은 평수로 이사하는 것이 인생의 성공이자 훈장인 줄 알았다. 그러나 세월의 겹이 얇아지고 아이들이 하나둘 품을 떠나자, 이 넓은 공간은 자랑이 아니라 단 둘만 남은 우리 부부에게 버거운 짐이자 메울 수 없는 서글픈 여백이 되었다. 방마다 가득 차 있던 온기는 빠져나가고, 찬 바람만 서성이는 집이 되었다.

노년의 삶이란 집을 지키기 위해 내 몸을 갈아 넣는 구속이 아니라, 온전히 나 자신을 지키고 보듬는 자유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워내야 비로소 새로운 삶이 채워진다는 소박한 진실을 마주한 것이다. 이제 우리 부부는 어깨 위의 무거운 욕심과 과시를 내려놓고, 진짜 우리만을 위한 삶을 향해 홀가분한 첫발을 내딛고자 한다.

돌이켜보면 우리 부부의 젊은 날은 오 남매를 품어 안은 눈부시게 푸르른 봄이자 뜨거웠던 여름이었다. 아이들을 키워내느라 우리 부부의 청춘은 늘 시간에 쫓겼고 땀방울로 젖어 있었다. 늦게 퇴근하는 날이 부지기수였기에, 늘 어두컴컴한 집에서 부모를 기다렸을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가슴 한구석에 박혀 있었다.

하지만 사랑이 고팠던 아이들은 원망 대신 서로에게 가장 따뜻한 외투가 되어주었다. 큰아이는 작은 아이의 코를 닦아주며 부모 역할을 자처했고,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서로의 선생님이 되어 숙제를 도왔다. 늦은 밤, 지친 몸으로 대문을 열 때면 저 멀리서부터 부리나케 달려와 품에 안기던 다섯 아이의 따스한 온기는 고단했던 우리 부부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가장 단단한 디딤돌이었다. 지금은 각자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 독립해 나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비로소 부모의 책임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우리가 새로 옮겨갈 보금자리는 손이 많이 가고 청소하기 벅찬 대저택이 아니다. 서로의 숨결과 말소리가 고스란히 닿는 아담하고 포근한 집이다. 눈빛만으로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거리의 그런 따뜻한 공간이다. 그곳에서 나는 매일 아침 운동 삼아 작은 바닥을 쓸고 닦으며, 거실 창 너머 작은 마당을 가꿀 계획이다.

지나온 날들은 참으로 치열했고, 그런대로 잘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매 순간이 축복이었고 위기 때마다 우리의 손을 잡아준 모든 인연에 감사한다. 어깨 위를 짓누르던 집이라는 욕심의 껍데기를 벗겨내니 비로소 내면이 깃털처럼 가볍고 평온하다. 인생의 아름다운 가을을 지나 이제 서서히 겨울의 길목으로 접어드는 시간, 남은 생은 남들의 시선이 아닌 온전히 우리 두 사람의 소박하고 따스한 온기로만 채워갈 참이다. 우리의 사계절은 여전히 아름답게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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